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조지영 기자] 전 세계가 사랑할 수밖에 없는, 힐링 명작이 탄생했다.
18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촌동 CGV 용산아이파크몰에서 휴먼 영화 '미나리'(정이삭 감독) 언론·배급 시사회가 열렸다. 지난해 10월 열린 제25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갈라프레젠테이션 초청작으로 선정돼 국내에서 최초로 공개된 이후 개봉을 앞두고 두 번째 열리는 공식 시사회로 많은 관심을 받았다.
'미나리'는 1980년대 아메리칸드림을 쫓아 미 아칸소주(州)의 농장으로 건너간 한인가정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가족들에게 뭔가 해내는 걸 보여주고 싶은 아빠 제이콥(스티븐 연)이 많은 빚을 떠안고 자신만의 농장을 가꾸며 꿈을 펼치지만 엄마 모니카(한예리)는 딸 앤(노엘 조)과 아픈 아들 데이빗(앨런 김)의 육아와 교육 문제, 낯선 환경 그리고 남편의 무모한 도전이 불안하다.
누구 하나 기댈 곳 없는 곳에 모니카는 결국 엄마 순자(윤여정)에게 손을 내밀고 딸의 부탁에 순자는 두 말 없이 이역만리 날아와 딸의 손을 잡아준다. 엄마가 한국에서 가져온 가방에는 고춧가루, 멸치, 아들의 한약, 그리고 미나리씨가 가득하고 매콤한 고춧가루 한꼬집에 모니카는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나온다. 바로 이민자의 나라에서 이민자의 아들이 정착해 만든 '미나리'는 그렇게 초반부터 보는 이들의 공감을 깊게 울린다.
'미나리'는 어디서든 잘 자라는 미나리처럼 위기 속에서도 끈기로 버텨온 미국 이민 1세대의 고단한 삶을 요란하지 않게 하지만 꽤 진지하게 그려냈다. 반전도, 충격적인 사건도 일어나지 않지만 공감을 자아내는 에피소드와 메시지로 묵직하고 강렬하게 마음 속 깊은 곳부터 파동을 일으킨다.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고 미국 행을 택했지만 생각처럼 녹록하지 않은 삶에 지칠 때로 지친 제이콥과 모니카 부부의 갈등은 전 세계를 관통하는 보편적인 이야기로 현실 그 자체와 맞닿아 있다. 언어부터 문화까지 달라도 너무 다른 한국에서 온 할머니와 미국에서 자란 손자의 귀여운 세대차이는 이 영화의 백미다.
진짜 사랑이란 무엇인지, 진짜 가족이란 무엇인지 보여주는 '미나리'는 상실과 단절의 시대에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희망과 위안, 그리고 따뜻한 용기와 다독임을 선사하는 웰메이드 힐링 명작이다. 세상 모든 부모를 위한 러브레터이며 세상 모든 자식을 위한 반성문이다.
이날 윤여정은 시사회에 앞서 영상으로 인사를 건넸다. 현재 캐나다 밴쿠버에서 애플TV 플러스 제작 드라마 '파친코'를 촬영 중인 윤여정은 "이런 큰 기대가 있으리라고 상상을 안 하고 영화를 만들었다. 그런데 너무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며 마음을 전했다.
그는 "배우들과 특히 정이삭 감독이 훌륭했다. 나는 나이가 많지만 굉장히 철 없을 때도 있고 그랬는데 정이삭 감독은 우리 모두를 이끌었다. 우리 모두가 정이삭 감독에게 감동받으면서 '이 영화를 잘 찍어내자' 다짐했다. 사실 겁이 좀 난다. 한국 관객이 이 영화를 어떻게 봐줄지 걱정이 된다. 우리의 진심이 전해지길 바란다. 열심히 연습해서 영화를 만들었다"고 곱씹었다.
'미나리'의 막내 데이빗 역을 연기한 앨런 김 역시 영상으로 귀여운 인사를 전했다. 앨런 김은 "'미나리'를 사랑해 주고 관심 가져줘서 감사하다. 이 영화는 엄마, 아빠, 할머니, 누나, 그리고 내 이야기다"고 영화를 소개했다.
시사회에 함께 자리하지 못한 배우들을 대표해 한예리가 무대인사로 대신 인사를 전하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한예리는 "이 영화를 촬영하고 3년이 지났다. 그 사이에 코로나19 상황 때문에 (조촐하게 영화를 소개해) 아쉽기도 하고 안타깝다. 하루 빨리 모든 상황이 제자리를 찾기 바란다. 한국 개봉을 오랫동안 기다렸다. 즐겁게 봐줬으면 좋겠다"며 "개인적으로 '미나리'는 특별한 영화다. 좋은 기억도 많고 좋은 추억도 많다. 그 힘으로 지금도 잘 버티고 있다. 이 영화가 주는 힘이 있다고 생각한다. 재미있게 봐달라. 지금 힘들고 지친 분들이 많을텐데 이 영화를 통해 잠시나마 힐링받고 기운 받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미나리'는 한국계 미국 배우 스티븐 연을 주축으로 국내 배우로는 한예리와 윤여정이 가세했고 이밖에 또다른 한국계 미국 배우 앨런 김, 노엘 조가 출연했다. 영화는 미국 배경으로 하지만 언어는 한인 가정이 주가 되는 만큼 80%가 한국어로 이뤄졌다.
'미나리'는 영화 '문유랑가보(Munyurangabo)'로 2008년 열린 제60회 칸국제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분에 초청, 미국 영화 연구소(American Film Institute, AFI) 영화제에서 대상을 수상한 한국계 미국인 정이삭(리 아이삭 정)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를 바탕으로 만들어 국내에서도 많은 관심을 받았다. 여기에 '문라이트'(17, 배리 젠킨스 감독) '플로리다 프로젝트'(18, 션 베이커 감독) '유전'(18, 아리 에스터 감독) 등을 만든 A24가 투자를 맡고 '노예 12년'(14, 스티브 맥퀸 감독) '월드워Z'(13, 마크 포스터 감독) '옥자'(17, 봉준호 감독) 등을 제작한 브래드 피트가 설립한 영화 제작사 플랜 B 엔터테인먼트가 제작, 스티븐 연 역시 정이삭 감독과 함께 기획과 제작에 참여해 총괄 프로듀서로 의미를 더한 작품이다.
'미나리'는 지난해 2월 열린 제36회 선댄스영화제 심사위원 대상과 관객상을 시작으로 전 세계 영화상에서 총 156개 노미네이트, 65관왕 수상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무엇보다 윤여정은 전미, LA, 보스턴, 노스캐롤라이나, 오클라호마, 콜럼버스, 그레이터 웨스턴 뉴욕, 뮤직시티, 샌디에고, 세인트 루이스, 샌프란시스코, 뉴멕시코, 캔사스 시티, 워싱턴, 시애틀 비평가협회상, 미국 여성 영화기자협회상, 그리고 선셋 필름 서클 어워즈, 북미 아시아 태평양 영화인 어워즈, 등에서 여우조연상을 수상하며 전무후무한 22관왕 대기록의 역사를 만들었다. 여기에 윤여정은 오는 4월 열리는 제27회 미국배우조합상(SAG)에서 한국 배우 최초로 여우조연상 부문 후보에 이름을 올렸고 이밖에 '미나리팀' 전체 앙상블상에 노미네이트, 다가오는 제93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의 유력한 후보로 많은 기대를 받고 있다. 빈수레가 요란하다는 말은 옛말. 수상이 증명한 '미나리'의 신드롬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미나리'는 지난 12일 북미서 개봉했고 국내에서는 오는 3월 3일 개봉한다.
조지영 기자 soulhn1220@sportschosun.com 사진=판씨네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