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커'는 18세 생일에 아빠를 잃은 소녀 인디아(미아 바시코브스카)앞에 존재조차 몰랐던 삼촌 찰리(매튜 구드)가 찾아오고, 인디아 주변의 사람들이 하나 둘 씩 실종되며 벌어지는 미스터리를 다룬 스릴러다. 살인에 관한 도덕적 관념과 유전자에 내재된 본능의 대립을 소녀가 이상 성적 취향을 자각하는 과정과 결합시켜 독특하게 풀어냈다. 영화는 선댄스영화제 프리미어를 통해 공개된 후 버라이어티, 할리우드 리포터 등 현지 언론으로부터 "매혹적인 스릴러"라는 호평을 받았고, 박찬욱 감독 역시 '한국의 히치콕'이란 극찬을 받아냈다. 현재 '스토커'는 지난달 28일 한국 홍콩 태국에서 동시 개봉, 1일 미국을 시작으로 5월까지 영국 필리핀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대만 네덜란드 아르헨티나 벨기에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스페인 멕시코 브라질 칠레 등 38개국 개봉을 확정했다.
박찬욱 감독으로서는 성공적으로 할리우드에 첫 발을 내딛은 셈이다. 일말의 아쉬움이 있다면 박 감독 특유의 블랙유머가 많이 줄었다는 점. 그는 "의도한 건 아니었는데 그렇게 됐다. 유머처럼 문화적 경계가 뚜렷한 게 없다. 웃기려면 그 나라 문화와 언어에 아주 익숙해야 한다. 특히 블랙유머는 너무나 다루기 까다롭고 미묘하다. 첫 영어 영화에서 마음껏 블랙유머를 구사하긴 어렵지 않았을까. 그래서 아마 생각할 시도도 안했던 것 같다. 또 이번 영화는 내가 만든 것 중 가장 상영시간이 짧다. 그런 종류의 유머는 여유를 부릴 때 나오는데 이 영화는 보석 세공하듯 엄격하게 프레임 단위로 만들어서 여유가 별로 없었다"고 전했다.
박찬욱 감독 전후로도 한국 감독들이 할리우드에 진출했다. '라스트 스탠드'의 김지운 감독과 '설국열차'의 봉준호 감독이 그 주인공이다. 세 감독 모두 국내 활동 당시 수많은 히트작을 만들어내며 자신의 개성을 인정받았던 만큼, 할리우드 진출 성적에 관심이 쏠리는 것도 사실이다. 이에 대해 박 감독은 "나라도 한국 감독이 미국에 가서 영화를 만들면 그런 관점을 완전히 피할 수 없을 것 같다. '한국 사람이 갔구나', '미국 영화의 본산지에 갔구나', '정말 유명한 사람하고 일하는구나'. 내 동기는 그런게 아니었지만 당연한 것 같다"고 말했다.
타지에서 한국과는 다른 시스템에 적응하며 외로움 등 심적 고통을 함께 겪어냈던 동료이자 선의의 라이벌일 게다. 그렇다면 박찬욱 감독이 바라보는 '할리우드 진출 동기'는 어떨까? 먼저 김지운 감독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박 감독은 "미국에 수많은 감독 중 하나지만 찾아보기 힘든 아시아 감독으로 외롭게 있었으니까 경쟁심보다는 동지애나 우정이 더 커졌다. 촬영은 완전 떨어진 곳에서 했지만 후반 작업은 LA에서 같이 했다. 집도 걸어서 5분 거리라 매주 몇 번씩 만났다. 만나서 식사도 하고 커피도 마시고 술도 먹고, 서로의 집에 가기도 하고 영화도 보고 했다. 편집본을 보여주기도 하고 내가 예고편을 만들면 보여주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서로 잘 아니까 그런 일이 없었는데 미국에선 한국과 다른 것들, 각자 현장에서 겪은 얘기들을 많이 했다"고 밝혔다.
봉준호 감독에 대해서는 기대를 표했다. 박 감독은 "완전히 폐쇄된 좁은 공간에서 영화 전체가 진행된다는 건 연출자로서는 어려운 도전이다. 또 저예산 영화도 아니다. 그런 예술적인 도전에서 개가를 올렸다고 할까, 봉준호의 능력이 본때를 보여준다고 할까. 같은 감독으로서 경탄하게 된다. 배우들의 연기를 보고나면 누가 최고인지 논쟁할 것 같다. 송강호부터 크리스 에반스 등 무척 연기를 잘했다. 화려한 로케이션이 없는 대신 배우들 면면이 아주 볼만하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