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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김용 기자] 단 한 번의 실수, 그것만 아니었다면 '레전드' 칭송 받았을텐데...
무서울 것 없었던 박석민의 야구 인생이었다. 화려함 그 자체였다. 2004년 대구고를 졸업하고 삼성 1차 지명을 받았다. 입단부터 고향팬들의 사랑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신인 시절에는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지만, 상무에서 군 복무 후 복귀한 2008 시즌부터 잠재력을 폭발시키기 시작했다. 첫 풀타임 시즌 14홈런 64타점을 기록했다. 덩치는 큰데 3루수비도 곧잘 했다. 삼성의 3루수 프랜차이즈 스타 김한수의 대를 이을 재목이었다.
삼성에서의 마지막 시즌이었던 2015년에는 커리어 하이를 찍었다. 타율 3할2푼1리 26홈런 116타점. 엄청난 기록. NC 다이노스와의 4년 96억원 '잭팟' 계약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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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는 모든 게 좋았다. 하지만 박석민의 야구 인생을 바꿔버리는 사건이 터지고 만다. 코로나19 사태가 한창이던 2021년 7월, 서울 원정 숙소에서 동료들과 함께 일반인 여성들을 불러들여 사적 모임을 가졌다. 모두가 민감한 시기, 핑계를 댈 수 없는 방역 수칙 위반이었다. 실제 동료들은 코로나19에 감염됐다. 자신의 행동 하나로 리그 일정이 '올스톱' 될 뻔한 아찔한 사고였다.
박석민은 이 사태의 주동자로 인정돼 KBO와 구단 자체 징계 등 총 132경기를 뛰지 못했다. 은퇴를 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다. 다시 돌아온다 해도, 많은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멘탈적으로 흔들리지 않는 게 이상했다. 하지만 박석민은 끝까지 버텼다. 야구를 하는 아들에게, 야구선수로서 아빠의 모습을 의미 있게 남기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번 시즌을 앞두고 연봉 5000만원을 받기로 하고 절치부심 준비했다. 하지만 부상에 발목이 잡혔다. 세월이 흘러 박석민도 38세가 됐다.
코로나19 사건이 없었다면, 박석민은 '레전드'의 길을 걷고 있었다. 삼성 '원클럽맨' 행보를 걷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NC에 첫 우승을 안기는 등 충분히 공로를 인정받을만 했다. 그가 손가락에 낀 우승반지만 무려 5개다. NC에서 성대한 은퇴식을 치를 수도 있었을 것이고, 고향 삼성에 돌아가도 환영받는 선수가 됐을 게 당연했다.
하지만 단 한 번의 실수로 그가 야구로 쌓아온 모든 명예는 무너져 버렸다. 프로 세계에서 돈도 중요하지만, 후대에 어떤 선수로 기억되느냐가 더 큰 가치일 수도 있다.
김용 기자 aweso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