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장종호 기자] '침묵의 장기'로 불리는 간은 손상이 상당히 진행되기 전까지 뚜렷한 이상 신호를 드러내지 않는 경우가 많다. 초기에는 피로감이나 소화불량처럼 일상적인 증상으로 나타나 질환을 알아채지 못하고 지나치기 쉽다. 하지만 간 염증이나 손상이 원인과 관계없이 10~20년 이상 지속될 경우 간 조직이 점차 딱딱하게 굳는 간경변증으로 이어질 수 있어 조기 관리와 정기적인 검진이 중요하다.
◇정상 간 조직 딱딱하게 변하면서 기능 저하
간경변증은 간세포 손상이 만성적으로 반복되면서 간에 흉터가 쌓이는 섬유화가 진행되고, 이로 인해 간 전반에 구조적 변화가 나타나는 상태를 말한다. 흔히 '간경화'로 불린다. 정상 간 조직이 딱딱하게 변하면서 기능이 점차 저하되는 것이 특징이다.
가톨릭대학교 인천성모병원 소화기내과 권정현 교수는 "간경변증은 단순히 간이 딱딱해지는 병이 아니라 간 전체 구조가 변하면서 혈류 흐름과 간 기능이 함께 나빠지는 질환이다"며 "간 내 주요 혈관인 문맥의 압력이 올라가 '간에 고혈압이 생기는 상태'로 이해하면 쉽다"고 설명했다. 이어 "간경변증으로 진행되면 치료하더라도 완전히 정상 간으로 되돌리기는 어렵기 때문에 가능한 한 간 기능을 유지하고 합병증을 예방하는 것이 치료 목표가 된다"며 "그 전 단계인 만성간염 상태에서 간질환을 발견하고 원인에 맞게 치료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만성 B형·만성 C형 간염과 알코올성 간질환 등이 원인
간경변증이 진행되면 간으로 유입되는 혈류가 원활하지 않아 문맥압이 상승하면서 복수나 식도, 위 정맥류 등 합병증이 나타날 수 있다. 동시에 간 기능이 저하되면서 단백질 합성과 해독 작용에 문제가 생겨 황달, 간성 뇌증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 간암 발생 위험도 크게 증가한다.
국내에서 간경변증의 가장 흔한 원인은 만성 B형 간염이다. 알코올성 간질환, 만성 C형 간염, 지방간염 등도 주요 원인으로 알려져 있다. 자가면역성 간염이나 유전 질환 등도 간경변증을 유발할 수 있고, 원인이 명확하지 않은 경우도 있다.
중요한 점은 원인이 무엇이든 만성적인 간 염증과 손상이 지속되면 간경변증으로 진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권정현 교수는 "알코올은 간경변증을 직접 유발할 뿐 아니라 기존 간질환을 빠르게 악화시키는 요인"이라며 "간경변증을 예방하고 진행을 늦추기 위해서는 원인 질환을 정확히 파악하고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간 염증 수치외 알부민·혈소판 등 지표 더 중요
간경변증은 초기에는 특별한 증상이 없는 경우가 많다. 질환이 진행되면 식욕 부진, 소화불량, 복부 불쾌감 등의 비특이적인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복수가 차면 복부 팽만감과 하지 부종이 발생하고, 심한 경우 호흡 곤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
또한 식도, 위 정맥류가 발생하면 출혈 위험이 높아지고, 말기에는 간성 뇌증으로 인한 의식 저하가 나타날 수 있다. 이 외에도 거미상 혈관종, 수장 홍반 등 피부 변화가 나타날 수 있고, 남성에서는 여성형 유방, 여성에서는 월경 이상이 동반되기도 한다.
진단은 혈액 검사와 영상 검사를 통해 이뤄진다. 혈액 검사에서는 간 염증 수치 증가뿐 아니라 알부민 감소, 혈소판 감소, 빌리루빈 증가 등의 간 기능 이상 소견이 나타날 수 있다. 복부 초음파나 CT 검사를 통해 간의 형태 변화와 합병증 여부를 확인하고, 필요시 복수 천자를 통해 상태를 평가한다.
권정현 교수는 "많은 환자가 AST, ALT와 같은 간 염증 수치에만 관심을 갖지만, 간경변증 환자에서는 알부민, 빌리루빈, 혈소판, 혈액응고 기능 등 간 기능과 문맥압 상승을 반영하는 지표들이 훨씬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설명했다.
◇이미 진행된 간 섬유화 회복은 제한적
치료는 원인 질환을 조절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만성 B형·C형 간염의 경우 항바이러스 치료를 통해 질환 진행을 억제할 수 있다. 반면 알코올성 간질환에서는 금주가 필수적이다.
다만 이미 진행된 간 섬유화를 되돌리는 치료는 제한적이기 때문에 합병증 예방과 관리가 치료의 핵심이 된다. 질환이 말기까지 진행된 경우에는 간이식이 근본적인 치료 방법으로 고려된다.
간경변증은 진행될수록 다양한 합병증으로 이어질 수 있다. 정맥류 출혈, 복수, 간신증후군, 간성 뇌증 등은 상태에 따라 생명을 위협할 수 있다. 또한 간암 발생 위험이 매우 높아져 정기적인 간암 감시검사가 필수적이다.
권정현 교수는 "간경변증은 증상이 없다고 해서 안심할 수 있는 질환이 아니라 합병증이 발생한 이후에 발견되는 경우가 많다"며 "간질환 위험 요인이 있는 경우 정기적인 진료와 검사를 통해 간 상태를 확인하고 원인에 맞는 약물치료와 금주 관리가 필수적이다"고 조언했다.
장종호 기자 bellho@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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