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김영록 기자]"그들의 죄를 심판하라", "부끄러운줄 알라"…뻔뻔한 '사인훔치기'의 주역들을 향한 야유와 플래카드가 양키스타디움을 가득 메웠다.
5일(한국시각) 올시즌 첫 양키스타디움 원정에 나선 휴스턴 애스트로스 선수들은 객석을 가득 채운 분노에 직면했다.
2017년 휴스턴은 외야 카메라를 통해 상대의 사인을 촬영해 이를 더그아웃 내부의 비디오실로 전송한 뒤, 다시 '쓰레기통 두드리기'를 통해 타자에게 전달했다. 이를 통해 휴스턴은 2017년 뉴욕 양키스와 LG 다저스를 연파하고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사인 훔치기가 폭로된 것은 2019년말. 열혈 야구 팬들은 휴스턴을 향한 이른바 '복수(revenge) 투어'를 준비했다. 휴스턴의 원정경기 때마다 뜨겁게 야유하기로 한 것. 2020시즌이 코로나19 여파로 인해 무관중으로 치러지면서 이는 수포로 돌아가는 듯 했다.
하지만 뉴욕은 잊지 않았다. 비록 전체 수용인원의 20%인 10,850명만 입장했지만, 뉴욕 팬들은 호세 알투베를 시작으로 휴스턴의 선수들에게 폭발적인 야유를 보내기 시작했다. 플래카드와 '우'하는 함성 외에 선수 개개인을 향한 야유, 그리고 'Fxxx 애스트로스' 등의 욕설이 쏟아졌다. 뉴욕 측 중계 캐스터는 선수 이름을 "알투~베"라고 호명하며 팬들에게 호응하기도 했다. 이날 양키스는 7대3으로 승리, 팬들을 열광케 했다.
양키스의 팬들은 ESPN과의 인터뷰에서 "작년에도 야유하고 있었다. 단지 거실에 있었을 뿐", "오늘을 위해 1년반을 준비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더스티 베이커 휴스턴 감독은 사인 훔치기 스캔들 직후 A.J.힌치 감독을 대신해 '소방수'로 투입된 인물. 베이커 감독은 부임 직후부터 힌치 감독과 제프 르노 단장, 알렉스 코라-카를로스 벨트란 감독 등의 해임, 휴스턴의 드래프트픽 몰수와 500만 달러의 벌금 등을 언급하며 "이미 대가를 치렀다"고 주장해 논란을 불렀다.
베이커 감독은 이날 경기를 앞두고도 현지 매체들과 인터뷰에서 "지금 휴스턴에 남아있는 건 4~5명 뿐이다. 야유의 대상은 그 선수인가? 유니폼인가? (애스트로스)조직인가? 이미 다 끝난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스캔들의 당사자 중 아직 휴스턴에 남아있는 선수는 호세 알투베, 알렉스 브레그먼, 카를로스 코레아 등이다. 이들은 원정경기보다 홈에서 좋은 성적을 냈고, 월드시리즈 우승을 통해 리그 MVP(알투베) 등 영광을 독차지했다. 하지만 MLB 사무국은 스캔들의 당사자인 선수들에게 조사에 협조하는 대가로 면책을 약속했고, 팬들의 분노를 피할 길이 없어졌다. 힌치와 코라는 1년 징계를 마치고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보스턴 레드삭스 감독으로 복귀한 상황.
베이커 감독은 "알투베에겐 너무 혹독한 밤이었다. 그는 충분히 노력하고 있다"며 투덜댔다. 브레그먼은 "야구에만 집중하려고 노력했다"고 답했다.
하지만 코레아는 달랐다. 코레아는 경기 후 인터뷰에서 "나 같은 엘리트 선수는 겁먹지 않는다(don't scare me). 뉴욕 팬들은 날 멈출 수 없다"며 "다만 동료들의 안전이 걱정된다. 알투베한테 하는 말을 들었나? 우린 그라운드에서 철수함으로써 부당한 모욕에 항의해야했다"며 눈물을 쏟기도 했다.
양키스의 애런 분 감독은 "2019년 이후 처음 접하는 에너지였다"고 감탄했고, 이날 역전 홈런 포함 4타수 3안타로 팀 승리를 이끈 지안카를로 스탠튼은 "무시무시한 분노였다. 내 생애 그 반대편에 서고 싶지 않다"고 평했다.
과거 휴스턴은 '약물 스캔들'에 휩싸인 배리 본즈, 알렉스 로드리게스 등을 향해 노골적인 빈볼을 던져 팬들을 열광시킨 전력이 있다. 하지만 이날 양키스 선수들은 우려와 달리 빈볼 등 경기 내적인 복수는 하지 않았다. 단지 팬들에게 맡겼다.
김영록 기자 lunarfly@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