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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밸런스가 깨질 수도 있었다."
미국 메이저리그는 올해부터 '자동 고의4구' 제도를 도입했다. 고의4구가 필요할 때는 감독이 심판에게 사인을 보내 그냥 타자를 1루로 보내는 방식. 투수는 공을 던지지 않는다. 시즌 개막 전인 지난 2월초 메이저리그 사무국과 선수노조의 합의로 도입된 제도인데, 주 목적은 '경기 시간 단축'에 있다.
다른 부작용은 투구 밸런스가 흐트러질 수 있다는 것. 전력 투구를 하다가 고의4구를 던진 뒤 다시 전력 투구를 하려면 리듬이 깨진다고 하는 투수가 적지 않다. 마치 고속 기어로 질주하다가 순간적으로 저속 기어로 내려 서행한 뒤 다시 급하게 기어를 올려 스피드를 내는 운전과 비슷하다. 차량의 엔진에 부담이 되듯 투수에게도 적지않은 부하가 걸린다.
올 시즌 정규리그와 한국시리즈 통합 우승을 거둔 KIA 타이거즈 김기태 감독과 양현종도 고의4구의 부작용에 대해 우려하는 편이다. 이미 김 감독은 지난 2015년 5월13일 광주 kt전 때 이른바 '김기태 시프트'로 화제를 불러일으킨 적도 있다. 당시 5-5로 맞선 9회초 2사 2, 3루에서 투수 심동섭에게 고의4구를 지시한 뒤 3루수 이범호를 포수 뒤 백스톱에 서게 한 것. 심동섭이 간혹 고의4구 때 폭투를 하는 경향이 있어 이를 대비한 파격 작전이었다. 물론 이 시프트는 '인플레이 시 모든 야수는 페어지역에 있어야 한다'는 규정에 어긋나 성사되지 못했다. 하지만 여전히 김 감독은 고의4구의 부작용을 우려하고 있다. 김 감독은 "한국시리즈 5차전 9회말에도 고의4구를 지시했을 때 걱정되는 마음이 있었다"고 털어놨다.
양현종 역시 김 감독의 우려에 깊이 동감을 표시했다. 사실 당시 고의4구 작전의 당사자가 양현종이다. 7-6으로 쫓기던 9회말 1사 1, 3루였다. 마무리로 깜짝 등판한 양현종에게 허경민 타석 때 고의4구 지시가 나왔다. 김 감독의 승부수였다. 그런데 포수 김민식은 일어서지 않았다. 양현종이 "그냥 앉아있어"라는 의사표시를 했기 때문이다. 양현종은 당시 상황에 대해 "만약 폭투라도 나오면 바로 실점하게 된다. 포수가 서 있는 것보다 차라리 보통 때처럼 앉아서 받아주는 게 편했다. 또 공을 살살 던지다 다시 세게 던지려면 밸런스가 깨질 수도 있었다. 사실 그게 가장 걱정됐다. 그래서 그냥 앉아있으라고 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양현종은 허경민을 거른 뒤 박세혁과 김재호를 범타 처리하고 우승을 결정했다. KIA의 우승 뒤에 가려진 또 다른 비화였다.
김 감독의 우려와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 나온 사례. 그냥 비하인드 스토리로만 넘길 건 아닌 듯 하다. '경기 시간 단축'을 부르짖는 KBO 차원에서도 한 번쯤 '자동 고의4구'의 효용성에 관해 논의해볼 만 하다.
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