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조지영 기자] "한국 영화산업은 지금 그 깊이조차 알 수 없는 심연 속으로 끌려들어가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았다."
한국 영화계가 코로나19로 인한 제작·개봉 중단 및 연기, 그리고 이로 인한 심각한 경영난에 빠지면서 고사 위기에 직면했다. 이런 가운데 국내 각종 영화 단체가 영화 산업의 위기를 호소하고 정부의 지원을 요청하는 공동 성명을 발표해 관심을 끌었다.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 한국영화감독조합, 영화단체연대회의, 영화수입배급사협회, 한국상영관협회, 한국영화마케팅사협회, 여성영화인모임, 한국영화디지털유통협회, 한국영화촬영감독조합, 예술영화관협회, 한국영화제작가협회,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씨네Q 등이 모인 코로나19 대책 영화인연대회의는 25일 '코로나19로 영화산업 붕괴 위기, 정부의 지원이 절실하다'라는 제목의 성명을 발표했다.
국내 극장가는 지난달 12일 개봉한 '정직한 후보'(장유정 감독), 19일 개봉한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김용훈 감독) '1917'(샘 멘데스 감독) 이후 급격히 확산된 코로나19 사태로 2월, 3월 기대작으로 꼽혔던 '사냥의 시간'(윤성현 감독) '기생충: 흑백판'(봉준호 감독) '결백'(박상현 감독) '침입자'(손원평 감독) '콜'(이충현 감독) 등 무려 50여편이 넘는 신작들의 개봉이 전면 연기돼 두 달째 보릿고개를 이어가고 있다. 여기에 초반 일부 코로나19 확진자들의 극장 방문으로 관객들의 극장 기피 현상까지 더해지면서 연일 최저 관객수를 기록하는 등 초유의 위기를 맞았다.
비단 극장가 상황뿐만 아니라 영화 제작 상황도 고달픈건 마찬가지다. 이르면 올해 하반기, 늦어도 내년 개봉을 목표로 촬영에 돌입한 작품들은 코로나19로 인한 로케이션 섭외 난항과 스태프들의 안전 문제로 제작에 차질을 빚고 있다. 특히 거액의 제작비가 투입된 블록버스터들은 국내가 아닌 해외 로케이션을 계획했지만 전 세계로 확산된 코로나19로 해외 촬영을 중단해 급히 귀국하거나 혹은 해외 촬영분을 무기한 연기하는 등 여러모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야말로 영화 제작, 투자, 배급, 홍보까지 영화 전반에 걸쳐 혹독한 혹한기가 불어닥친 것.
상황이 개선될 여지가 보이지 않자 영화계는 위기감에 대한 호소와 함께 정부의 적극적인 지지를 촉구하는 성명을 내 대국민적 관심을 끌었다. 앞서 정부는 여행, 관광숙박, 관광운송,공연업 등 4개 업종을 특별고용지원 업종으로 지정하고 지원을 강화하기로 발표했다. 이 과정에서 영화산업을 제외돼 한국 영화계의 반발을 샀는데 이런 정부의 결정에 영화계가 한목소리를 낸 것.
영화인연대회의는 "한국영화 100년, 그리고 영화 '기생충'(19, 봉준호 감독)의 칸 황금종려상,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으로 한국영화는 온 세계에 위상을 드높였다. 그러나 이 기쁨을 채 누리기도 전에 한국 영화산업은 코로나19라는 벗어날 수 없는 거대한 파도를 만났다. 한국 영화산업은 지금 그 깊이조차 알 수 없는 심연 속으로 끌려들어가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았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실제로 코로나19 사태가 시작된 이후 한국 영화산업의 생태계는 무너지고 있다. 영화 관람객은 하루 2만명 내외로 작년에 비해 85% 감소하며 역대 최저치를 기록하고 있다. 한국 영화산업 전체 매출 중 영화관 매출이 약 80%를 차지하는 상황에서 영화관의 매출 감소는 곧 영화산업 전체의 붕괴를 의미한다"며 "벌써 영화 관련 기업들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하나 둘씩 가족과 같은 직원들과 작별을 고하고 있다. 영화산업의 위기는 결국 대량 실업사태를 초래하고 이로 인해 한국영화의 급격한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것임은 명약관화하다"고 밝혔다.
또한 "상황이 이런데도 한국 영화산업은 정부의 지원에서 완전히 외면당하고 있다. 영화 정책을 담당하고 있는 문화체육관광부와 영화진흥위원회는 영화산업의 시급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자칫 이렇게 가다가는 영화산업 전체가 공멸할 수 있다는 위기감을 갖고 지금 당장 정책 실행을 해야 할 때이다"며 '영화산업 특별고용지원 업종으로 선정' '영화산업 피해 지원을 위한 정부의 금융 지원 정책 시행' '정부 지원 예산 편성 및 영화발전기금 지원 비용 긴급 투입' 등을 요구했다.
같은 날 한국영화감독협회도 추가로 코로나19 긴급성명서를 발표했다. 한국영화감독협회 양윤호 이사장은 "한국 영화계는 코로나19로 100년 만에 가장 큰 위기를 맞았다. 영화관 관객 숫자는 매주 역대 최저를 기록하고 있고 영화 촬영 현장은 멈추거나 세트로 대체되면서 그 피해 규모도 날이 갈수록 커지는 중이다. 투자사, 배급사, 제작사 뿐 아니라 홍보, 광고, 마케팅과 디자인 등 유관업계의 피해도 심각하다"며 "우리는 늘 그래왔듯이 답을 찾을 것이다. 이미 민간의 극장들은 고통 분담을 위해 '착한 임대료' 운동에 동참 중이다. 대형 극장 체인들은 중소 입점 업체의 임대료를 인하하고 있고 임대 매장 또는 재임대 매장의 임대료를 최대 35% 인하한 곳도 있다. 현장의 제작사들과 투자사들도 대책 마련을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고 밝혔다.
이어 "이제 정부와 공공기관이 화답해야 한다. 즉각적인 행동으로 한국 영화계의 재난 지원을 즉시 실행해야 한다. 우선 일시 해고되었거나 코로나로 일자리를 잃은 영화인의 고용 지원금을 즉시 지급해야 한다. 2020년 정부 예산안에 편성된 영화 발전 기금은 1015억 원이다. 이는 전년 대비 247억 원이나 증액된 규모다. 지금 당장 중점사업의 방향을 긴급구호로 바꿔야 한다. 그리고 영화는 관객 없이는 절대로 완성될 수 없다. 지금도 영화는 바이러스를 피해 스스로 격리된 관객들의 외로움을 달래주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는 물리적 거리두기와 사회적 연결하기가 함께 서있어야만 극복될 수 있다. 극장이 위험한 곳이 아니라 공포가 훨씬 위험한 것이다. 관객 여러분께 안전하게 영화 보기 캠페인을 조심스레 제안 드린다"고 해결책을 제시하기도 했다.
영화계의 피끓는 호소에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도 곧바로 입장을 밝혔다. 영진위는 "24일부터 사무국 공정환경조성센터에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영화업계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필요한 지원 업무를 담당하는 전담 대응 창구 '영화진흥위원회 코로나19 전담대응TF(이하 코로나대응TF)'를 설치해 활동을 시작한다. 코로나대응TF는 영화계 코로나19 관련 피해 상황을 파악하고 지원 방안을 안내하는 소통 창구 역할을 수행한다"고 밝혔다.
무엇보다 "영진위는 지금까지 코로나19 피해 지원 방안으로 영화발전기금 부과금 납부 기한 연장, 연체 가산금 면제, 영화관 소독제 및 방역 지원 등을 긴급 시행해왔으나, 영진위의 사무 행정 체계가 한국영화 제작, 배급, 상영 지원 사업 실행 위주로 편제되어 있어서, 코로나19 확산이라는 초유의 위기 상황에 기만하게 대응하지 못한 한계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며 그동안 코로나19 피해에 대한 부족했던 대응을 인정했다.
하지만 이런 영진위의 움직임에 영화 단체들은 수박 겉할기식 대응이라고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한 영화인은 "현실은 영화계가 고사 위기에 직면했는데 영진위는 아직도 실태 파악에만 조사하고 있는 상황이다. 제작사는 문을 닫고 직원들은 실업 위기에 직면했는데 현실적인 대책이 아닌 그저 보여주기식 대응을 하려는 모양새라 분통터진다"고 불만을 제기했다.
조지영 기자 soulhn1220@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