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조지영 기자] "한동안 '재벌집 막내아들' 형수님으로 불렸는데 '히든페이스' 이후 형수님을 지우고 제가 연기한 캐릭터로 불리니까 너무 신기하더라고요."
불면 날아갈 듯, 쥐면 꺼질 듯 가녀린 외형을 가졌지만 내면은 누구보다 강한 강단과 집요함으로 똘똘 뭉친 단단한 배우다. 외유내강의 인간화 그 자체인 배우 박지현(31)은 7년 만에 청룡에서 인생 최고의 순간을 만끽, 더할 나위 없는 화양연화를 맞았다.
치정 스릴러 영화 '히든페이스'(김대우 감독, 스튜디오앤뉴 제작)에서 욕망에 빠져든 첼리스트 미주로 변신해 인생작을 경신한 박지현은 지난 11월 19일 열린 제46회 청룡영화상에서 여우조연상을 수상해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2018년 열린 제39회 청룡영화상 당시 '곤지암'(정범식 감독)으로 신인여우상 후보에 오른 박지현은 7년 만에 여우조연상으로 재도전, 청룡의 영예를 한 몸에 안았다.
청룡영화상 한풀이에 성공한 박지현은 최근 본지와 만나 꿈 같았던 청룡영화상의 그때를 다시 한번 곱씹었다. 박지현은 "솔직히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직후부터 기억이 없다. 경황이 너무 없었고 얼떨떨한 상태로 상을 받은 후부터 머릿속이 백지가 된 기분이었다. 정말 정신이 없었는데 다음날 바로 촬영이 있어서 현장에 갔더니 다들 '청룡영화상 여우조연상 배우가 왔다'라며 한마음으로 축하해 주더라. 너무 민망하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했는데 다들 기뻐해 주는 게 느껴져서 그 마음이 또 고맙더라"고 고백했다.
국내에서 손꼽히는 베테랑 배우들이 각축을 벌이는 조연상 부문에 대한 부담감도 이어졌다. 박지현은 그야말로 '누가 받아도 이견 없는' 조연상 주인공으로 자신이 선택된 것에 대해 "지금도 믿기지 않지만, 청룡영화상 당일에도 일말의 기대도 하지 않고 가서 더 놀랐던 순간이었다. 모든 상이 받기 힘들지만 특히나 조연상은, 정말 받기 어려운 상이지 않나? 너무 쟁쟁한 선배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이만하면 성공했다' 싶었던 터라. 일찌감치 포기 상태였다. 옆에 함께 앉은 동료 박진영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tvN 드라마 '유미의 세포들' 때 인연이 있어서 나름 편안한 사이였는데 서로 '나는 수상자로 호명되면 큰일 난다' '호명되는 순간 사고다' '소감을 준비 안 해서 아무 말 대잔치가 열릴 수도 있다'며 웃으며 농담을 주고받았는데 말도 안 되는 일이 펼쳐진 것이다. 내 이름이 불리고 너무 놀라서 순간 '안돼~!'라고 탄식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안되긴 뭘 안되나 싶기도 하다. 물론 전에는 수상을 기대하기도 했고 그래서 소감을 준비하기도 했는데 올해 청룡영화상은 정말 즐기는 마음으로 갔다. 이번에 다시 느꼈는데, 기대를 안 해야 상복이 있구나 싶더라. 앞으로는 아예 마음을 내려놓고 시상식을 다닐까 생각 중이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는 "늘 내 연기에 대해 스스로 아쉬운 점도 많고 더 욕심나는 부분도 많다. 그건 신인 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나름 자기 객관화가 잘 되어 있는 배우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더 연기에 대한 갈증이 생기고 캐릭터에 대한 욕심도 생기는 것 같다. 상도 많이 못 받아봐서 내심 '난 괜찮아' '상과 상관없이 열심히 하는 마음가짐이 중요해'라며 마음먹었는데 막상 상을 받으니까 마음이 또 달라지더라. 상을 타니까 또 상을 받고 싶다는 욕심이 생기고 더 열심히 하고 싶다는 마음도 커졌다"고 웃었다.
7년 전 신예 박지현과 현재 '대세' 박지현의 괴물 같은 성장도 특별했다. 박지현은 "청룡영화상에 다시 오기까지 7년의 세월이 걸렸다. 한편으로는 '나 정말 열심히 했구나' 싶다가도 '그래도 이제 배우로 불릴 수 있는 필모그래피가 쌓였구나' 생각이 들었다. 사실 데뷔 때는 '배우 박지현'이라고 소개하는 것도 부끄러울 때가 있었다. 그때는 아직 관객이 배우로서 인정해 주지 않은 상태라고 생각해 더 그랬던 것 같다. 신인여우상 후보였던 청룡영화상 때도 이방인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때는 아는 선배, 동료도 없었고 감독들도 알지 못했다. 정말 배우들 사이에 나만 혼자 있는 느낌이기도 했고 가면 안 될 곳에 간 느낌이기도 해서 외롭기도 했다. 그런데 이제는 영화인이라는 소속감이 생긴 것 같기도 하다. 열심히 노력해 온 배우 박지현으로 조금은 인정하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확실히 7년 전보다 알음알음 친한 동료, 선배들도 많이 있었고 같이 작품을 하지 않더라도 내가 재미있게 본 작품의 배우들을 만나 응원하는 시간이 너무 좋더라. 축하공연도 한 편의 영화처럼 너무 아름답지 않았나? 동료, 선배들의 수상 소감을 지켜보고 축하공연을 만끽하면서 축제의 일원으로서 마냥 즐겼다"고 털어놨다.
얼떨떨한 수상 이후 마주친 김고은을 향한 애정도 숨길 수 없었던 박지현이다. 박지현은 앞서 김고은과 '유미의 세포들', 최근 넷플릭스 공개 이후 많은 사랑을 받은 '은중과 상연'으로 호흡을 맞췄다. 그는 "나는 함께한 작품의 동료들과 여운이 계속 이어지더라. 특히 올해는 (김)고은 언니가 그랬다. 고은 언니가 여우주연상 시상을 위해 무대에 섰는데 그 순간 언니와 내가 눈이 마주쳤다. 고은 언니 특유의 사랑스러운 코 찡긋 인사를 받았는데 뭔가 뿌듯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고 여러 감정이 느껴졌다. 또 올해 청룡영화상은 '유미의 세포들' 멤버들이 상을 많이 받지 않았나? 안보현 오빠도 신인남우상을 수상했고 박진영도 인기스타상을 받았다. 지난해엔 고은 언니가 여우주연상을 받았는데, 이렇게 다 한자리에 모이니까 '유미의 세포들' 아래 '이렇게 잘 컸어요'라는 느낌을 보여준 것 같아 그 부분도 뿌듯했다. 같이 성장하고 있는 배우들과 함께 있는 것 같아서 내겐 더 의미 있던 시간이었다"며 "다만 미래에 고은 언니랑 여우주연상으로 경합한다면 포기 선언을 해야 할 것 같다. 언니와 같은 해에 경합하고 싶지 않다. 연기로는 이길 수 없는 배우다"고 말해 장내를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올해 청룡영화상을 뜨겁게 달군 배우 박정민과 가수 화사의 '굿 굿바이(Good Goodbye)' 축하공연에 두 손을 모으며 연신 '입틀막'을 금치 못했던 박지현. 차기작에서 꼭 만나 호흡을 맞추고 싶다며 팬심을 전한 그는 "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이번 청룡영화상을 통해 박정민 선배가 매력적인 배우라는 걸 다시 한번 깨달았다. 물론 그 무대가 이렇게 화제 될 줄 몰랐고 정민 선배의 퍼포먼스를 직관하고 있는 내가 그렇게 빠져든 표정을 지은 줄도 몰랐다. 다시 한번 정민 선배의 '굿 굿바이' 무대를 보고 싶다. 너무 좋았고 화사도 너무 아름다웠다. 다음에 차기작에서 꼭 '전 남친', 멜로가 아니더라도 호흡을 맞추고 싶다"고 고백했다.
'히든페이스' '동화지만 청불입니다'(이종석 감독) '은중과 상연'까지 올해 쉴 틈 없이 열일을 이어갔던 박지현은 "한동안 JTBC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 형수님으로만 불렸는데 올해엔 형수님을 지우고 다른 캐릭터로 불릴 수 있는 좋은 작품을 많이 만난 것 같다. 참 신기한 경험이다. 모든 배우가 꿈꾸는 일이지만 작품의 캐릭터로 불리는 것은 정말 감사하고 영광스러운 일 아닌가. 올해 좋은 작품에서 내가 잘할 수 있는 캐릭터를 만나 연기할 수 있어 행복했다. 정말 운이 좋았다"며 "지금은 쉴 틈 없이 작품을 이어가고 있지만 과거엔 촬영을 쉬었던 적도 있고 작품이 없어서 불안했던 시절도 있었다. 연기적 갈증은 큰데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사실이 너무 괴로웠다. 오디션을 보고 기다림의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도 막막했다. 그래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어떻게든 알차고 뚜렷하게 나만의 시간을 만들고 싶었다"고 회상했다.
이어 "내년에도 다양한 작품에서 관객과 시청자를 만나게 될 것 같다. '와일드 씽'(손재곤 감독)이라는 작품에서는 세기말 혼성그룹 아이돌로 변신한다. 한때 꿈꿔왔던 아이돌을 작품을 통해 해소했다. 확신의 센터상으로 코미디를 열심히 연기했다. 또 '자필'(홍성민 감독)이라는 작품도 기다리고 있다. 묵직한 서사의 이야기도 선보일 예정이다. 또 tvN 드라마 '내일도 출근'도 촬영 중이다. 매번 위험한 사랑이나 짝사랑만 하다 끝났는데, 드디어 나도 사랑이 이뤄지는 로맨틱 코미디를 만나게 됐다. 기다리던 내 남자를 찾았다. 다양한 장르와 캐릭터로 좋은 모습을 열심히 찾아가려고 한다. 많은 기대 바란다"고 당부했다.
마지막으로 박지현은 "청룡영화상은 내 연기 인생에서 '시작'이 된 것 같다. 절대 끝은 아닐 것 같다. 그리고 내게 나침반 같은 존재가 될 것 같다. 내가 가고 있는 이 길이 맞는지, 잘하고 있는지 스스로 판단하기 어려울 때 이 상이 방향을 잘 이끌어 줄 것 같다. 나에 대한 자신감을 얻고 스스로 조금의 인정을 베풀며 앞으로의 연기 인생에 큰 힘이 될 것 같다"고 덧붙였다.
조지영 기자 soulhn1220@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