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흥민(33·토트넘)은 의심할 여지없는 '월드클래스'다. 2021~2022시즌 아시아인 최초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득점왕을 차지한 것을 비롯해, 2020년 한해 가장 멋진 골을 기록한 선수에게 주는 FIFA(국제축구연맹) 푸스카스상, 4번의 EPL 이달의 선수상, 9번의 베스트 풋볼러 인 아시아상 등을 수상했다. 이밖에 열거하지 못한 상까지 포함하면, 누구보다 빛나는 커리어를 쌓고 있다.
그렇지만 손흥민에게 없는 딱 한가지, 바로 우승 트로피다. 독일 분데스리가, EPL, 유럽챔피언스리그(UCL), FIFA 월드컵 등 세계 최고의 무대를 누볐지만, 단 한번도 정상에 서지 못했다.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 금메달이 유일한 우승 기록이다. 하지만 아시안게임은 FIFA 주관 대회가 아니다.
손흥민에게 마침내 무관 탈출의 기회가 찾아왔다. 손흥민의 토트넘은 22일 오전 4시(한국시각) 스페인 빌바오의 에스타디오 산 마메스에서 맨유와 2024~2025시즌 유로파리그(UEL) 결승전을 치른다. UEL은 유럽챔피언스리그(UCL) 다음 레벨의 유럽클럽대항전이다. 이번 대회 결승전은 시즌의 '라스트 찬스'다. 토트넘은 시즌 내내 부진을 거듭하며, EPL과 리그컵, FA컵을 모두 놓쳤다. EPL 출범 후 구단 최다인 21패를 당하며 리그 17위까지 추락했다. 이번 시즌 내내 시즌 종료후 손흥민이 토트넘을 떠날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흘렀다. 따라서 손흥민 입장에서 이번 결승전은 토트넘에서 트로피를 들어올릴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될 수 있다. 토트넘 역시 2007~2008시즌 리그컵을 들어올린 이후 무려 17년 만에 우승 기회를 잡았다. 유럽대항전 우승은 1983~1984시즌 당시 UEFA컵 우승 이후 41년 만이다.
그래서 손흥민의 각오도 남다르다. 그는 최근 인터뷰에서 "내가 토트넘에 남아 있었던 이유는 남들이 하지 못했던 일들을 해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퍼즐을 만들려면 모든 피스가 다 있어야 한다. 모든 피스를 맞췄다고 생각하는데 결국 가장 중요한 마지막 한 피스가 부족한 것 같다. 그 피스를 찾아 10년 동안 헤맸다. 이번에는 그 퍼즐을 맞출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준비는 끝났다. 지난달 11일 프랑크푸르트와의 UEL 8강 1차전에서 부상으로 쓰러졌던 손흥민은 7경기 연속 결장했다. 시즌 아웃 가능성도 제기됐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꾸준히 몸을 만든 손흥민은 11일 크리스탈팰리스와의 EPL 36라운드에서 후반 13분 교체투입되며 복귀전을 치른데 이어, 17일 애스턴빌라와의 37라운드에서는 선발 라인업에 이름을 올렸다. 74분간 그라운드를 누비며 정상 컨디션을 회복했음을 알렸다.
손흥민의 이번 결승전 선발 출전 가능성은 매우 높다. 엔제 포스테코글루 토트넘 감독은 지난 애스턴빌라전 후 "손흥민은 UEL 결승전에 출전할 준비가 되어 있다. 선발로 나설 준비가 됐다"고 말했다.
상대는 맨유다. 맨유 역시 올 시즌 최악의 행보를 보였다. 구단 최다인 18패나 당했다. UEL 우승팀에는 다음 시즌 UCL 출전 티켓이 주어지는만큼, 맨유 입장에서도 절대 물러설 수 없는 경기다. 토트넘은 이번 시즌 맨유에 강했다. 토트넘은 세 차례 맨유와 격돌해 모두 승리를 거뒀다. 손흥민도 기분 좋은 기억이 있다. 맨유와의 리그컵 8강전서 환상적인 코너킥 골을 기록했다. 이 골은 토트넘 팬 선정 '올해의 골'로 선정됐다. 과연 손흥민은 무관의 제왕에서 탈출할 수 있을까. 그 결과가 22일 새벽 빌바오에서 공개된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