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g의 차이에도 세계 기록이 갈린다. 배트의 다양한 세계

기사입력 2013-02-08 06:19


'서투른 목수가 연장만 탓한다'는 우리 속담이 있다. 여러 뜻이 담겨있는데, 실력이 뛰어난 장인이라면 도구의 좋고나쁨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뜻도 있다. 무협소설에서는 경지에 이른 고수들이 낡은 철검 하나로도 명검을 잡은 것에 뒤지지 않는 활약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하지만 현실은 무협소설이나 속담과 다르다. 좋은 도구나 장비는 분명 뛰어난 퍼포먼스를 가능하게 한다. 그래서 운동선수들은 갖고 있는 장비를 공들여 선택하고 관리하는데, 이는 조금이라도 더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서다. 실력이 뒷받침된다는 가정하에 좋은 장비가 이를 제대로 구현해줄 경우 경쟁자를 압도하는 위력을 발휘한다.

특히 프로야구의 경우 자기에게 맞는 장비를 선택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야구 글러브와 스파이크, 방망이 등 사용하는 장비가 많은만큼 선수들은 저마다 자신들에게 잘 맞는 브랜드와 장비를 찾게 된다. 또 관리도 엄청나게 세심하게 한다. 그 가운데 타자들이 가장 공을 들이는 것이 배트 선택과 관리다. 길쭉한 방망이가 하나같이 비슷해보이지만, 선수들의 체형이나 타격 유형에 따라 각자 다른 방망이를 쓰게 된다.

타자들의 배트, 기준은 있나

한국 프로야구 규칙에는 '가장 굵은 부분의 지름이 10㎝이하'에 '길이 42인치(약 106.7㎝) 이하'이며, 하나의 목재로 만들어져야 한다.이 목재 방망이라는 기준이 있다. 이 기준에만 맞는다면 어떤 배트라도 쓸 수 있다. 무게의 제약은 없다. 힘만 받쳐준다면 1㎏이 넘는 방망이도 들고 나올 수 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한국 프로야구 선수들은 무게 850~920g, 길이 33~34인치(83.82~86.36㎝)의 배트를 선호한다. 이 정도의 배트가 가장 쓰기 편하고 좋은 타구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경험의 산물이다. 이런 기준의 무게보다 더 무거우면 스윙 스피드가 떨어지고, 몸에도 무리가 갈 수 있다. 또 너무 긴 배트는 바깥쪽으로 빠지는 타구를 공략할 수는 있어도 스윙 스피드를 느리게 만들 수 있어 몸쪽 공 대처에는 적합하지 않다.

배트의 무게와 타구의 비거리는 별개의 문제

그렇다면 장타자들은 어떤 형태의 배트를 선호할까. 쉽게 생각하면 무거운 배트가 더 긴 비거리를 생산할 것만 같다. 물리적으로 보면 배트가 무거울수록 타격시 반발력도 커지기 때문에 비거리를 늘려줄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이론상으로만 맞는 말이다. 왜냐하면 비거리를 결정짓는 중요 요소 중 '스윙 스피드'라는 것을 빼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물체의 운동에너지를 증가시킬 수 있는 요소에는 질량과 가속도가 있다. 배트의 무게가 질량에 해당한다면 빠른 스윙 스피드는 가속도에 해당한다. 이 두 가지 요소가 동시에 높을 때 타구의 비거리가 늘어난다.


그런데 지나치게 무거운 배트는 스윙 스피드를 감소시킨다. 너무 무거운 배트를 빨리 휘두르기 어려운 것은 당연한 이치다. 그래서 선수들은 스윙 스피드를 떨어트리지 않으면서도 적당히 무게감이 있는 배트를 고르게 된다. 물론 이 과정에서 자신의 근력과 스윙 습관 등을 고려해 다양한 옵션을 선택한다.

때에 따라서는 시즌 중반 이후 체력이 떨어지면 좀 더 가벼운 배트로 바꾸기도 한다. 2010년 롯데 소속이던 이대호가 9경기 연속 홈런으로 세계 신기록을 세울 당시에도 평소 쓰던 950g의 배트 대신 930g의 약간 가벼운 배트를 들고나온 일도 있었다. 무더위로 체력이 떨어지자 배트를 바꾼 것이다. 불과 20g의 차이지만, 민감한 프로 선수의 감각에는 엄청난 차이로 느껴질 수 있다.

이와는 정반대로 일부러 평소 쓰는 것보다 무거운 배트를 손에 쥐는 경우도 있다. 얼마전 일본 언론에는 요미우리 간판스타이자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일본대표팀 주장인 아베 신노스케가 '이대호 배트'를 연습용으로 쓴다는 보도가 나온 적이 있다. 아베가 이대호로부터 받은 배트와 같은 스타일을 일부러 주문해서 연습할 때 쓴다는 것.

이렇게 주문한 배트는 무게도 평소 아베가 것보다 20g 정도 무거운 940g 짜리인데다 무게 중심도 헤드 끝부분에 있다. 그래서 조작성이 어렵다. 하지만 연습할 때는 오히려 도움이 된다고 한다. 아베는 "이 배트는 무게 중심이 배트 끝부분에 있다. 그래서 스윙할 때는 무겁게 느껴진다. 연습에서는 그 정도의 무게감을 느끼는 것이 좋다"며 무거운 배트를 연습용으로 쓰는 이유를 밝혔다. 무거운 배트로 연습하다가 실전에 가벼운 배트를 들고 나가면 스윙 스피드와 배트컨트롤을 늘릴 수 있다는 뜻이다.

손잡이가 다르면 줘도 못 쓴다

가장 손쉽게 찾을 수 있는 배트의 차이점은 앞서 언급한대로 무게와 길이다. 또 무게 중심의 위치도 다르다. 아베가 연습용으로 쓴 이대호 스타일의 배트는 무게 중심이 헤드 끝부분에 있는데, 이는 장타자들이 선호하는 유형이다. 원심력을 극대화해 장타를 만들기 위해서다. 반면 추신수나 아베 등 중장거리형 타자는 무게 중심이 미들-톱, 즉 끝부문에서 조금 내려온 부문에 있다. 배트 컨트롤을 늘려주기 위해서다.

그런데 이런 길이나 무게, 무게 중심보다도 선수들이 가장 크게 이질감을 느끼는 것은 노브(knob)라고 불리는 손잡이의 모양이다.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는데, 이승엽이나 김태균 등 장타자는 이 노브를 손바닥으로 감싸쥐고 치는 데, 그래서 노브가 얇고 작다.

반면 이용규나 이종욱 등 배트컨트롤을 앞세워 단타를 주로 치는 타자는 배트를 세밀하게 조작할 수 있도록 손잡이 부분이 두껍고 크다. 마치 크고 둥근 양파처럼 생겨서 양파의 일본식 표현인 '다마네기'라고 부르는 선수들도 많다. 또 얇은 노브와 '양파' 노브의 중간형도 있다.

무게나 길이의 차이는 어느 정도 감수하고 연습용으로라도 쓸 수 있지만, 이 손잡이 부분이 자기가 쓰는 모양과 다르면 전혀 사용할 수 없다. '줘도 못 쓰는' 셈이다.
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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