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스포츠조선 김영록 기자]"수석코치로서 나름대로 감독님의 모든 것을 지켜봤다고 생각했는데, 직접 해보니 상상 그 이상으로 힘들다."
2020년 6월 26일. 염경엽 SK 와이번스 감독이 경기 도중 실신하며 쓰러지는, 프로야구 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진 날이다. '두 달간 절대 안정' 지시를 받은 염 감독 대신 박경완 수석코치가 감독 대행을 맡아 팀을 이끈지 꼭 한달이 지났다.
박경완 감독 대행은 준비된 지도자다. 선수 시절부터 팀의 야전사령관으로서 묵직한 무게감을 과시하며 '미래 감독감'으로 손꼽혔다. 2013년 은퇴 이후 SK 2군 감독, 육성 총괄, 배터리코치를 거친 끝에 2019년에는 수석코치로 부임했고, 올해는 감독 대행의 역할까지 수행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1군 사령탑의 무게감을 새삼 절감하고 있다.
"옆에서 바라볼 때 느끼던 감독과 직접 해본 감독은 완전히 다르다. 코치는 조언만 하면 된다. 감독은 판단하고 결정하는 자리다. 이기고 있을 때와 지고 있을 때를 확실히 구분하고, 승부를 걸어야할 때, 쉬어갈 때를 판단해야한다. 정말 어렵다."
염 감독은 그에게 '하고 싶은 야구를 해보라'고 조언했다. 덕분에 박 대행은 적극적인 작전을 구사하며 염 감독과 다른 '자신만의 야구'를 펼치고 있다. '박경완 체제' 이후 SK의 성적은 11승 13패(승률 0.458). 팀 역대 최다 연패 기록인 10연패에 빠졌고, 이후 또다시 8연패를 겪으며 13승 31패(0.295)로 추락하던 행보가 조금이나마 상승곡선으로 바뀌었다. 그는 "초반에는 많이 주저했다. 보름 정도 지나면서 '안 하고 후회하지 말고, 하고 나서 후회하자'고 결심했다. 작전을 쓸까말까 고민될 땐, 일단 쓰기로 마음먹었다"고 설명했다.
코치의 역할도 중요하다. 이젠 과거처럼 감독이 선수단의 구석구석을 파악하기보단, 분야별 전문가들이 제공하는 정보를 바탕으로 큰 물줄기를 잡는 식으로 역할 분담이 이뤄지고 있다. 박 대행은 "다시 수석코치가 되면, 더 적극적으로 뛸 생각이다. 감독님도 사람이다. 놓치시는 부분이 있을 수 있다. 코치들이 더 많이 움직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만수와 더불어 'KBO 역대 최고 포수'로 꼽히는 박 대행에겐 승리의 DNA가 있다. 현대와 SK를 거치며 무려 5번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거머쥐었다. 2000년에는 시즌 MVP도 차지했다. 홈런왕 2회, 골든글러브를 4회의 빛나는 경력이 돋보인다. 포수 최초 40홈런, 4연타석 홈런 기록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그가 보는 '9위' SK의 원인 분석이 궁금했다.
"시즌초에는 선수들이 패배의식에 사로잡혀있었다. 팀 분위기가 너무 가라앉았다. 작년 정규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2위로 떨어지고, 최종 순위가 3등이 됐다. 시즌 마무리가 잘못된게 올해까지 쭉 이어진 거다. 지금 같아선 내년 시즌도 어렵다."
SK는 최근 4연승 포함 최근 10경기 6승 4패로 한층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염 감독의 복귀는 언제가 될까. 박 대행은 9위팀답지 않게 선수단을 다잡고 채찍질에 나섰다.
"언론에 일단 '두달(동안 안정 필요)'이란 표현을 했는데, 이제 한달이 지났다. 돌아오시는 날까지 예전 SK의 모습을 되찾고 싶다. 반등은 내년이 아니라 지금 이뤄내야한다. 순위는 그대로 9위로 가더라도, 내년에 좋은 성적을 내려면 지금 분위기를 반전시켜야한다."
대전=김영록기자 lunarfly@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