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스포츠조선 박찬준 기자]클린스만호가 또 다시 첫 승에 실패했다.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이 이끄는 A대표팀은 16일 부산아시아드 주경기장에서 열린 페루와 친선경기에서 0대1로 패했다. 3월 A매치에서 1무1패를 거뒀던 클린스만호는 페루전에서 첫 승에 도전했지만, 실패했다. A매치 데뷔전을 치르는 선수만 4명이나 되는 실험을 펼쳤지만, 기대 이하의 경기력이었다. 페루의 조직력에 끌려다니며, 이렇다할 기회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이강인(마요르카)만 돋보였다.
페루전은 3월 A매치를 통해 첫 선을 보인 클린스만 감독의 두번째 평가 무대였다. 지난 3월은 12년 만의 16강 진출에 성공한 2022년 카타르월드컵에 출전한 선수들로 채워졌다. 클린스만 감독도 막 지휘봉을 잡은 터라 시간이 없었다. 보다 직선적인 축구가 더해졌지만, 파울루 벤투 전 감독 시절과 비교해 큰 차이가 없었다. 때문에 이번 6월 A매치는 클린스만 감독의 진짜 색깔을 볼 수 있는 기회라는 점에서 관심이 모아졌다.
하지만 변화가 불가피했다. 공수의 핵이 빠졌다. '캡틴' 손흥민(토트넘)은 스포츠 탈장 부상으로 벤치에 앉았다. '괴물' 김민재(나폴리)는 군사훈련으로 일찌감치 제외됐다. 이들 외에도 그간 대표팀의 중추로 활약했던 김영권(울산 현대) 김문환(전북 현대) 정우영(알 사드) 등이 부상으로 빠졌다. 플랜B 가동이 불가피했다. 엔트리에 새얼굴을 9명이나 선발한 클린스만 감독 역시 변화를 예고했다.
생각보다 변화의 폭이 컸다. 포메이션 부터 4-2-3-1에서 4-4-2로 바꿨다. 골문은 그대로였다. 손흥민 대신 주장 완장을 찬 김승규(알 샤밥)가 지켰다. 수비라인은 그간 한번도 본적이 없는 조합이 나섰다. 이기제(수원 삼성)-정승현(울산)-박지수(포르티모넨세)-안현범(제주 유나이티드)이 포진했다. 이기제를 제외한 나머지 세 명이 클린스만호에서 첫 선을 보였다. 안현범은 아예 A매치 데뷔전이었다. 미드필드는 이재성(마인츠)-황인범(올림피아코스)-원두재(김천 상무)-이강인(마요르카)이 섰다. 투톱은 '황소' 황희찬(울버햄턴)과 오현규(셀틱)가 이뤘다. 황희찬은 클린스만호 첫 출전, 오현규는 A매치 첫 선발이었다.
노림수는 명확했다. 클린스만호가 지난 3월 A매치에서 보여준 전술의 핵심은 '센트럴 손'이었다. 손흥민을 왼쪽이 아닌 중앙에 포진시켰다. 전임 파울루 벤투 감독 역시 심심치 않게 썼던 전술이지만, 활용법에서 차이가 있었다. 벤투 감독이 손흥민을 미드필더처럼 썼다면, 클린스만 감독은 공격수로 활용했다. 손흥민을 극대화하기 위해 최전방 공격수는 폭넓은 움직임으로 공간을 만들어줬다. 최상의 지원을 받은 손흥민은 3월 A매치에서 가장 빛나는 활약을 펼쳤다. 그런 손흥민의 이탈로 클린스만 감독은 공격 전술에 큰 변화를 줬다.
클린스만 감독의 해법은 측면 활용이었다. 이기제와 안현범, 두 공격적인 풀백을 전면에 내세우며, 측면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요량이었다. 이재성-이강인 좌우 윙어가 중앙 지향적인 성향이라는 것을 감안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상대의 탄탄한 수비에 좌우 풀백이 제대로 전진하지 못했다. 오히려 수비쪽에 부담을 느끼는 모습이었다. 빌드업 형태도 아쉬웠다. 뛰어나가야 할 안현범을 두 센터백과 함께 묶어 빌드업을 하게 했다. 이 역할을 처음하는 안현범이 제대로 소화할리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원두재의 위치선정까지 좋지 못했다. 경기를 풀어줘야 하는 황인범이 볼을 잡는 횟수가 현저히 떨어졌다. 이재성과 이강인의 1대1에 의존하는 플레이가 이어졌다. 투톱에서는 황희찬이 활발히 움직이며 기회를 노렸지만, 오현규는 여러차례 미스로 공격의 맥을 끊는 모습이었다.
전반 초반 한국이 헤매는 사이 분위기를 주도했다. 전반 5분 안현범이 오른쪽을 돌파하다 흐른 볼을 게레로가 잡았다. 오른발 감아차기를 시도했다. 김승규가 멋지게 막아냈다. 이어진 코너킥에서 다시 한번 게레로가 슈팅을 시도했지만 떴다. 결국 선제골을 내줬다. 10분 게레로의 패스를 받은 레이나가 강력한 오른발슛으로 한국 골망을 흔들었다.
한국도 반격했다. 13분 황인범의 패스 받아 이강인이 중앙으로 들어가며 왼발슈팅을 날렸다. 수비 맞고 나왔다. 14분 이기제가 왼쪽에서 크로스를 올렸다. 오현규가 침투하며 슬라이딩 슈팅을 시도했다. 빗맞았다. 페루가 다시 한번 좋은 기회를 잡았다. 18분 오른쪽서 크로스 게레로가 시도한 컷백이 옆그물을 지나갔다.
한국이 다시 분위기를 올렸다. 24분 이재성의 힐 패스 받은 황희찬이 돌파를 시도했다. 오른발슈팅은 수비 맞고 골키퍼가 잡았다. 27분 이강인의 천재성이 빛났다. 오른쪽에서 기가 막힌 왼발 스루패스를 건냈다. 오현규가 골키퍼와 맞서는 기회를 잡았다. 하지만 슈팅이 빗맞았다. 33분에는 이강인의 왼발이 번뜩였다. 황희찬의 패스를 받은 이강인이 오른쪽서 가운데로 이동하며 왼발 감아차기를 시도했다. 골키퍼의 선방에 막혔다. 이어 이강인의 크로스가 뒤로 넘어갔다. 정승현의 슈팅은 수비 맞고 나왔다.
페루는 수비에 중점을 두며, 역습에 나섰다. 42분 세트피스 상황에서도 위협적인 기회를 만들어냈다. 한국은 동점골을 위해 전진했지만, 이렇다할 기회를 만들지 못했다. 전반 종료 직전 이강인이 프리킥을 시도했지만 벽에 맞고 나왔다. 이강인의 코너킥을 정승현이 헤더로 연결했지만, 빗나갔다. 결국 전반은 0대1로 끌려간채, 마무리됐다.
후반 변화를 줬다. 이재성을 중앙으로, 황희찬을 왼쪽 측면으로 보냈다. 하지만 여전히 경기는 풀리지 않았다. 후방에서 볼이 돌지 않으며, 전방쪽에 제대로 볼을 건내지 못했다. 이강인에게 볼이 가야 그나마 숨통이 트였다. 페루는 간헐적으로 공격에 나섰지만, 그때마다 위협적인 장면을 연출했다.
후반 10분 모처럼 기회를 잡았다. 황인범의 스루패스를 받은 이재성이 슈팅을 시도했지만, 오현규 맞고 오프사이드가 됐다. 페루가 대거 선수를 바꿨다. 13분 칼렌스, 트라우코, 아퀴노, 플로레스 나오고 아브람, 산타마리아, 카타게나, 쿠에바가 투입됐다. 한국이 결정적인 기회를 잡았다. 16분 황희찬이 왼쪽에서 가운데 이강인에게 패스를 건냈다. 이강인이 밀어주자, 오현규가 골키퍼와 맞서는 절호의 찬스를 맞이했다. 하지만 슈팅은 골키퍼 선방에 막혔다.
클린스만 감독은 17분 변화를 택했다. 이재성 오현규를 빼고 홍현석(헨트) 조규성(전북)을 넣었다. 홍현석의 A매치 데뷔전이었다. 페루의 공세가 이어졌다. 19분 왼쪽을 돌파한 후 중앙에서 연이어 슈팅을 날렸다. 한국이 육탄방어로 막았다. 24분 페루는 게레로 대신 바렐라를 넣었다. 25분 원두재가 쓰러졌다. 의료진은 더이상 뛸 수없다는 신호를 보냈다. 박용우(울산)가 대신 투입됐다. 박용우도 A매치 데뷔전에 나섰다.
26분 홍현석이 오른쪽에서 왼발로 올려준 크로스를 조규성이 헤더로 연결했다. 빗나갔다. 1분 뒤 황희찬이 왼쪽을 시원하게 돌파하며 크로스를 올렸다. 이강인이 노마크에서 헤더로 연결했다. 골키퍼 선방에 막혔다. 이어 이강인이 오른쪽에서 올려준 왼발 크로스를 조규성이 또 다시 머리에 맞췄다. 하지만 골키퍼 정면으로 향했다. 31분 이강인-조규성 콤비가 다시 빛났다. 이강인이 오른쪽에서 기가 막힌 크로스를 보냈다. 조규성이 뛰어들며 머리에 맞췄지만, 살짝 빗나갔다. 34분 이강인이 왼쪽에서 올려준 프리킥을 황희찬이 헤더로 연결했다. 역시 빗나갔다.
페루는 35분 레이나가 빼지고 페냐가 투입됐다. 페루가 공격적으로 나섰다. 36분 왼쪽 측면을 돌파한 후 크로스를 올렸지만, 이기제가 막아냈다. 이어 코너킥에서 바렐라가 노마크 헤더로 연결했지만, 다행히 떴다. 39분 한국이 승부수를 띄웠다. 안현범 이기제 황희찬을 빼고 황의조 나상호(이상 FC서울) 박규현(디나모 드레스덴)을 넣었다. 전형도 3-5-2로 전환했다.
이강인이 자유롭게 움직이며, 기회를 노렸다. 43분 이강인이 왼쪽에서 코너킥을 올렸다. 조규성이 뛰어들며 머리에 맞췄다. 하지만 아쉽게 뜨고 말았다. 한국은 남은 시간 사력을 다했지만, 결국 경기는 0대1 패배로 끝이 났다.
부산=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