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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남자예능인상' 기안84 "수상은 신내림 같은 것…운도 따르고, 시기도 맞아야"(제4회 청룡시리즈어워즈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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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정빛 기자] 웹툰 작가로 이름을 알린 기안84는 이제 예능이라는 또 다른 무대의 중심에 서 있다.

웹툰 '패션왕', '복학왕'으로 한 세대를 웃기고 울리던 그가 지금은 예능으로 대중에 스며드는 중이다. MBC 방송연예대상에서 '비연예인 최초 대상'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우며 '대상84'라 불리더니, 지난 7월 18일에는 또 하나의 이름을 얻었다. 바로 '청룡84'. 넷플릭스 오리지널 '대환장 기안장'으로 제4회 청룡시리즈어워즈 남자 예능인상을 품에 안은 것.

그 영광의 여운이 채 가시지 않은 어느 날, '기안84'라는 고유 장르를 살아가는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대상84에서 청룡84까지. 화려한 타이틀은 쌓여가지만, 그는 여전히 낯을 가리고 어색함을 숨기지 못했다.

"시상식은 항상 떨려요. 모르는 사람이 보고 있으니, 부담도 되고. MBC 시상식도 어색한데, 청룡은 또 배우분들도 많으니까 더 어색하더라고요. 평소 예능 안 하시는 배우분들도 계시니 신기했어요. 이병헌 형님도 그렇고, 주지훈 형님도 그렇고, 어렸을 때 TV에서 보던 분들인데 신기하더라고요."

그래도 그날을 '즐거웠다'고 기억했다. 기안84의 첫 청룡은 이러했다. "전체적으로 즐거웠어요. 속도감도 있어서, 요즘 시대에 딱 맞더라고요. 보시는 분들도 재밌게 보시지 않을까 싶어요. 사실 임시완 씨가 시상식 일주일 전에 밤에 연습하러 간다고 하더라고요. 청룡에서 뭘 한다고 해서 궁금했는데, 어깨가 무거워 보였죠. 그런데 아이돌 출신이라 그런지, 대단하더라고요. 즐겁게 봤습니다."

낯선 시상식이었지만, 그의 옆에는 '기안장' 팀이 있었다. "'기안장' 식구들이 많이 축하해줬어요. (정)효민 PD님이 엄청 좋아해 주셨죠. (지)예은이도 많이 축하해줬고요. 석진(BTS 진)이도 '형이 받아서 좋다'라고 메시지를 보내줬어요. 그래도 고생해서 찍었는데, 상 받으니 기분 좋았어요. 명분도 좀 서고요. 사실 촬영이 배 위에서 하는 거라 다들 쉽지 않은데…. 이렇게 상을 받으니 감사했어요."

'대환장 기안장'은 기안84가 직접 설계하고 구현한 예능이다. 울릉도 바닷가 위에, 암벽 등반과 봉타기를 조건으로 만든 낯선 민박. 그 모든 공간에는 기안84의 엉뚱함과 관찰력, 그리고 투숙객에 대한 애정이 녹아 있다.

"제가 그린 그림으로 그렇게까지 구현해 주셔서 너무 신기했죠. 가볍게 웃으면서 상상한 건데, 만들어주셨어요. 넷플릭스가 글로벌이고 저에겐 새로운 플랫폼인데, 한 번 함께 해보고 싶기도 했어요. 다 촬영하고 나왔을 때, 재밌는 것도 있고 아쉬운 것도 있었는데, 청룡 때문에 시즌1이 유종의 미로 끝난 것 같아요."

이러한 기안84의 열정은 시청자들에게도 전해졌다. '대환장 기안장'은 비영어권 글로벌 TOP 10에 진입했고, 시즌2까지 일찌감치 확정했다. "사실 할 때는 힘드니까 '또 어떻게 촬영하냐'라고 했는데, 집에 가면 근질근질해요. 절대 안 뛴다고 했지만 다시 뛰고 싶은 마음이 스믈스믈 올라오는 마라톤처럼요. 그래서 요즘 시즌2는 또 어떻게 그릴지 고민이 있어요."

'나 혼자 산다'로 시작된 방송 여정은 '대환장 기안장'으로 정점을 찍은 분위기다. 본업이 웹툰 작가인 기안84는 예능의 언어를 배운 것이 아니라, 자신의 언어로 예능을 다시 쓰고 있다. 우리가 익히 알던 예능인의 문법과는 다른 방식으로 예능을 살아가는 사람. '태어난 김에 사는 남자'답게 매 순간 솔직하고 날것 그대로 걸어온 그는 누군가에게는 '대환장'의 아이콘, 또 누군가에게는 꾸밈없는 낭만주의자였다.

"만화는 10년 넘게 했는데, 지금은 시간을 많이 쓰고 있는 게 방송 쪽이네요. 이제는 데이터가 좀 쌓여서, PD님과 얘기할 때 '이런 거는 이렇게 가자'라고도 해요. 아무래도 말을 잘 하는 스타일은 아니니, 몸으로 고생하는 게 많죠. 그래서 사실 체력적으로 힘들 때도 있어요. 그렇다고 고생을 위한 고생은 아닌 것 같아요."

청룡시리즈어워즈 심사위원들도 그를 '룰 브레이커'라 부르며 표를 던졌다. "심사평을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감사했어요. 만화를 그릴 때도 내가 할 수 있는 건 '뭐가 있을까?'라고 생각하면서 연재했어요. 신선함에 초점을 맞추려고 하죠. 방송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잘 만든 다른 프로그램도 많잖아요. 이미 나와 있는 메뉴는 맛집이 많으니, 없는 건 뭐가 있을지를 고민하죠."

기안84가 특별한 이유는 단순히 웃기는 사람이 아니어서다. 그의 예능엔 계산이 없고, 편집을 위한 과장이 없다. 날 것 같은 감정은 오히려 가장 정제된 방송 언어로 다가온다. 어딘가 늘 서툴면서도, 편견 없는 모습에서 시청자들은 오래된 친구처럼 위로와 공감을 받고 있다.

"저는 스스로 특이하다고 생각을 안 했어요. 그런데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주변에 비슷한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요. 제 또래 아저씨들도 저를 보면서 '나도 저래'라고 생각은 하지만, 표현을 안 해서 그런 것 같아요(웃음)."

이제 기안84는 예능계에서 하나의 브랜드가 됐다. '기안장'은 물론, '태계일주', '기안이쎄오', '인생84'까지. 자신의 이름과 캐릭터를 건 콘텐츠가 줄줄이 등장하고 있다.

"하다보니까 감사하게도 그렇게 됐네요. 그런데 웹툰 신작하듯이, 부담이 되긴 해요. 시청률 안 나오면 어떡하지라는 생각 때문이죠. 웹툰할 때처럼, 주식창 보듯이 시청률 표를 들여다 보게 돼요. 그런데 넷플릭스는 다행인지 시청률이 안 나오더라고요(웃음)."

그에게 상은 '자격'이 아니라 '운명'에 가깝다. 청룡도 마찬가지다. "신내림 같은 거라고 생각해요. 내가 잘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운도 따라야 하고, 시기도 맞아야 하잖아요."

수상 이후 그의 삶은 바뀌지 않았다. 여전히 먹던 걸 먹고, 입던 옷을 입고, 주변도 그대로다. 하지만 마음속에선 조용한 고민이 시작됐다.

"변하면 무너질 것 같아서, 먹던 대로 먹고, 입던 대로 입어요. 사는 생활은 거기서 거기인 것 같아요. 그래도 고민은 이제 마흔둘인데... 저는 20대부터 그림 그리고, 방송하면서 살아왔어요. 60세까지 일한다고 치면 18년 남았죠. 그 시간 동안 뭘 해야 하지? 그 고민을 좀 하게 돼요."

'대상84', '청룡84', 그리고 다음 수식어는 무엇이 될지 알 수 없다. 그래도 한 가지만큼은 분명하다. 그는 또 뭔가 '대환장스러운' 걸 들고 나타날 것이다.

"만화는 처음 할 때부터 계획이 어느 정도 있었어요. 그런데 방송은 막연하게 하고 싶다고만 생각 했었는데, 아직까지 하고 있네요. 이게 어디까지 어떻게 갈진 모르겠어요. 그래서 지금이 되게 고맙고 즐겁죠. 일단 방송을 할 수 있을 때까지 열심히 해야죠!"

정빛 기자 rightlight@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