[스포츠조선 전영지 기자] K리그 여름 그라운드는 바야흐로 'KBK' 김보경(30·울산 현대) 전성시대다.
김보경은 3일 제주월드컵경기장에서 펼쳐진 2019년 하나원큐 K리그 24라운드 제주 원정에서 10호골을 터뜨렸다. 2-0으로 앞서던 후반 14분 신진호의 코너킥을 그대로 밀어넣었다. 지난달 30일 FC서울전(3대1승)에서 멀티골과 함께 리그 MVP에 선정된 지 나흘만이다. 올시즌 제주와의 3경기에서 모두 골맛을 봤다. '제주킬러' 김보경의 활약속에 울산은 5대0으로 대승했다. 14경기 무패와 함께 '1강' 전북과의 승점 차를 벌리며 선두(승점 54)를 달렸다.
공은 둥글고, 축구는 계속된다. 2011년 박지성이 국가대표 은퇴 기자회견에서 직접 지목한 '후계자', 김보경이 잉글랜드, 일본을 돌고돌아 다시 선 K리그에서 높이 날아올랐다. 22경기 10골-6도움, 나이 서른의 '커리어 하이'다. 2019년 8월 4일 현재 K리그1 선수들을 통틀어 최다 공격포인트다.
▶서른의 KBK, 생애 첫 두자릿수 득점
10호골 축하인사에 김보경은 "제가 프로에서 한 시즌에 제일 많이 넣은 게 7~8골일 거예요"라고 했다. 2010년 오이타에서 27경기 8골, 2011년 세레소 오사카에서 24경기 8골을 기록했었다. 2016년 K리그 전북에서 29경기 4골, 2017년 15경기 3골을 기록했다. 가시와에서는 지난시즌 23경기에서 2골을 넣었다.
짜릿한 패스, 골보다 도움을 즐긴다는 이 선수가 울산에서 무려 10골을 터뜨리고 있다. 고온다습한 찜통더위, 살인적인 일정 속에 일궈낸 기록이라 더 빛난다. 김보경은 김도훈 울산 감독과 동료들에게 공을 돌렸다. "유벤투스와의 올스타전을 포함해, 경기가 계속 이어지다보니 사실 제주전이 고비였다. 감독님과 동료들이 체력적인 부분을 많이 신경 써주셨다."
김도훈 감독은 올시즌 일본 가시와 레이솔에서 임대 온 에이스 김보경을 매경기 믿고 쓴다. 울산 2선의 중심에서 좌우를 자유롭게 오간다. 전매특허인 날선 킬패스뿐 아니라 빈 공간을 향해 침투하는 센스, 세컨드볼을 노리는 위치선정 역시 발군이다. 김보경은 "우리팀 스타일상 패스뿐 아니라 침투하는 역할도 한다. 상대 선수들이 저를 놓치면서 찬스를 잡게 되는 것같다"고 귀띔했다. 카디프시티 시절, 맨유전 헤더가 머리로 터뜨린 유일한 득점이라던 김보경은 올시즌 울산에서 헤딩골도 2개나 기록했다. 골과 승리를 향한 절실함이다. "그 헤딩골도 사실 정확한 패스를 주려는 것이었는데… 운이 좋았다"며 웃었다.
▶KBK 나누면 강해진다
'KBK' 김보경 전성시대의 숨은 비결은 '나눔'이다. 김보경은 지난 3월 유튜브에 'KBK Football TV'를 개설했다. 자신의 개인훈련 영상, K리그 울산 선수들의 그라운드 밖 이야기를 꾸준히 올리며 다섯 달만에 1만5000여 명의 구독자를 끌어모았다.
20~30분 개인훈련을 100% 리얼로 공개한다. 미드필더로서 패스의 기술, 발끝 감각을 끌어올리는 기본기 훈련은 단순한 시범이 아니라 실제 훈련이다. 김보경은 "이 훈련을 일주일에 2~3번씩 꾸준히 하고 있다. 선수생활을 하면서 이렇게 체계적, 규칙적으로 개인훈련을 한 것은 처음이다. 올시즌 빡빡한 일정속에 컨디션을 유지하는 데 확실히 도움이 된다"고 했다.
시즌 초 유튜버가 되기로 결심한 이유는 '나눔'이었다. "어린 선수들의 훈련 모습을 보고 안타까운 점이 있었다. 우리 어렸을 때 하던 걸 계속 반복하고 있더라. 지금 내가 아는 기본기 훈련을 저 나이 때부터 미리 제대로 하면 내 나이가 됐을 때 적어도 나보다 좋은 선수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유튜브를 시작하게 됐다"고 했다. 한때 '홍명보의 아이들'로 회자됐던 2012년 런던올림픽 동메달 세대들은 언제 어디서든 '나눔'과 '배움'의 준비가 돼 있다. 김보경은 이 부분을 긍정했다. "맞다. 저희 세대는 후배들을 많이 신경 쓴다. 저희가 국민들께 받은 사랑도 많고, 이제 다들 고참이 됐다. 그런 부분에서 한국 축구에 기여하고 싶다."
▶"MVP보다 울산의 우승을 원한다"
김보경의 맹활약, 울산의 무패행진 속에 다소 이르지만 MVP 이야기도 흘러나온다. 김보경은 "울산에 온 가장 큰 이유는 우승컵"이라고 단언했다. "시즌 초반 우리는 도전하는 입장, 희망하는 입장이었다. 지금은 그 희망에 조금씩 다가서고 있다. 내겐 개인 타이틀이나 MVP보다 울산의 우승이 더 큰 기쁨이고 가장 큰 목표"라고 말했다. 전북과 2대2로 비긴 제주를 상대로 5대0 대승을 거두며 울산은 사기충천했다. 김보경은 "너무 오랜만에 대승을 해서인지 다들 얼떨떨했다. 선수들끼리 앞으로 이런 분위기가 익숙해지도록 더 잘해보자고 했다"며 대승 뒷이야기를 전했다. '1강' 전북과의 우승 레이스에 자신감이 붙었다. "승점을 계속 쌓아가고 있다는 점에서 자신감이 생긴다. 그동안 전북이 독보적인 선두를 달려왔는데 올해는 엎치락뒤치락하고 있다. 자신감을 갖게 됐다. 이제 전북이 우리보다 부담을 느낄 것이다. 우리는 우리 할 일만 하면 된다"고 했다.
올해 초 울산에서 만난 김보경은 세 가지 목표를 말했었다. "우선 리그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는 것, 그리고 나서 대표팀에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세 번째 목표는 큰 목표다. 마음속에 넣어두겠다"며 말을 아꼈다.
10골을 터뜨린 후에도 김보경은 마지막 목표는 끝내 말하지 않았다. "첫 번째 목표, 두 번째 목표는 어느 정도 이뤘다. 지금까지 목표를 향해 잘 해가고 있다. 계속 더 노력해야 한다. 세 번째 목표를 시즌 끝날 때 꼭 말씀드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