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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인터뷰] "4kg 빠지고 악몽에 울어도"..'헤다 가블러', 이영애의 행복한 스트레스(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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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문지연 기자] 배우 이영애(54)의 행복한 스트레스.'헤다 가블러'다.

연극 '헤다 가블러'는 LG아트센터가 개관 25주년을 기념해 제작한 연극으로, 지난 7일부터 오는 6월 8일까지 무대에 오른다. '헤다 가블러'는 이영애의 32년 만의 연극 복귀작이자, 2024년 '벚꽃동산' 이후 LG아트센터가 선보이는 새로운 제작 연극. 세계적인 극작가 헨리크 입센이 쓴 '헤다 가블러'는 억압된 시대 속에서 자유를 갈망하는 한 여성의 내면을 섬세하게 파고든 고전 명작이다. 주인공 헤다는 아름다우면서도 냉소적이고 지적이면서도 파괴적인 성격을 지닌 복합적인 캐릭터로, 이영애가 헤다의 계보를 이으면서 파격적인 헤다를 그려내는 중이다.

5회의 공연을 선보인 뒤 13일 스포츠조선과 만난 이영애는 무려 32년 만에 연극 출연을 결정한 이유를 설명하며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이영애는 "인연인 것 같다. 본인이 하고 싶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 타이밍도 맞아야 하고, 여러가지가 있는데, '헤다 가블러'는 타이밍이 잘 맞았던 거다. 또 하나는 대학교 은사님인 김미혜 교수(한양대 자문교수)께서 입센 작품을 10년 넘게 완전 번역을 하시고 노르웨이에서 훈장도 받으셔서 축하를 했던 자리에서 만약 연극을 한다면 무엇을 해볼지를 얘기했었는데, 그때 '헤다 가블러'를 얘기했다. 오로지 여성에 초점을 맞추는 게 아니라 다양한 모습을 가진 인물이고 배우가 가진 한 가지 색이 아니라 다양한 색깔을 보여줄 수 있잖나. 이영애스럽게 풀어보는 건 어떨까 생각을 하고 얘기를 했었다. 김미혜 교수님이 작년에 '벚꽃동산'을 보러가자고 하셔서 LG아트센터 센터장님을 만났고,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무대도 너무 좋았고, 마침 '은수 좋은 날'이 딱 끝난 타이밍이라 '때가 잘 맞겠네요'하고 덜컥 하게 됐다. 한 달 정도 고민도 있었지만, 여러가지 주변과 타이밍이 맞았던 것 같다"고 했다.

용기있게 도전했지만, 무대에 오르기 전까지 두려움도 상당했다. 그동안 영화, 드라마에서 다양한 연기를 펼쳐왔던 이영애도 무대가 두렵기는 했다고. 이영애는 "체력적으로는 힘들었다. 3~4kg 정도가 빠진 것 같다. 체력을 보강하려고 노력을 많이 했는데, 제가 좋아서 선택한 것이기에 누구를 원망할 수도 없고 행복한 다이어트라 생각하고 있다"면서도 "이 연기를 하면서 대사를 까먹는 꿈도 꾸고, 극장에서 관객들이 다 나가버리는 꿈도 꿨다. 그러면서 '영애 씨, 그렇게 하면 안돼요' 이러기도 하고. 마치 그게 실제인 줄 알았다.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꿈에서도 '이게 꿈이면 너무 좋겠다'면서 엉엉 울었다. 그런데 그게 꿈이었다. 다시 일어나서 책을 들고 그랬는데, 있던 약속도 다 취소하고 제가 너무 쉽게 생각했었다고 느꼈다. 어디가면 다들 '너무 힘들지 않냐'고 하시는데, 너무 힘들다. 그런데 너무 너무 너무 재미있다"며 웃었다.

연기 톤도 그동안과는 너무나 달랐다. 이영애는 "맨처음에는 '현타'가 왔었다. 다른 연극 배우들과 발성이 너무 다르더라. 그래서 그때 연극하는 친구에게 전화해서 '나 큰일났다. 봐줘라.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하면서 발성이나 스킬, 테크니컬한 부분에 대해 들었다. '무대에서는 이런 게 필요하다'고 해주더라. 극에 등장하는 김정호 배우나, 이승주, 백지원 씨 같은 역량이 있는 배우들도 저를 잘 가르쳐줬고 도와줬고 자신감도 불어넣어줬다. 그분들 덕에 조금씩 배웠다. 사실 제 목소리를 갈아엎을 수는 없잖나. 가지고 태어난 걸 어쩌겠나. 그래서 연극할 때는 헤다스럽게, 리듬감이나 스피드나, 톤의 차이를 높낮이 조절하며 그렇게 하려고 노력했고, 그 안에서 즐길 수 있도록 여유를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헤다 가블러는 결혼이라는 제도에 대한 억압을 느끼는 인물로, 이영애는 압박에 짓눌린 여성을 넘어, 한 인간의 결핍을 표현하려 노력했다. 이영애는 "굳이 결혼한 여자, 결혼 제도에서 벗어난다는 단순한 생각보다는 연극적으로 사람들이 사유를 할 수 있는, 스스로에게 화두를 던질 수 있는 제시적 연극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지금 상황에 결혼에서 벗어나고 그런 단편적인 것이 아니라 현대인들이 가질 수 있는, 누구나 자신 안에 자신도 모르는 욕망도 있을 거고 표출하지 못하는 질투도 있을 거고, 자아가 많을 것 아닌가. 그걸 겹겹이 풀어내보자는 생각도 하면서 공부하듯이 했다"면서 "어떤 팬분 중에는 심리상담을 하시는 것 같은데, 헤다를 굳이 이영애가 아니더라도 윗집, 아랫집에 사는 여자. 옆집 아저씨 등 누구나 그런 외적인 자아와 내적인 자아가 있을 것이라고 보는 분들이 '여자, 결혼' 생각보다는 서로 얘기거리를 줄 수 있는 연극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설명했다.

이영애는 "헤다의 많은 부분들이 제 안에도 있는 것 같다. 저도 보지 못했던 연기의 즐거움이란 그런 것이다. 내 안에 나도 몰랐던 나를 끌어올려서 스스로 희열을 느끼기도 하고. 제가 어디 가서 눈을 부라리며 '널 불태울 거야' 하는 걸 해보겠나. 저를 통해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연극적으로도 느낀다. 굳이 제 안에 헤다가 있다면, 누구나 그런 악한 마음은 있을 수 있다. 악플 다는 사람들을 보면서 '가다가 넘어져라' 생각해보기도 하고 뉘우치기도 하고. 사람 마음이 다 똑같지 않을까. 헤다가 있다고 하지만, 작은 헤다일 수도, 큰 헤다일 수도 있다. 크기가 다를 뿐이지 누구나 헤다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여성으로서 헤다의 삶에도 공감했다. 실제 가정 속에서도 부담감을 느끼기도 했다는 이영애는 "저도 우울증까지는 아니지만, 코로나19 때 힘들었다. 저는 애가 둘이고, 초등학교 2학년, 3학년인데 집에서 영상 수업을 받아야 했잖나. 미치겠더라. 울었다. 뛰쳐나가고 싶었다. 그래서 선택한 작품이 '구경이'였다. 일단 선택해서 해보자는 생각이었다. 그때가 참 힘들었다"면서 "그런 면에서 헤다와 저는 차이가 있다. 제 일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한다. 헤다는 시대적 배경이 19세기에 그런 보수적인 가정생활을 해야 했던 것이고, 지금은 차이가 있을 것이다. 굳이 비교를 하자면, 어쨌든 주부 입장에서는 아이만 키우고 육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행복한 일이기도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잖나. 여자 입장에서도 또 그렇더라. 제 일에 대해 다시 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함을 느끼고 있다"고 밝혔다.

일의 재미, 그걸 넘어 연극에 대한 재미까지 느끼고 있는 이영애다. 이영애는 "연극 무대에 자주 오를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분명히 좋은 기회가 있으면 할 것 같다. 멋진 대극장에서 연기를 해봤으니, 다음에는 관객과 직접 소통할 수 있고, 눈빛도 오고갈 수 있고, 호흡을 느낄 수 있는 곳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해 소극장 무대에서의 공연까지도 기대하게 만들었다.

문지연 기자 lunamoo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