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실구장에서 구본무 회장을 과연 다시 볼 수 있을까

최종수정 2013-10-07 07:56

플레이오프 직행을 노리며 반게임차 3-4위를 달리고 있는 서울라이벌 LG와 두산의 시즌 마지막 경기가 5일 잠실구장에서 열렸다. 6회말 2사 1,3루 LG 이병규가 우익수 오른쪽으로 흐르는 2타점 역전 3루타를 치고 환호하고 있다.
잠실=허상욱 기자 wook@sportschosun.com/2013.10.05/

지난 2000년 이후 야구장에 발길을 끊었던 구본무 LG그룹 회장(68)을 다시 잠실구장에서 볼 수 있을까.

구 회장은 프로야구단을 운영하고 있는 국내 대기업 오너 중에서 야구에 대해 가장 해박하고, 애정이 깊은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1990년 LG 야구단이 출범했을 때 이버지인 구자경 당시 그룹 회장(현 명예회장)이 아닌 구본무 당시 부회장이 구단주를 맡았다. LG그룹 오너 일가의 전폭적인 지원과 관심 속에 트윈스는 첫 해 부터 한국시리즈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LG는 젊고 활기찬 신바람 야구를 앞세워 1990년 대에 두 차례 한국시리즈 정상에 올랐고, 두 차례 준우승을 차지하며 단기간에 한국 프로야구 최고의 인기팀으로 도약했다. 구 회장 등 오너 일가의 각별한 야구 사랑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구 회장은 수시로 코칭스태프, 선수를 불러 식사를 하고 용돈을 챙겨주는 등 야구 현장과의 스킨십을 아끼지 않았다. 워낙 야구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 구단 사장, 단장 등 프런트가 바짝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해외 출장 중에도 반드시 트윈스 경기 소식을 챙겼고, 그룹 임원 회의를 주재할 때도 트윈스 야구를 자주 화제에 올렸다고 한다. 그룹 총수의 야구 사랑은 자연스럽게 임원들에게 이어졌다.

그런데 2000년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 파동이 일어난 후 구 회장은 트윈스의 홈구장인 잠실구장에서 야구 관전을 하지 않고 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2000년 1월 22일 선수들은 송진우를 초대 회장으로 한 선수협 총회를 열었다. 그러자 한국야구위원회(KBO)는 선수협 출범에 서명을 한 선수들의 자유계약선수(FA) 방출까지 결의했다. 정규시즌이 시작하면서 선수협 파동이 누그러졌지만, 그해 12월 선수들은 구단들의 반대 속에 재결성을 시도했다. KBO가 송진우 마해영 박충식 양준혁 심정수 최태원 등 선수협 집행부를 방출하면서 갈등이 증폭됐다. 시즌 중단 얘기까지 나올 정도로 사태는 파국으로 치달았다. 선수협 파동이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커지자 주무부처인 문화관광부가 중재에 나서면서 진정이 됐다.

당시 구 회장은 선수협을 노조의 전단계로 생각하고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봤다고 한다. 야구단이 스포츠에 머무르지 않고 도를 넘어섰다고 판단한 것이다. 야구단에 워낙 각별한 애정을 쏟았기에 '배신감'이 더 컸던 것 같다.

선수협 사태가 일어난 후 구 회장은 더이상 야구가 열리는 날 잠실구장을 찾지 않았다. 2007년에는 창단 때부터 갖고 있던 구단주 직함을 동생인 구본준 LG전자 부회장(62)에게 넘겼다. 구 회장과 함께 바로 아래동생인 구본능 KBO 총재(64), 구 구단주 3형제 모두 널리 알려진 야구 마니아다. 야구 관계자들은 경남 태생이며 야구도시 부산에서 자란 이들 3형제가 자연스럽게 어린 시절부터 야구에 빠진 것 같다고 말한다. 구 총재와 구 구단주는 야구명문 경남중 경남고를 졸업했다. 기수별 야구대회에 선수로 출전할 정도로 야구 사랑이 남다르다.


LG가 서울라이벌 두산과의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승리를 거두며 플레이오프 직행을 확정지었다. LG가 5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두산과의 경기에서 5대2로 승리를 거두며 한화에 패한 넥센을 제치고 2위로 올라서게 됐다. 경기 종료 후 선수들이 기쁨을 나누고 있다.
잠실=허상욱 기자 wook@sportschosun.com/2013.10.05/
구 회장으로선 선수협 사태에 실망했고 또 동생에게 야구단을 맡긴 이유도 있겠지만, 사실 최근 몇 년 간 상황적으로도 잠실구장을 찾기 어려운 분위기였다. 2002년 한국시리즈 준우승을 차지한 LG는 지난해까지 10년 연속으로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다. 2006년에는 팀 창단 후 처음으로 꼴찌로 추락한데 이어, 2008년에 다시 최하위에 그쳤다. 최근 10년은 LG 야구의 암흑기였다.


그러나 직접 경기를 관전하지 않았을 뿐 구 회장의 야구 사랑은 이어졌다. 잠실구장 인근에 행사가 있거나 지나가는 길에 구단 사무실에 들러 관계자들을 만난 적이 있다고 한다. 또 서울 한남동 자택에 구단 관계자나 코칭스태프, 선수를 초대해 식사를 하며 야구 이야기 꽃을 피우기도 했다.

우여곡절이 많았던 올해도 구 회장의 야구단에 관심은 이어졌다. 지난 7월 초에 경기도 광주에 위치한 그룹 계열 곤지암 리조트에 김기태 감독 등 코칭스태프와 주장 이병규를 초청해 "잘 해주고 있다. 힘을 내달라"며 격려했다고 한다. LG가 시즌 초중반 잠시 고전을 하다가 다시 치고올라오던 시점이다.

LG는 5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두산 베어스와의 정규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5대2로 역전승을 거두고 2위로 플레이오프에 직행했다. 각본없는 드라마같은 상황이 연출됐다. 이날 넥센 히어로즈가 한화 이글스를 꺾었다면 라이벌 두산을 잡았더라도 2위가 불가능했다. 그런데 객관적인 전력상 앞서는 히어로즈가 한화에 1대2로 패하고, LG가 5회까지 0-2로 끌려가다가 극적으로 역전승을 거두면서 2위 드라마가 완성됐다.

LG는 열흘 간의 휴식 후 히어로즈-두산전 승자와 16일부터 플레이오프를 시작한다. 물론, 정규시즌 2위 LG의 안방 잠실구장에서 1,2차전을 치른다. 11년 만에 가을잔치 무대에 다시 선 트윈스는 구 회장의 발길을 다시 잠실구장으로 잡아끌 수 있을까.

LG가 플레이오프를 넘어 한국시리즈에 진출한다면 2002년에 이어 꼭 11년 만에 양팀의 리턴매치가 이뤄진다. LG와 삼성, 한때 재계의 맞수였던 두 기업의 자존심 대결이 야구를 통해 이뤄지는 것이다.

야구단을 보유한 기업 오너들의 야구 관전은 최근 쉽게 볼 수 있는 일이 됐다.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은 지난해 잠실구장에서 열린 SK 와이번스와의 한국시리즈 5차전을 관전했고,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2011년 인천 문학구장에서 벌어진 롯데 자이언츠와의 플레이오프 3차전 때 덕아웃에 내려가 선수단을 격려했다.
민창기 기자 huelva@sportschosun.com

Copyright (c) 스포츠조선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Copyright (c) 스포츠조선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당신이 좋아할만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