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안소윤 기자] 말 그대로 기대할 수밖에 없는 조합이다. 한국 영화계의 거장 박찬욱 감독이 올가을 최고의 배우들과 함께 신작 '어쩔수가없다'로 돌아온다.
영화 '어쩔수가없다' 제작보고회가 19일 서울 용산구 이촌동 CGV 용산아이파크몰에서 진행됐다. 현장에는 배우 이병헌, 손예진, 박희순, 이성민, 염혜란, 차승원과 박찬욱 감독이 참석했다.
9월 개봉하는 '어쩔수가없다'는 삶이 만족스러웠던 회사원 만수가 덜컥 해고된 후, 아내와 두 자식을 지키기 위해, 어렵게 장만한 집을 지켜내기 위해, 재취업을 향한 자신만의 전쟁을 준비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는 작품으로, 박찬욱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박 감독은 2022년 개봉한 영화 '헤어질 결심' 이후 3년 만에 '어쩔수가없다'로 국내 관객들과 만난다. 그는 "원작 소설을 처음으로 읽고 이걸 영화로 느끼고 싶다는 생각을 한 지가 벌써 20년이 다 되어간다. 물론 그동안 이 한 작품에만 매달려온 건 아니지만, 끊임없이 노력해 왔는데 마침내 성사가 되었다. 빨리 여러분들에게 보여드리고 싶은 마음 뿐"이라고 전했다.
이어 연출을 맡게 된 계기에 대해 "사춘기 때부터 미스터리 소설을 좋아해서 이것저것 읽어왔다. 그중에서도 이렇게까지 영화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든 작품이 없었다. 대게 미스터리 장르라는 게 '누가 범인인가'라는 수수께끼만 풀리면 궁금증이 바로 해소되어 그다지 재밌지 않더라. 반면 '어쩔수가없다'는 몇 번을 곱씹어 봐도 재밌고 음미할 만한 가치가 있는 작품이다. 여러 가지 심리적인 장치가 잘 되어 있다"며 "아주 쓸쓸한 비극인데, 새로운 종류의 부조리한 유머를 넣을만한 가능성이 보였다. 이 소설 자체도 그런 면을 갖고 있지만, 제가 영화로 만든다면 더 슬프고 웃긴 유머가 많이 살아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설명했다.
특히 '어쩔수가없다'는 박 감독과 이병헌의 세 번째 만남으로도 기대를 모았다. 이병헌은 "아마 감독님만큼 이 영화가 개봉하기만을 기다린 분은 없겠지만, 저 역시 촬영하면서 손꼽아 기다렸다. 영화에 대한 기대가 너무 커서, 개봉일이 다가오는 하루하루가 굉장히 설레고 긴장됐다"고 털어놨다.
이병헌은 25년간 헌신한 제지 공장에서 하루아침에 해고된 후 재취업을 준비하는 구직자 만수로 분했다. 그는 "대본을 보자마자 감독님한테 '웃겨도 돼요?'라고 물어봤다. 처음 시나리오 읽고서 '너무 재밌는데? 감독님이 만드신 작품이 맞나' 싶을 정도로 웃음 포인트가 많더라. 혹여나 제가 대본을 잘못 해석한 것일까 봐 물어본 것도 있었다. 감독님도 웃기면 더 좋다고 하셨는데, 그저 웃기기만 한 작품은 아니다. 여러 가지 감정도 들면서 웃기는 코믹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손예진과 처음으로 호흡을 맞춘 소감을 묻자, 이병헌은 "예진 씨는 제가 예상했던 것에서 훨씬 더 벗어나서 그 이상을 디테일하게 연기하더라"라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손예진은 영화 '협상' 이후 7년 만에 스크린에 복귀해 반가움을 더했다. 그는 "박찬욱 감독님과 작품을 함께 해보고 싶었다"며 "병헌 선배가 먼저 캐스팅이 된 상황이었고, 제 캐릭터나 다른 여러 가지를 배제하더라도 '이 작품을 하지 않으면 후회하겠다'는 생각이 컸다. 너무나 강렬한 서사의 이야기였고, 책을 덮을 때도 '아 이걸 하는 게 맞나' 싶으면서도 '안 하면 안 될 것 같다'는 마음이 강하게 들었다"고 말했다.
작품 안에서는 남편의 실직에 질책보단 위로를 건네고 가족의 중심을 지키는 미리 역을 맡았다. 손예진은 연기에 중점을 둔 부분에 대해 "아이를 낳고 처음으로 하는 작품이라 도움이 된 것 같다. 아이를 낳기 전에도 나이 많은 엄마와 이혼녀 등 다양한 역할을 해봤는데, 실제로 경험해 본 것은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가 없겠구나 싶었다. 아이들과 호흡을 맞출 때도 자연스러웠고, 가족을 책임지고 싶은 따뜻한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전했다.이병헌은 손예진이 캐릭터의 모성애를 언급하는 말을 듣던 중 "제가 현장에서 봤던 예진 씨의 모습과는 달라서 의아하다. 우리 딸로 나오는 아이가 정말 질문이 많다. 저는 계속 질문에 대답해 주다가 몇 번 정신을 못 차린 채 슛을 들어갔다"며 "근데 손예진 씨는 아이의 질문에 한 번도 대답을 안 하더라. '예진 씨 물어보면 대답 좀 해줘'라고 했더니, '그건 선배가 맡아서 해 달라. 저는 감정 몰입을 해야 한다'고 하더라. 근데 이 자리에서 이렇게 말을 하니까, '그 당시 마음은 그랬구나' 싶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이에 손예진은 "딸로 나온 친구가 너무 호기심이 많아서 우리한테 계속 물어본다. 리허설 때부터 슛 들어가기 전까지 질문을 한다. 제가 대사도 많고 감독님의 감정적인 디테일한 디렉팅도 있었다. 이걸 해내야 하는데, 옆에서 계속 말을 하니까 어쩔 수 없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이내 이병헌도 "저도 그랬다"고 맞받아쳐 현장을 웃음 바다로 물들였다.
연기파 배우들도 대거 합류해 작품에 생동감을 불어넣는다. 박희순은 업계 불황 속에서도 잘나가는 제지 회사의 반장 자리를 지키고 있는 선출 역을, 이성민은 재취업이 절실한 업계 베테랑 범모로 변신했다. 염혜란은 풍부한 감성을 지닌 범모의 아내 아라를, 차승원은 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실력자 시조 역을 맡아 빛나는 활약을 예고했다.
박희순은 "선출역으로 선출됐다"며 "나름 영화배우로 먹고살았는데, 요새는 영화를 기다리다가 굶어 죽을 것 같아서 OTT 전문 배우로 변신을 꾀하던 와중에 기쁜 마음으로 참여하게 됐다"고 밝혔다.
박 감독과 첫 작업을 함께하게 된 소감에 대해선 "감독님의 작품 대본이 들어왔다는 소식을 듣고 이미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대본이 너무 재밌고, 코미디적 요소가 많더라. 극적인 상황에 다다를수록 웃음의 감동이 커지는데 페이소스도 같이 커지는 특이한 작품이었다"며 "감독님이 쓰셨다고 한 게 의아할 정도로 독특했고, 재밌었다. 감독님이 이번엔 깐느(칸)를 포기하시고 천만 관객을 노리시나 했다"고 웃으며 말했다.
마지막으로 박 감독은 최근 보도된 미국작가조합(Writers Guild of America, WGA) 제명 이슈와 관련해 입장을 밝혔다. 그는 "특별히 더 드릴 말씀은 없다. 제 입장이 많이 보도가 되었기 때문에 덧붙일 말씀은 없다. 그냥 저의 작가로서의 활동에는 아무런 제약이나 제한은 없다"고 전했다.
한편 '어쩔수가없다'는 제82회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됐다. 한국영화가 경쟁 부문에 진출한 것은 13년 만이고, 박찬욱 감독 개인으로는 영화 '친절한 금자씨' 이후 20년 만이다. 이외에도 제50회 토론토영화제, 제63회 뉴욕영화제 공식 초청작에 이름을 올렸으며,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됐다.
안소윤 기자 antahn22@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