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사전적 의미로 비일상을 경험하는 시간을 말한다. 일상과 다른 경험이나 활동을 하고, 집에서 멀리 떨어질수록 만족감과 몰입도가 높다. 그러나 여행의 사전적 의미가 최근 조금씩 흔들리고 있다. 일상과 비일상의 경계가 모호해졌다. 여행을 가서 일을 하는 워케이션, 여행지에서 일상생활을 경험하는 한 달 살기 등 다양한 형태로 여행은 진화 중이다. 강원도 영월과 평창의 산줄기를 따라 걸었다. 풀 내음 가득한 숲, 기암괴석이 병풍처럼 펼쳐진 계곡, 생태습지 등 풍경 변화는 일상에서 경험하지 못해 더 인상적이다. '오늘은 뭘 먹을까?', '요즘 생활은 어때?', "요즘 즐거운 게 뭐야?" 등 비일상 속에서 일상을 나눈다눈다. 그동안 일상생활에서 나누지 못했던 이야기는 말에 꼬리를 물고, 속 깊은 정이 쌓인다. 특별한 게 없지만, 하루를 더욱 빛나게 하는 만드는 마법 같은 곳 '영월과 평창'의 이야기.
▶오대산 선재길을 걸으며
강원도 평창의 오대산을 찾았다. 걷기의 시작은 선재길이다. 선재길은 평창 오대산의 월정사에서 시작해 동피골을 거쳐 상원사까지 약 10km 이어진다. 대부분이 평지로 되어 있어 누구나 부담 없이 걷기 좋다. 1960년대 말 도로가 나기 전부터 스님과 불교신도들이 다니던 길이다. 사계절의 변화를 뚜렷하게 담고 있고, 지금은 짙은 녹음이 활기를 돋운다. 선재길 시작은 월정사 초입의 전나무 숲길이다. 드라마 '도깨비' 촬영지도 더욱 유명해졌다. 일주문에서 시작해 사찰 입구 금강교까지 약 1km에 달하는 산책로로 아름드리 전나무가 감싸고 있어 아늑하다. 길은 오대천을 몇 차례 가로지르며 이어진다. 동피골로 향하는 길은 키가 큰 신갈나무와 단풍나무 숲으로 덮여있고 땅은 흙과 낙엽으로 쌓여있다. 동피골에는 국립공원에서 조성한 멸종위기식물원이 있다. 멸종위기식물원에는 오대산에 자생하는 멸종위기종과 특정 식물 등 30여종의 희귀식물을 복원하고, 주변을 정원형태로 조성했다. 동피골을 지나면 조릿대 숲길이다. 조릿대 숲길을 지나면 차가 다니는 비포장도로로 연결된다. 이 도로를 20m정도 걸으면 다시 오른쪽으로 숲길이 이어진다. 숲과 오대천을 따라 걷다 보면 상원사에 다다른다.
▶잠시 머무르기 좋은 곳 '상원사, 월정사'
상원사는 오대산 산중에 자리 잡은 우리나라에서 몇 손가락 안에 꼽히는 선원이다. 세조의 원찰로서 세조 10년 혜각존자 신미의 주선으로 중창됐다. 상원사 입구에는 커다란 잎갈나무가 있고 관대걸이라는 돌 조각이 있다. 세조 임금이 부스럼을 치료하기 위해 상원사 계곡을 왔다가 의관을 걸어놓은 것이 유래가 되었다고 한다. 왕실의 보호를 받았던 이 절에는 현존하는 동종 중 가장 오래되고 아름다운 상원사동종(국보 제 36호)이 있다.
월정사는 선재길 초입에 있다. 사찰을 둘러보는 것도 좋고, 주변 산책로를 따라 곳곳에 마련된 쉼터에서 휴식을 즐기는 것도 좋다. 월정사에서 산 아래로 조금 내려 걷다보면 월정사 성보박물관이 있다. 성보박물관은 귀중한 불교유물과 강원 남부 60여개의 사찰의 성보를 모아 놓은 곳이다. 국보인 상원사중창권선문과 1970년 국보 월정사 석조보살좌상, 월정사팔각구층석탑의 해체, 보수 시에 발견된 총 12점의 사리구와 1984년도에 발견된 상원사목조문수동자좌상의 복장유물 세조어의를 비롯한 총 23점 보물로 일괄 지정해 보존, 전시하고 있다.
▶몸과 마음의 휴식 공간 '자연명상마을 옴뷔'
평창군 진부면에는 오대산 자연명상마을 옴뷔가 있다. 2018년 문을 연 곳으로 숙박시설과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명상으로 평안하고 자연의 기운으로 건강해지는 힐링스테이다. 숙박은 싱글룸, 트윈룸, 온돌방으로 구성되어 있고 모든 숙소에는 편백나무의 명상공간이 있다. 객실 내에는 디지털 디톡스라고 하여 TV, 인터넷, 냉장고가 없다. 대표 체험 프로그램으로 요가와 명상 등이다. 호흡과 몸의 감각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림으로써 내면의 성찰을 할 수 있는 시간이다. 무료로 이용이 가능하다. 다만 프로그램과 체험 시간은 변동될 수 있으니 사전 확인이 필요하다.
자연명상마을 옴뷔에서 차로 30여분 이동하면 삼양라운드힐이 나온다. 해발 850~1470m의 고산지대에 위치한 동양 최대의 목장이다. 600만평의 푸른 초원에서 자유롭게 방목되는 동물들과 언덕위에 우뚝 솟은 풍력 발전기는 자연바람을 이용한 친환경 에너지원으로 국내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삼양라운드힐의 산책길은 바람의 언덕, 숲속의 여유, 사랑의 기억, 초원의 산책, 마음의 휴식 총 다섯개의 구간으로 나뉘어 있다. 산책길은 각각 특색 있는 풍경이 펼쳐지기 때문에 삼양라운드힐을 제대로 즐기려면 한 구간이라도 꼭 걸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드넓은 목초지에서 펼쳐지는 양몰이공연, 송아지 우유주기 체험, 양, 타조 먹이주기 체험 등 다양한 볼거리와 체험을 즐길 수 있다.
▶영월에서 만난 선돌, 물무리골 생태습지'
선돌 영월읍 방절리 서강 안에 절벽을 이룬 곳에 있다. 소나기재 정상에서 이정표를 따라 100m 정도 들어가면 거대한 기암괴석이 기역 자로 굽은 강줄기와 함께 나타난다. 선돌은 높이 70m 정도의 바위로 신선암이라고도 한다. 거대한 탑 모양으로 솟아있는 바위는 신선이 노닐었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서강의 푸른 물과 어우러져 경치가 아주 뛰어나다.
물무리골생태공원은 영월에서의 걷는 즐거움을 느끼게 하는 곳이다. 물무리골생태공원이 조성된 물무리골 생태습지는 강원 고생대 국가지질공원 중 하나인 내륙습지다. 습지 일대는 경사가 급한 해발고도 400m 이상의 산지가 발달했다. 물무리골생태공원은 멸종위기 2급으로 분류된 백부자와 산작약, 잠자리난초, 큰조롱 등의 식물이 서식하고 있고 우리나라에서 자생지가 드문 좀개미취, 거센털지치, 물쇠뜨기, 진퍼리잔대, 까치수염 등 희귀식물도 찾아볼 수 있다. 멸종위기종인 삵, 황조롱이를 비롯하여 고라니, 멧돼지 등 다양한 종의 야생동물과 반딧불이 등이 서식하고 있는 생태계의 보고다. 전나무숲길에선 나무 그늘에서 쉬어갈 수 있는 평상도 마련돼 있다.
김세형 기자 fax123@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