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월 스포츠계 미투 사건이 잇달으며 스포츠 인권이 화두에 오른 지 불과 1년 반만에 또다시 체육계가 가슴 아픈 폭력 의혹 사건으로 얼룩졌다.
스무 살 남짓한 어린 철인3종 선수가 꽃다운 목숨을 끊었다. 트라이애슬론 청소년 대표 출신 고(故) 최숙현 선수가 지난달 26일 새벽, 부산 실업팀 숙소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세상과 작별하기 전 어머니에게 '엄마 사랑해. 그 사람들 죄를 밝혀줘'라는 유언같은 메시지를 남겼다. 유족과 일부 팬들은 훈련 중 이어진 가혹 행위가 선수를 벼랑으로 몰아넣은 것이라 주장하고 있다. 고인은 고등학생이었던 2016년 이후 최근까지 선배, 지도자, 팀닥터 등에게 지속적인 가혹 행위가 있었다며 고소를 제기했고, 이에 따라 검찰 조사가 진행중이었다. 고인은 지난 4월 8일 대한체육회 스포츠 인권센터에도 폭행, 폭언에 대한 신고를 했고, 대한철인3종경기협회에도 진정서를 제출했다. 1일 평창올림픽 봅슬레이·스켈레톤 국가대표팀 감독 출신 이 용 의원은 기자회견을 통해 고 최숙현 선수의 죽음을 알리면서 "'아무도 자신의 얘기를 들어주지 않는다''세상 어디에도 내 편은 없다'는 좌절감이 결국 그녀를 극단적 선택에 이르게 만들었다"고 판단했다. 2일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이 사건을 언급했다. "경기인 출신 최윤희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이 나서서 전반적인 스포츠 인권 문제를 챙기도록 하라"면서 "피해자인 최 선수가 대한체육회 스포츠인권센터에 폭력 피해 신고를 한 날짜가 지난 4월 8일이었는데도 제대로 조치가 되지 않아 불행한 일이 일어나게 된 것은 정말 문제"라고 지적했다.
문체부도 즉시 입장문을 내고 대책 마련에 나섰다. 대한체육회 자체 조사와 별도로 최윤희 제2차관을 단장으로 하는 특별조사단을 구성해, 철저한 경위와 문제점을 파악하기로했다. 대한체육회 클린스포츠센터에 신고가 접수됐음에도 신속한 조사가 되지 않고, 선수 보호 조치가 제대로 되지 않은 부분을 철저히 조사할 계획이다. 고소도 해보고, 신고도 했지만 '아무도 내 목소리를 귀기울이지 않는다'는 절망감에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 문체부 스포츠혁신위원회는 제1차 권고과제로 선수 인권 보호를 위한 '스포츠윤리센터'설립을 명시했다. '스포츠 비리, 불공정 및 체육인 인권 침해에 대해 체육계 내부의 판단이 아닌 외부의 독립기구에 의한 엄정한 제재와 효과적인 재발 방지 조치를 도모한다'는 설립 취지에 따라 지난해 말 국민체육진흥법이 개정됐고, 제18조 3~4항에 근거해 올해 8월 22억9000만원의 예산으로 스포츠윤리센터가 출범 준비중이었다.
센터장(비상근), 사무총장(상근), 직원 25명으로 이뤄진 조직은 크게 '반부패, 불공정 행위'를 조사하는 스포츠 비리조사실과, 인권침해 상담, 조사,지원 및 인권교육 및 홍보를 담당하는 스포츠인권진흥실로 나뉘어 설립될 예정이다. 스포츠윤리센터는 조사결과에 따라 즉시 수사기관에 고발할 수 있는 권한과 센터가 문체부장관에게 요청하면 문체부 장관이 체육단체에 즉각 징계요구를 하도록 요청해 체육지도자의 자격취소 및 정지 요청을 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했다. 지난 4월 28일 설립추진단을 발족해 축구국가대표 출신 이영표 스포츠혁신위원과 권순용 서울대 교수, 정운용 사회책임윤리경영연구소장 등이 4차례 회의를 통해 정관 및 주요규정을 확정했다. 인권, 스포츠, 조사 등 각분야 전문가를 공개채용하며 8월 설립을 적극적으로 준비하던 과정에서 또다시 이런 비극적인 사건이 터졌다.
대한체육회 클린스포츠센터에서 스포츠윤리센터로의 업무 이관이 예정된 상황에서 터져나온 가슴 아픈 사건에 체육계는 다시 망연자실하고 있다. 또다시 만시지탄이다. 꽃다운 선수는 목숨을 잃었는데, 이제와 대책 마련이라니 그저 한숨만 나온다. 문체부 역시 "지난해 체육계 미투 사건 등을 계기로 스포츠혁신위원회 혁신권고 이행 등 혁신노력을 기울이는 과정에서 발생한 사건이라 더욱 안타깝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향후 스포츠 인권과 관련된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철저히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했다. '아무도 내 목소리 귀 기울지 않아서' '기다리다 지쳐 외롭고 아픈' 선택을 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8월 출범할 스포츠윤리센터는 명실상부해야 한다. 여태까지 이름만 바꿔 수없이 명멸했던 신고센터, 클린센터들과는 분명 달라야 한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