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흔히 야구에서 스퀴즈 번트는 소중한 1점을 얻기 위한 요긴한 수단으로 활용된다.
국내 프로야구에서도 스퀴즈 번트를 시도하는 장면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대표적인 스퀴즈 번트 애호가가 SK 이만수 감독이다. 반면 스퀴즈 번트를 극단적으로 기피하는 지도자도 있다. 대표적인 인물이 삼성 류중일 감독이다.
삼성이 3-5로 뒤진 채 맞은 연장 10회말 배영섭의 적시타로 1점차까지 바짝 따라붙은 가운데 무사 1, 3루 찬스를 맞았다. 추가점이 절실한 상황. 후속타자 정형식이 대기타석에서 준비하고 있을 때 류 감독이 이례적으로 옆으로 다가가 무언가 지시를 내렸다.
이후 정형식은 절묘하게 번트를 대 동점에 성공했고, 자신도 헤드퍼스트 슬라이딩으로 출루까지 했다.
이 때 정형식의 번트가 스퀴즈처럼 보였다. 하지만 류 감독은 "스퀴즈가 아니라 기습번트였다"면서 "나는 지금까지 스퀴즈 사인을 내린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류 감독이 정형식에 주문한 것은 '사즉생(死卽生)'이었다. 죽고자 하는 각오로 싸우면 산다는 고사성어처럼 "안타를 친다거나 살아나가겠다는 욕심을 내지 말고 주자를 진루시키는데 집중하라"는 것이었다.
때마침 넥센 투수 박성훈이 좌완이어서 3루를 등지고 서서 준족 3루 주자 김상수의 리드를 커버하기 힘들 것이기 때문에 번트를 대는 방법도 생각해보라는 정도였다고 한다.
류 감독은 "정형식이 기습번트를 판단을 아주 잘했고, 타구도 절묘한 곳으로 보냈기 때문에 성공했을 뿐"이라며 "나는 영원히 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지만 스퀴즈 번트 자체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스퀴즈 번트는 성공하면 짜릿하지만 성공률이 너무 낮아 모험이라고도 불린다. 그럼 류 감독은 모험을 시도할 만한 배포가 없어서 스퀴즈 번트를 싫어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아이로니컬하게도 류 감독은 스퀴즈 번트 전문가였다. 선수 시절 스퀴즈 번트를 무척 많이 대봤단다. 발이 빠르고 방망이 놀림이 정교해서 감독으로부터 그런 사인을 자주 받았다. 코치 시절에도 3루 담당을 하면서 스퀴즈 번트 사인 전달자 역할도 수없이 했다.
한데 그런 풍부한 경험들이 역설적으로 작용했다. 류 감독이 스퀴즈 번트를 기피하게 만든 것이다. 스퀴즈 번트로 인해 얻는 긍정적인 효과보다 잃는 게 더 많았다는 게 류 감독의 기피 이유다. 굳이 확률이 높지 않은 작전을 구사하기 위해 선수와 코치들에게 스트레스를 주느니 정공법을 선택하는 게 낫다는 것이다.
류 감독은 "선수 시절을 떠올리면 스퀴즈 번트에 대한 중압감이란 이루 말할 수가 없더라. 성공하면 좋겠지만 그 과정까지가 너무 힘들고, 반대로 실패라도 하는 날이면 선수 개인과 팀에 미치는 후유증이 더 크다"고 과거를 떠올렸다.
이어 류 감독은 "코치 때도 마찬가지다. 3루 주자야 바로 앞에 있으니 말로 전달하면 되지만 다른 주자들에게 사인을 하려면 상대팀에게 사인을 들키는 게 아닐까. 주자가 내 사인을 제대로 봤을까 등등의 긴장감은 말 할 수가 없다"며 아찔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스퀴즈 번트를 성공했던 정형식은 "예전에 한 경기에서 2번이나 번트를 실패한 적이 있는데 멘탈붕괴를 겪으며 성적도 떨어졌다"며 류 감독의 주장을 뒷받침했다.
류중일식 스퀴즈 기피론에는 선수들에 대한 배려가 숨어 있었다.
최만식 기자 cms@sports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