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4월 민희진 전 어도어 대표가 걸그룹 뉴진스를 두고 하이브와 갈등을 폭로하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을 때 눈에 띄는 게 있었다. 민 전 대표는 미국 메이저리그 LA 다저스 모자를 쓰고 3시간 가까이 격정적으로 기자회견을 끌어갔다. '다저 블루(dodger blue)'로 불리는 밝은 파란색 그 모자다. 박찬호로 시작해 서재응, 최희섭, 류현진이 거쳐 간 LA 다저스는 한국인들에게 가장 친숙한 메이저리그 팀이다. '슈퍼스타' 오타니 쇼헤이(31) 열풍이 몰아치고 김혜성(26)이 입단해 비교가 불가한 수준으로 인지도가 올라갔다.
메이저리그 구단 모자가 일상에 파고들어 흔한 아이템이 됐다. 연예인이나 얼굴이 널리 알려진 인사들이 메이저리그 모자를 쓰고 있는 장면을 흔히 볼 수 있다.
다른 리그에서 뛰는 야구 선수가 메이저리그 특정 구단 모자를 착용해 화제가 될 때가 있다. 야쿠르트 스왈로즈 내야수 무라카미 무네타카(24)는 지난 연말 LA 다저스 모자를 착용하고 크리스마스트리 앞에서 찍은 사진을 개인 SNS에 올렸다. 그는 LA 다저스 모자를 쓰고 식사하는 영상도 공개했다.
무라카미는 일본프로야구를 대표하는 홈런타자다. 2022년 56홈런을 터트려 '전설의 홈런왕' 오 사다하루(왕정치)를 넘어 일본인 타자 한 시즌 최다 홈런 기록을 갈아치웠다. 지난해 33홈런을 때려 통산 세 번째 홈런왕에 올랐다.
그는 올해 연봉이 6억엔(약 55억6000만원)이다. 일본프로야구 구단 관계자나 야쿠르트 팬들 입장에선 리그를 대표하는 간판타자, 최고 연봉 선수가 버젓이 메이저리그 구단 모자를 쓰고 나타난 장면이 불편했을 것이다. 아무리 메이저리그 진출이 목표이고 메이저리그를 동경한다고 해도 그는 엄연히 소속팀이 있는 프로 선수다. 소속팀 야쿠르트를 존중하는 마음이 적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일부 KBO리그 선수
도 비슷한 행태로 눈살을 찌푸리게 할 때가 있다.
올해가 3년 계약의 마지막 시즌이다. 내년에 26세가 되는 무라카미는 시즌 종료 후 포스팅 시스템을 통해 메이저리그 도전에 나선다. 3년 전 구단과 이미 합의한 내용이다. 메이저리그 진출을 앞두고 있기에 LA 다저스 모자가 더 주목받았다. 그가 이미 LA 다저스행을 결정했다는 얘기가 나왔다.
거대한 '육식 공룡'이 돼버린 LA 다저스. 2023년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 일본대표팀에서 함께 뛰었던 오타니와 야마모토 요시노부(27)를 영입하고, 지난 주말 사사키 로키(24)까지 끌어갔다.
20일 도쿄에서 열린 일본프로야구 양 리그 12개 구단 감독 회의. 매년 스프링캠프 시작에 앞서 열리는 연례행사다. 이 자리에서 오프 시즌 자율훈련이나 사복 차림일 때 선수들이 메이저리그 구단 모자를 착용하는 것에 대한 얘기가 오갔다.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했던 한신 타이거즈의 후지카와 규지 감독(45)이 먼저 입을 열었다. 메이저리그 구단 모자를 쓰고 개인훈련을 하는 선수가 있는데, 리그와 구단의 브랜드 가치
를 높이려면 지양해야한다는 지적이다. 일본에선 주전급 선수나 젊은 유망주들의 개인훈련이 언론을 통해 크게 보도된다.
다수가 후지카와 감독의 문제 제기에 동조했다. 니혼햄 파이터스의 신조 쓰요시 감독(53)은 "파이터스엔 세련된 파이터스 모자가 많다"고 했다. 신조 감독도 한신에서 시작해 뉴욕 메츠,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에서 메이저리그를 경험했다.
최연장자인 지바 롯데 마린즈의 요시이 마사토 감독(60)은 "NPB(일본프로야구)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려면 이 부분을 확실히 해야 한다"고 힘을 실었다. 요시이 감독도 5시즌을 활약하며 32승을 올린 메이저리그 출신이다.
이날 회의에서 결론을 내지 않았지만 다수가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다. 일본프로야구 최고 선수들이 지속적으로 메이저리그에 진출해 생긴 위기의식이 작용했을 것이다. 일본프로야구의 최대 경쟁자가 오타니라는 말이 나오는 게 현실이다. 지난해 한 방송사는 재팬시리즈 경기가 진행 중인 시간에 오타니 경기 재방송을 틀어 취재 제한을 받았다. 앞으로 메이저리그 구단 모자를 착용하는 선수가 확실히 줄 것 같다.
민창기 기자 huelva@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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