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박찬준 기자]예상치 못한 그림이었다. 9일 목동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서울 이랜드전. 당초 출전이 예고된 김민준이 워밍업 도중 손을 다쳤다. 백업으로 경기를 준비하다 갑작스레 기회가 찾아왔다. 꿈에 그리던 프로 데뷔전은 이내 '악몽'으로 변했다. 무려 4골이나 허용했다. 실수는 없었지만, 골키퍼에게 4골은 치욕이었다. 2대4 대패는 '나' 때문인 것 같았다.
절치부심했다. 다시 한번 기회를 얻게된 15일 충남아산전. '넘버1'으로 마음가짐을 바꾸며 준비를 마쳤다. 이랜드전은 보약이 됐다. 펄펄 날았다. 후반 14분 강민규의 1대1 찬스를 막아낸 것은 단연 백미였다. 풀타임을 소화하며, 상대가 날린 6번의 유효 슈팅을 모두 막아내며 프로 데뷔 첫 클린시트에 성공했다. 안정적인 선방은 물론 빌드업 능력까지 선보이며, 수원팬들에게 확실한 눈도장을 찍었다.
두 경기 사이에 천당과 지옥을 오간 수원 삼성의 '성골 유스' 새내기 골키퍼 김정훈(21) 이야기다.
김정훈은 이제 프로에 첫 발을 뗐지만, 사실 '수원 9년차'다. 초등학교 4학년인 2014년 수원과 처음 인연을 맺었다. 일반 클럽에서 뛰었던 그는 골키퍼를 뽑는다는 소식을 듣고 수원 U-12 입단 테스트를 봤고, 당당히 통과했다. 이후 수원은 그의 전부가 됐다. 김정훈은 수원 U-15, U-18을 거쳤다. 수많은 동기들 중 수원 U-12, U-15, U-18을 모두 거친 이는 김정훈 뿐이다. 스스로 "내 몸에는 푸른 피가 흐른다"고 할 정도다.
고려대에 진학해 경험을 더하며, 프로 입성을 준비하던 김정훈에게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오로지 수원 뿐이었다. 그는 올 겨울 수원 입단에 사인했다. 김정훈은 "늘 빅버드에서 뛰는 상상을 했다. 팬들이 응원하는 모습을 보면, 경기에 뛴 것은 아니지만 보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돋았다. 수원 아니면 의미가 없었다. 늘 내 첫 프로팀은 수원이었으면 했는데, 그 꿈을 이뤘다"고 했다.
김정훈은 알아주는 유망주였다. 그는 영재 골든에이지로 13세에 처음 태극마크를 달았고, 이후 U-13, U-15, U-17, U-19, U-20 대표팀까지 단 한번도 연령별 대표를 놓치지 않았다. 4강 신화를 썼던 2023년 U-20 월드컵 최종 명단에도 승선했다. 하지만 불운하게도 많은 경기에 나서지는 못했다. 애매한 나이 때문이었다. 2004년생이라 연령별 대표팀마다 늘 한 살 많은 형들과 경쟁해야 했다.
그때의 경험을 자양분으로 삼은 김정훈은 프로 무대에서 마침내 능력을 펼쳤다. 선배 두 명이 다치는 우연 속 데뷔에 성공한 김정훈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자신의 가치를 입증했다. 올 겨울부터 목표로 세운 데뷔에 성공한 김정훈은 이제 당당히 주전 경쟁에 나선다. 지난 충남아산전을 통해 막내도, 서드 골키퍼도 아닌 김정훈만의 경쟁력을 보여준만큼, 가능성은 충분하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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