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스포츠조선 정현석 기자]베테랑 타자들이 가장 예민해 하는 것이 있다.
자신의 타석 앞 고의4구다.
키움 시절인 지난해 슬럼프를 겪었던 '국민거포' 박병호(36)가 겪었던 수모. 설마 하다 현실에서 이런 경우를 당하면 정신이 번쩍 든다. '어디 한번 보자' 하는 오기가 텐션을 높인다. 상대로선 무척 조심해야 하는 순간이다.
KIA의 살아있는 레전드 최형우가 25일 대구 삼성전에서 같은 수모를 겪었다.
6번 지명타자로 선발 출전한 최형우는 최근 슬럼프에 빠져 있었다. 이날 경기 전까지 4경기 연속 무안타. 지난 19일 롯데전 두번째 타석 이후 이날 두번째 타석까지 19타석 연속 무안타 행진을 이어가고 있었다.
이날도 첫 두 타석에서 범타로 물러난 상황.
2-1 박빙의 리드를 지키던 5회초 1사 2루. 최근 타격감이 뜨거운 소크라테스가 타석에 섰다.
이날 경기 전 삼성 허삼영 감독은 전날 경기를 복기하며 "최근 페이스는 최형우 선수하고 승부하는 게 맞았지만 우규민 선수가 소크라테스와 첫 대면이고 충분히 낮은 쪽에 변화구를 던져서 범타를 유도할 것으로 생각했는데 타구 속도가 너무 빨랐다"며 "어제 저희 투수들이 소크라테스를 상대가 낮은 공을 많이 던졌는데도 불구하고 계속 정타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은 지금 아주 좋은 페이스라는 것을 증명한다"고 소크라테스의 뜨거운 타격감을 경계했다.
삼성 벤치는 전날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결단을 내렸다.
원태인이 볼 2개를 던지자 자동 고의4구를 지시했다. 통산 3할1푼이 넘는 타율과 342홈런, 1407타점을 기록중인 대타자 최형우에게는 무척 생소한 '그림'이었다. 대기 타석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던 최형우는 결의를 다지고 타석에 들어섰다.
2B2S에서 원태인의 142㎞ 패스트볼을 당겨 우익수 앞 깨끗한 안타를 뽑아내며 1사 만루 찬스를 만들었다. 5경기 무려 20타석 만에 터진 안타가 중요한 순간 터졌다.
이창진의 2타점 적시타가 터지면서 4-1. 원태인이 물러났고, KIA는 바뀐 투수 최하늘을 상대로 박찬호 류지혁의 연속 적시타로 3점을 더 보태며 7-1로 점수 차를 벌렸다.
5회만 5안타 5득점의 빅이닝. 11대5 대승의 사실상 승부처였다. 그 중심에 자신 앞 고의4구로 생채기난 자존심을 안타로 되갚아준 최형우의 집념이 있었다. 이 안타로 타격감이 살아난 최형우는 8회에도 안타를 날리며 13일 LG전 이후 10경기 만에 멀티히트를 기록하며 부활을 알렸다.
'최형우의 반란'으로 결과를 얻지 못했지만 삼성 벤치로선 확률적인 측면에서 최선의 선택이었다. 다만, 결과가 아쉬웠을 뿐이다.
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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