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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스포츠조선 권인하 기자]야생마의 47번을 등에 붙일 자격이 있었다.
1회초 김현수의 투런포로 2-0의 리드를 안고 출발한 김윤식은 언제 내려갈지 불안했다. 염 감독은 경기전 김윤식의 구위나 구속이 떨어지면 곧바로 필승조를 올릴 것이라고 예고했다.
그러나 김윤식은 너무나 안정적인 피칭을 했다. 최고 144㎞의 직구(37개)와 주무기인 체인지업(27개), 커브(17개), 슬라이더(4개)를 적절히 섞으며 KT 타선을 잠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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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회말 첫 위기를 맞았다. 선두 배정대에게 풀카운트 승부끝에 볼넷을 허용했고, 2번 김상수 타석 때 2루 도루를 허용했다. 견제를 하면서 배정대를 막아서려 했지만 배정대가 김윤식의 투구 폼을 완벽하게 뺏으며 스타트를 끊어 여유있게 세이프됐다. 하지만 김윤식은 꿋꿋했다 김상수를 유격수앞 땅볼로 처리했고, 3번 황재균에겐 우중간으로 날아가는 타구를 맞았으나 우익수 홍창기가 여유있게 잡아냈다. 2사 2루서 전날 8회말 역전 홈런을 친 박병호를 상대로 신중하게 피칭을 했고, 2B2S에서 117㎞의 체인지업으로 헛스윙 삼진을 이끌어내며 위기탈출에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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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회말에도 마운드에 오른 김윤식은 퀄리티스타트에서 아웃카운트 하나를 남기고 마운드를 내려왔다. 선두 조용호를 삼진으로 처리하고 배정대를 좌익수 플라이로 잡아내 2아웃까지 만든 김윤식은 김상수에게 좌측 2루타를 맞았고 이어 황재균에게 좌전안타를 허용해 1점을 내주고 말았다. 투구수가 87개에 이르고 박병호 타석이 오자 투수 교체가 이뤄졌다.
김윤식은 LG팬들의 박수와 환호 속에서 더그아웃으로 내려갔다.
뒤이어 나온 백승현이 박병호를 볼넷으로 내보내 1,2루의 위기를 맞았지만 장성우를 포수 파울 플라이로 잡아내 6회 종료. 김윤식의 성적은 5⅔이닝 3안타 1볼넷 3탈삼진 1실점으로 생애 첫 한국시리즈 승리 투수 요건을 갖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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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 해설위원은 1995년 당시 20승을 거두며 LG를 대표하는 왼손 투수로 군림했었다. 이 기록은 아직도 LG 투수의 유일한 20승으로 남아있다.
평소 이 위원을 좋아했던 김윤식은 고교시절에도 47번을 달았다고. 그래고 입단했을 때부터 47번이 비어있었지만 57번을 달고 3년간 뛰었다. 그리고 올시즌 용기를 냈다. 좋아했던 47번을 선택한 것.
사실 LG에서 47번은 '레전드의 번호'이자 '저주의 번호'였다. 이 위원 이후 서승화 조윤준 봉중근 등이 47번을 달았지만 성공하지 못했기 때문. 이 위원이 LG 코치로 돌아왔을 때 "47번은 저주받은 번호"라면서 스스로 그 번호를 달기도 했었다. 이 위원 이후 47번을 단 선수는 없었다.
광주진흥고를 졸업하고 2020년 2차 1라운드 3순위로 LG에 온 김윤식은 입단 때부터 47번을 달고 싶었지만 구단에선 신인이 47번을 달기엔 아직 이르다는 판단에 비슷한 57번을 김윤식에게 내줬다. 그리고 김윤식은 지난해 8승을 거두며 입지를 다진 뒤 올해 용기를 내 47번을 달고 싶다고 구단에 요청했고, 드디어 자신이 원했던 번호를 등에 붙일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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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식은 2월 애리조나 스프링캠프때 등번호에 대해 묻자 "언젠가는 달고 싶었던 번호였다. 아직 부족하긴 하지만 47번을 달고 더 잘하면 좋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했다"면서 "이상훈 선배님께 직접 47번을 달고 싶다고 말씀 드렸더니 47번 달고 더 씩씩하게 던져라고 말씀해주셨다"라고 말했다. '47번의 저주'는 LG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얘기. 하지만 당시 김윤식은 꿋꿋하게 반전을 말했다. "작년에 선발 나갈 때 나보다 우위에 있던 외국인 투수나 안우진 형 등과 만날 때 어차피 예측은 기울어져 있어서 잃을 게 없으니까 더 공격적으로 들어갔다"면서 "반전을 일으키고 싶다는 생각으로 경기에 임했다. 이번에도 오히려 즐기겠다"라면서 자신이 원했던 47번을 향한 애정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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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후반기 돌아온 김윤식은 달라져 있었다. 김윤식은 9월 2일 한화전에 1군에 돌아왔다. 5이닝 6안타 1실점으로 합격. 다음 9월 8일 KIA전에선 5⅔이닝 7안타 1실점으로 승리투수가 됐고, 15일 한화전서 5이닝 4안타 3실점으로 승리를 추가했다. 9월 27일 KT전서 5이닝 2안타 무실점으로 또한번 승리투수. 후반기에 돌아와서는 6경기(5번 선발)에 등판해 3승무패 평균자책점 2.13으로 안정감을 보였다.
그리고 11월 11일 한국시리즈 4차전에서 그는 47번을 달고 왼손 에이스의 계보를 이을 수 있는 투수임을 증명했다. '47번의 저주'가 한국시리즈에서 풀렸다.
수원=권인하 기자 indy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