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운동회 날 운동장에서 아들이 혼자 김밥 먹는 모습 보고 울었어요. 아들을 안아주면서 말했어요. 엄마가 미안해."
15년 전 베트남에서 한국으로 온 레띠홍화 씨. 남편이 떠넘긴 수천만 원의 빚보다 그녀를 더욱 힘들게 한 것은 두 아들을 괴롭히는 차별과 왕따다. 초등학생 때만 해도 활달하던 큰 아들 경민이는 "베트남으로 돌아가라"는 반 아이들의 놀림과 괴롭힘에 맞서다 결국 문제학생이 됐다. 성적은 꼴찌로 떨어졌고 탈모증세까지 왔다.
KBS 파노라마 '엄마가 미안해' 편은 다문화 가정에 대한 우리 사회의 보이지 않는 편견과 차별을 아프게 직시한다. 그리고 결코 놓쳐서는 안 되는 희망에 대해 이야기한다.
"엄마가 베트남이라고 놀리는 애들이 너무 싫었어요. 애들과 눈 마주치면 때리고 욕하고 쳐다보지 말라고 하고 놀리고 맞는 거도 힘들었지만 아무도 도와주지 않아서 더 힘들었습니다."
늘 우울하고 말이 없던 경민이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과학선생님이 작은 관심과 배려를 보여준 이후부터다. 선생님은 가해학생과의 상담을 통해 괴롭힘을 멈추게 했고, 경민이에게 참고서도 구해주고 성적이 뛰어난 학생과 함께 공부하도록 배려했다.
그리고 지난 1월 강원도에서 다문화 아이들을 위한 캠프가 열렸다. 스웨덴에서 활동하고 있는 배우, 작곡가, 가수 등이 강사로 초빙됐다. 경민이는 연극반에 참가했다. 얼마 전까지 사람 앞에 서는 곳조차 두려워하던 아이가 여러 장의 대본도 외우고 주인공 역할을 맡아 연기를 거침없이 해냈다. 경민이를 지켜본 사람들은 모두 놀랐다. 스웨덴의 유명한 연극 단체와 대학의 도움으로 경민이는 스웨덴에 갔다. 그곳에서 유명감독으로부터 연기지도를 받고 배우들 앞에서 공연을 했다. 가는 곳마다 재능이 놀랍다는 칭찬이 쏟아졌다. 태어나 처음으로 받아보는 칭찬이었다. 경민이의 얼굴은 더 이상 예전의 그늘진 얼굴이 아니다. 뿌듯함과 자부심이 가득했다. 무엇이 경민이를 변하게 한 걸까.
신생아 20명 중 1명이 다문화 가정 출신이라고 한다. 어머니를 따라 한국에 온 중도입국 청소년도 급격히 늘고 있다. 정부도 사안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대책을 세우고 있다. 경민이의 변화를 경험한 KBS 파노라마 제작진은 "지금 다문화 아이들에게 시급한 것은 삶의 희망을 되찾아주는 것"이라며 "사회적 분위기를 따라가는 정책보다 실제 도움을 주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엄마가 미안해' 편은 고 이태석 신부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 '울지마 톤즈'를 만든 구수환 PD가 연출했다. 이금희의 내레이션도 반갑다. 22일 오후 10시 방송. 김표향 기자 suza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