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정히 말하자. 행복은 성적순이다. 경험상 그렇다. 학생뿐만 아니라 연예인도 마찬가지다. 인기도와 행복지수는 대체로 비례한다. 그러나 그 속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겉에서 보는 것과는 결이 조금 다르다. 스포트라이트를 더 많이 받이 받는다고 해서, 혹은 그 빛이 더 화려하다고 해서, 반드시 더 행복한 건 아니라는 얘기다. 연예인의 범주에 묶이는 배우, 가수, 개그맨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가 그 사실을 말해준다. 자신의 현재와 미래, 그리고 외부의 평가에 대한 만족도를 수치화해 직업별로 평균을 내보니 흥미로운 차이점이 발견됐다. 배우는 전체 항목에서 '만족' 또는 '매우 만족'에 가장 까웠으며, 개그맨이 그 다음, 가수가 최하위로 나타났다. 배우의 조사 결과는 쉽게 납득이 된다. 하지만 개그맨이 가수보다 행복하다는 건 다소 의외다. 화려한 무대에서 팬덤의 열광적인 환호를 받는 가수들이 더 만족스러운 삶을 살 거라는 예상은 그야말로 '선입견'에 불과했다. 이유가 뭘까?
인내는 쓰나 열매는 달다
개그맨의 조사 결과 중에 특히 관심을 끄는 부분은 직업적 만족도다. 그룹간 비교는 물론이고 항목별 비교에서도 가장 점수가 높았다. 응답자 30명 중 무려 17명이 현재 직업에 '매우 만족' 한다고 답했고, '만족'에 답한 사람도 10명에 이른다. 5점 만점에 평점 4.43이다. 가족들의 만족도 역시 평점 4.17로 3개 그룹 중 가장 높았다. '매우 만족'과 '만족'은 각각 12명과 11명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개그맨이 다수 소속된 A기획사 관계자는 이렇게 설명했다. "개그맨 중엔 벼락스타가 없다. 그래서 누구나 노력하면 언젠가 성공한다는 희망을 갖고 있다. 힘들어도 현재를 불평하지 않는 이유다." 다른 관계자들의 말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기획사에 의해 데뷔하는 배우나 가수와 달리 개그맨들은 공채로 시작해 오랜 시간 밑바닥부터 실력과 인지도를 쌓아 인기를 얻는다. 인내의 시간이 길었던 만큼 성취감도 크다. 동료들은 그 힘든 과정을 지켜봤기 때문에 상대를 깎아내리기보단 인정하고 격려하는 분위기다. 덕분에 상대적 박탈감을 덜 느낀다. 직업적 만족도 항목에서 평점이 높은 것도 그래서다. KBS 개그맨들의 경우에는 치열한 경쟁을 뚫고 공채로 발탁됐다는 자부심과 고정적으로 설 수 있는 '개그콘서트' 무대가 있다는 것이 직업적 만족도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많은 관계자들은 개그맨의 사회적 위상이 높아졌다는 것도 주요 요인 중 하나로 꼽았다. 그러나 실제 설문조사에선 사회적 인식 만족도가 '보통'(3.07)에 머물렀다. 개그맨들이 다른 그룹에 비해 유일하게 점수가 낮게 나온 항목이다. B기획사 관계자는 "보통 수준의 만족도가 나온 것도 괄목할 만한 결과"라며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개그맨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지만 '개그콘서트'의 인기 덕분에 대중들의 시선이 달려졌다는 것을 확실히 느낀다"고 말했다.
경제적 만족도(3.47) 역시 상향됐다는 분석이 나왔다. 사회적 위상이 올라가면서 CF 모델로 발탁되는 사례도 늘었고, 친근하고 유머러스한 이미지를 살려 각종 행사에 게스트로 출연하거나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을 병행하는 방식으로 수익구조가 다양화됐기 때문이다.
창립 40주년 특집 KBS2 '개그콘서트'의 한 장면. 사진제공=KBS
창립 40주년 특집 KBS2 '개그콘서트'의 한 장면. 사진제공=KBS
화려한 겉모습, 초라한 현실
개그맨의 약진과 비교해 가수들의 설문조사 결과는 다소 충격적이다. 그들이 직접 털어놓은 현실은 너무나 초라했다. 속 빈 강정, 빛 좋은 개살구였다. '만족'에 가까운 결과가 나온 항목이 직업적 만족도(3.73) 하나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보통'에 간신히 턱걸이했다. 심지어 경제적 만족도(2.83)는 '보통'에도 못 미쳤다. '매우 불만족' 7명, '불만족' 4명으로 부정적 답변이 전체의 3분의 1을 차지했다. K-POP 열풍의 이면에 드리운 그림자가 짙다.
대중의 인식과 괴리된 현실을 보여준 이 조사 결과에 대해 관계자들은 한숨부터 내쉬었다. 별다른 해법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이돌은 보통 수년간의 연습생 시절을 거쳐 데뷔한다. 하지만 막상 데뷔해도 높은 기대감과 달리 고만고만한 신인들 사이에서 두각을 나타내기는 쉽지 않다. 여러 아이돌 그룹이 소속된 C기획사의 관계자는 "치열한 경쟁을 거치다 보면 초반의 패기와 자신감은 금세 사라지고 다른 이들과 비교해 자신이 특별하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된다"며 "언젠가는 잘될 거라는 기대만으로 버티기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어렵사리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음악방송, 라디오, 예능, 행사 등의 스케줄을 닥치는 대로 소화하지만 인지도는 요지부동. 그로 인한 불규칙한 생활 패턴 또한 개인의 행복지수를 떨어뜨린다. 가족들의 만족도를 묻는 항목에서 배우(4.10)와 개그맨(4.17)이 '만족' 이상에 답한 반면, 유일하게 가수(3.27)만 '보통'이라고 답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아이돌의 경제적 불만족은 수익구조에서 비롯된다. 음반을 내고 프로모션을 해도 수익으로 이어지지 않는 경우가 태반이다. 음반 시장은 명맥만 유지하고 있고, 온라인 음원 수익도 거의 기대할 수 없다. 정산을 해도 멤버들이 나눠 가져야 하니 개인별 수익은 더 줄어든다. 정상급 10개 팀 정도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사정이 이렇다. 이 관계자는 "해외시장에 진출해 외화를 벌어오지 않으면 그나마 팀을 유지하기도 어렵다"고 토로하며 "이런 현실은 아이돌에만 국한된 게 아니라 가요계 전반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팀 내 부익부 빈익부 문제도 불만족의 요인이다. 개인 활동으로 벌어들이는 수익을 멤버들이 고루 나눠갖는 팀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엔 멤버 개인간의 인지도 격차와 소득 격차가 동시에 발생한다.
더욱 심각한 건 미래에 대한 만족도(3.00)다. '매우 불만족' 2명, '불만족' 8명으로 집계됐다. '불만족' 2명에 불과한 배우와 비교하면 심각성이 여실히 드러난다. 사실 배우는 나이가 들어도 배역을 달리하면서 오래 활동할 수 있다. 드라마에 캐스팅되기만 하면 방송 기간에는 안정적으로 수익이 보장된다. 하지만 아이돌은 수명이 짧다. 광고 모델로 발탁돼도 장기 계약은 힘들다. 당연히 출연료도 낮다. 더 시간이 지나면 남자에겐 군대가, 여자에겐 나이가 걸림돌이다. D기획사 관계자는 "정상급으로 올라섰다거나 음악적 비전이 확실하다면 모를까, 대부분의 아이돌은 미래에 대해 비관적 전망과 불안감을 갖고 있다"면서 "열성적인 팬들이라 해도 새로운 인기 아이돌이 나오면 언제든 옮겨갈 수 있지 않겠냐"고 씁쓸해했다. 김표향 기자 suza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