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윤진만 기자] '쓰는 선수만 쓴다'. 파울루 벤투 감독이 근 4년간 축구 A대표팀 지휘봉을 잡으면서 얻은 이미지다. 그랬던 벤투 감독이 2022년 카타르월드컵 개막을 넉 달 앞두고 열린 동아시아축구연맹(EAFF) E-1 챔피언십(동아시안컵)에선 용병술을 달리했다. 동아시안컵 특성을 고려해 '결과' 보단 '실험'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 보인다.
벤투 감독은 지난 20일 중국과의 1차전과 24일 홍콩과의 2차전에서 완전히 다른 베스트11을 빼 들었다. 중국전에선 권창훈 권경원 엄원상 조규성 백승호 나상호 황인범 조유민 김진수 윤종규 김동준이 선발 출격해 3대0 승리를 이끌었다. 홍콩전에선 전부 로테이션을 가동했다. 강성진 이기혁 이재익 박지수 조영욱 김동현 김문환 홍 철 송민규 송범근 김진규 등이 기회를 잡았고, 스코어는 중국전과 같은 3대0이었다.
26명의 엔트리에서 25명이 출전했다. 22명이 선발 출전, 고영준 김주성 이영재 등 3명은 교체로 그라운드를 밟았다. 총 8명이 A매치에 데뷔했다. 지난 두 경기에서 출전 기회를 잡지 못한 선수는 특수 포지션인 골키퍼 조현우뿐이다. 조현우가 이번 대회에 참가한 골키퍼 중 주전에 가깝다는 점을 볼 때, 27일 열리는 대망의 한일전을 위해 아껴뒀을 가능성이 크다. 조현우가 한일전에서 골키퍼 장갑을 끼면, 벤투호는 이번 대회에 26명 전원을 활용한다. 출전시간에는 차이가 있겠지만, 공평한 기회를 부여한 건 사실이다.
실험도 가미했다. 객관적 전력이 낮은 중국과 홍콩을 상대로 A매치 경험이 전무한 조유민의 센터백 카드, '반대발 윙어' 강성진의 파격 기용, 백승호의 측면 배치 등을 실험했다. 김동현에겐 정우영의 딥라잉 플레이메이커 롤을 맡겨봤다. 유럽파, 중동파가 모두 합류했을 때는 할 수 없는 테스트다. 고영준은 중국전에서 조규성의 쐐기골로 연결된 킬패스, 막내 강성진은 홍콩전 멀티골, 조유민은 안정적인 수비 리딩 능력 등으로 벤투 감독에게 좋은 인상을 남겼다.
대표팀 감독은 일반적으로 월드컵을 넉달 앞둔 시점에는 엔트리의 80~90%는 정해놓는다. 이번 동아시안컵은 남은 10~20%를 차지하기 위한 싸움이라고 볼 수 있다. 벤투 감독이 월드컵 최종 엔트리를 꾸릴 때, 동아시안컵 활약이 반영될 것은 자명하다. 각 선수의 최근 '폼(경기력)'과 전술 이해도를 눈앞에서 지켜볼 수 있기 때문이다. 국제적인 인지도가 낮은 대회일지라도, 이제 막 기회를 잡은 선수들에겐 마지막 생존경쟁인 셈이다.
벤투 감독은 홍콩전을 마치고 "새로운 선수들이 어떤 경기력을 보여줄지 궁금했다. 경기력을 직접 점검하고자 했는데 일부 선수들이 좋은 모습을 보였다. 매 경기가 선수들에게는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한일전은 더 큰 의미를 지닌다. 일본은 이번 대회에 참가한 팀 중 가장 레벨이 높다. 홈 이점도 지녔다. 한일 축구의 라이벌 의식까지 고려할 때, 이날 활약한 선수는 확실한 눈도장을 찍을 수 있다.
윤진만 기자 yoonjinma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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