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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영 KCC명예회장 한없는 '농구사랑' 남기고 떠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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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최만식 기자] "떠나시기 전에 우승컵을 안겨드리려 했는데…."

프로농구 전주 KCC 사무국-선수단은 비보를 접하고 깊은 슬픔에 빠졌다. 커다란 버팀목이었던 '어르신'께 우승컵을 안겨드리려 했건만…, 세월은 야속했다.

정상영 KCC 명예회장이 지난 30일 밤 향년 84세의 일기로 별세했다.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막내 동생인 고인은 1958년 '금강스레트공업주식회사'를 시작으로 60여년을 경영일선에 몸담으며 KCC를 글로벌 첨단소재 화학업계의 대표 중견그룹으로 키웠다.

평소 임직원에게 주인의식과 정도경영을 강조하며 스스로 모범을 보였다는 재계 평가를 받아 온 정 명예회장. 농구계에서는 또다른 평가가 있다. 프로농구 모기업 총수 가운데 으뜸가는 '농구바라기'였다.

2001년 자금난에 빠진 현대 걸리버스 농구단을 인수하면서 프로, 아마 가리지 않고 농구에 애정을 쏟았던 그의 농구사랑은 이미 정평이 나있다. 농구 명문 용산고를 졸업한 고인은 모교에 농구체육관을 비롯, 비(非)운동부 학생을 위한 도서관, 기숙사를 지어줬다. 용산고 장학재단도 그의 손에서 탄생했다.

한국농구연맹(KBL)이 정규리그 타이틀 스폰서를 구하지 못하자 총 5차례에 걸쳐 후원했고, 프로-아마 최강전, 아시아-퍼시픽 대학농구챌린지 등에도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국가대표팀이 훈련 장소를 구하지 못할 때에는 용인시 마북리 KCC 체육관을 선뜻 내놓기도 했다. 은퇴 선수에게 본사 사원으로 새출발 할 기회를 주는 전통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최형길 KCC 단장의 증언에 따르면 정 명예회장은 TV 중계를 통해서라도 KCC 경기를 빠짐없이 관전했고, 상대팀 전력 분석은 물론 FA(자유계약)시장, 신인선수 입단을 직접 챙길 정도로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최 단장은 "고인은 항상 선수들 걱정은 물론이고 국제 경쟁력을 높이는 방안을 고민해왔다"면서 "애정어린 야단도 많이 맞았는데…, 이젠 그런 꾸지람도 들을 수 없으니 먹먹하기만 하다"고 말했다.

전창진 감독의 마음은 더 찢어진다. 뒤늦게 무죄 판결받은 사건으로 인한 주변 시선 때문에 음지에서 지낼 때 다시 일으켜세워 준 이가 정 명예회장이었다. 당시 정 명예회장은 "억울한 누명도 다 벗었는데 언제까지 그렇게 숨어 살려고 하느냐. 떳떳하게 네가 잘 할 수 있는 일을 하라"고 호통치며 손을 내밀었다. 이를 계기로 2018년 말 KCC 기술고문으로 복귀한 전 감독은 올시즌 우승을 노리는 '명장본색'을 회복하며 재기에 성공했다.

전 감독은 "작년 비시즌 기간에도 본사 사무실에 출근하시면 체육관을 꼭 찾으셔서 코로나19 방역, 선수들 불편 없도록 챙기셨던 게 지금도 눈에 선하다"면서 "이번 시즌에 우승을 해야 할 이유가 더 생긴 것 같다"며 애도를 표했다.

고인의 정도경영 철학을 엿볼 수 있는, KCC 구단 직원들을 감동시킨 일화도 있다. 지난해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될 무렵 KCC 연구팀이 천연 성분의 획기적인 소독제를 개발했다. '코로나19 특수'로 인해 시판에 나섰더라면 불티나게 팔렸을 터. 하지만 고인은 "아무리 기업이 이윤을 추구한다지만 재난을 틈타 장사를 하면 되겠느냐. 그냥 회사 직원들, 선수단 소독용으로 나눠 쓰라"며 '회사 내부용'으로 돌렸다고 한다.

고인은 농구계에서 이루지 못한 꿈을 남겨놓고 떠났다. KCC는 KBL의 '회원사 총재 제도'에 따라 현대모비스(2018∼2022년)에 이어 총재직을 맡을 예정이었다. KBL 총재 순서가 KCC에 돌아오면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한 국제대회 유치를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결국 정 명예회장이 평소 강조했던 "국제대회 유치 준비"는 농구사랑으로 남긴 마지막 유언이 됐다. KCC 관계자는 "고인의 유지를 받드는 팀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최만식 기자 cm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