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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아들 뒷바라지 원한 시어머니에게 '이혼하라'는 말 들었죠"
박-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겠네요.
유- 그쵸. 마감 시간이 얼마남지 않고, 친정집 앞에 있는 사진관에서 찍었는데, 나중에 찍고 나서야 정육점 앞에서 찍은 것을 알았죠. 이미 그때는 늦었고요. 부랴부랴 택시를 타고 접수대로 갔어요.
박- 정육점 앞 사진을 보고, '이 사람은 무엇이나 팔 수 있겠다'란 생각이 들었을 것 같아요.
유- 네. 다들 예쁘게 찍었는데, 저만 화장도 초라하고 그랬으니 오히려 눈에 띄었죠. 합격하게 됐죠.
박-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절실하면 통하고, 절망의 끝에서 희망을 찾는다는 진리를 배우네요. 정육점 앞에서 찍은 사진이 이런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누가 느꼈겠어요. 어렵게 쇼호스트가 됐는데, 기쁜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죠.
유- 시어머니의 반대가 굉장했어요. 아니, 제가 일하는 것을 주변에서 찬성하는 사람이 없었네요. 저희 남편, 시어머니, 친정에서도 반대했으니까요. 저희 남편이 딸 넷에 막내 아들이었어요. 시아머님이 어렵게 의대 공부까지 시켰고요. 그때는 '의사 남편이 뭐 대단하다고, 나 취직할 때 보태준 것 있나'란 생각했지만 사실 이젠 시어머니 마음도 이해가 가요. 당시 의사한테 갈 때는 열쇠 3개 가져간다고 했는데, 저는 그런 것도 없었고요. 집도 없었고, 차는 제가 쓰던 차를 조금 넓혀서 신랑이 쓴 정도가 다 였어요. 결혼할 때 나이도 많아서 반대 많이 하셨죠. 그때는 서른이면 노처녀였거든요.
박- 마음 고생이 많았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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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소박을 맞은 거네요.
유- 소박이란 생각은 못했는데, 그러네요. 남편이 레지던트 때라 3일에 한 번씩 들어왔어요. 그래서 저랑 어머니가 둘이서 밥을 먹었는데요.어느 날은 어머니가 '난 처음부터 니가 마음에 안들었다. 애도 들어서지 않고, 너는 일 욕심이 많은 것 같다. 나가라'고 하셨어요. 그 앞에서는 눈물이 안나오더라고요. 사실 더 심한 말씀도 했지만 체감이 안나서요. 결국에는 이혼도 안하고, 일도 포기하지 않으니까 시어머니가 쫓아냈죠. '오늘 너희들이 나가면 앞으로 같이 살 일 없을 것이다. 혹시라도 아이가 생긴다해도 애 맡길 생각하지마라. 내가 진짜 힘들 때 아니면 너희랑 살자고 할 생각 없다'고 하셨죠. 그렇게 저희는 청담동에서 일산으로 이사를 갔어요.
정리=김겨울기자 winter@sportschosun.com
(3편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