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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는 홈런을 친다. '판타지 스타'는 그 홈런으로 팀을 이기게 한다. '영웅'은 그 홈런으로 팀을 이기게 만드는 동시에 역사의 한 페이지까지 작성한다. 넥센 히어로즈 4번타자 박병호는 스타나 판타지 스타를 넘어선 '히어로', 진정한 영웅이다.
박병호가 패색이 드리워진 경기 후반 결정적 스리런 홈런으로 팀을 구해냈다. 또한 그 홈런으로 역대 KBO리그 첫 3년 연속 40홈런의 대기록까지 완성했다. 뿐만 아니다. 이는 박병호의 통산 250번째 홈런이기도 했다. 모든 순간이 하나의 '영웅담'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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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래 봐야 겨우 두 번 상대했을 뿐이다. 이제 만 20세 프로 2년차 박치국이 넘기에 박병호는 너무나 거대한 벽이었다. 초반 주도권은 박치국이 잡았다. 1구, 2구 모두 헛스윙. 커브와 패스트볼 모두 타이밍을 맞추지 못했다. 박병호는 이 순간에 대해 "투 스트라이크가 되고 나자 '끝났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완전히 끝난 건 아니었다. 포기하기에는 이르다. 박병호는 전략을 바꿨다. 참기로 했다. 상대가 먼저 흔들리길 기다렸다.
박치국의 혈기는 이 기다림을 버텨내지 못했다. 직구-커브, 다시 직구로 유혹했다. 그러나 박병호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꼬임에 안 넘어오자 오히려 급해진 건 박치국이었다. 승부의 흐름이 완전히 뒤바뀐 순간이다. "볼을 골라내는 과정에서 찬스가 만들어졌다. 스리볼이 나왔고, 분위기가 바뀌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 기다림 뒤에 박병호의 본능이 말했다. '이제 칠 때'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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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호는 "분위기가 바뀐 찬스를 살리려고 했는데 좋은 결과가 나왔다"고 담담히 말했다. 대기록과 극적인 역전승 앞에서도 그는 희미한 미소만을 지을 뿐이었다. 다만 이런 말은 했다. "3년 연속 40홈런에 대해 신경을 안 쓰려고 했지만, 솔직히 신경이 쓰일 수 밖에 없는 기록이었다. 그래도 중요한 상황에서 홈런이 나왔고, 팀이 이길 수 있게 돼서 기쁘게 생각한다." 박병호다운 겸손이다.
박병호는 8회에도 8-7에서 9-7을 만드는 적시타를 날렸다. 오히려 이 장면에 대해 "그런 게 정말 기분이 좋다"며 감정을 드러냈다. 팀 승리를 확정 짓는 순간이 대기록의 달성보다 박병호에게 더 큰 만족감을 주는 것처럼 보인다.
박병호는 지속적인 승리를 다짐했다. "지금 상황에서는 매 경기 이기는 것만 생각하고 있다. 팀 동료들과도 '위도 아래도 보지 말고, 그저 매 경기 이기려고 하자'는 이야기를 한다. 오늘처럼 내일도 이기고 싶다"고 말했다. 스포트라이트가 아닌 승리를 갈망하는 것 역시 영웅의 전형성이다.
고척=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