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림의 엄마꿈 인터뷰⑬]유난희 "시어머니로부터 이혼하란 말까지 들었죠"(2)

기사입력 2013-10-30 10:32


쇼호스트 유난희와 박경림이 '엄마꿈(엄마도 꿈이 있단다)' 캠페인을 응원하고 있다.

"의사 아들 뒷바라지 원한 시어머니에게 '이혼하라'는 말 들었죠"

유- 쇼호스타가 됐을 때 아무도 관심이 없었어요. 직업이라는 게 그렇죠. 남들도 원하는 직업은 경쟁률이 셀 수밖에 없어요. 우리 사회가 남에게 보여주고 싶고, 직장도 대기업만 바라보는 것이 자라나는 청소년들의 꿈을 제한하는 것같아요.

사실 나도 계속 떨어지니까 얼굴이 안예뻐서 그런가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얼굴이 안보이면 가능성이 있을까해서 성우 시험도 봤지만 떨어지더라. 그래서 방송쪽이 나랑은 연이 아닌가보다며 접으려고 하는데, 나이가 서른이 됐죠. 아버지가 '내 딸이지만 재혼자리밖에 없다"며 말할 정도였어요. 그때 서른은 노처녀 취급을 받았거든요..결국 결혼부터 했죠. 그러다 결혼하고 시댁에 살다가 쇼호스트 모집 공고를 보게 됐어요. 대상 연령이 26세부터 45세까지더라고요. 거기다 결혼 유무도 관계없다고 하고, 95년도 당시에 나이와 결혼 유무가 상관없는 전형이 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거죠.

박-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겠네요.

유- 그쵸. 그날 오후 3시에 원서 마감인데 오전부터 서둘러서 가까스로 냈어요. 이미 마감됐는데 넣게 해달라고 사정했었죠. 그때 전신 사진을 내라고 했는데, 없었어요. 결국 사진관에서 급하게 촬영했는데, 정육점 앞에서 찍었더라고요. 하하.

박- 그때는 허바허바 사진관이나 마샬 미용실에 들릴 시간이 없었군요.

유- 그쵸. 마감 시간이 얼마남지 않고, 친정집 앞에 있는 사진관에서 찍었는데, 나중에 찍고 나서야 정육점 앞에서 찍은 것을 알았죠. 이미 그때는 늦었고요. 부랴부랴 택시를 타고 접수대로 갔어요.

박- 정육점 앞 사진을 보고, '이 사람은 무엇이나 팔 수 있겠다'란 생각이 들었을 것 같아요.


유- 네. 다들 예쁘게 찍었는데, 저만 화장도 초라하고 그랬으니 오히려 눈에 띄었죠. 합격하게 됐죠.

박-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절실하면 통하고, 절망의 끝에서 희망을 찾는다는 진리를 배우네요. 정육점 앞에서 찍은 사진이 이런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누가 느꼈겠어요. 어렵게 쇼호스트가 됐는데, 기쁜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죠.

유- 시어머니의 반대가 굉장했어요. 아니, 제가 일하는 것을 주변에서 찬성하는 사람이 없었네요. 저희 남편, 시어머니, 친정에서도 반대했으니까요. 저희 남편이 딸 넷에 막내 아들이었어요. 시아머님이 어렵게 의대 공부까지 시켰고요. 그때는 '의사 남편이 뭐 대단하다고, 나 취직할 때 보태준 것 있나'란 생각했지만 사실 이젠 시어머니 마음도 이해가 가요. 당시 의사한테 갈 때는 열쇠 3개 가져간다고 했는데, 저는 그런 것도 없었고요. 집도 없었고, 차는 제가 쓰던 차를 조금 넓혀서 신랑이 쓴 정도가 다 였어요. 결혼할 때 나이도 많아서 반대 많이 하셨죠. 그때는 서른이면 노처녀였거든요.

박- 마음 고생이 많았겠네요.


쇼호스트 유난희가 '박경림의 엄마꿈(엄마도 꿈이 있단다)' 인터뷰에서 늦은 나이에 꿈을 이루고나서 워킹맘으로 살면서 시어머니와 갈등을 겪었던 과거를 털어놨다.
유-맘에 들지 않는 결혼이 됐는데, 아들 뒷바라지나 하길 원했던 며느리가 결혼 6개월 쯤에 일한다고 새벽부터 나가서 새벽에 들어오니까 시어머니가 많이 반대하셨죠. 그때는 쇼호스트가 국내에 없을 때라서 미국에서 온 테이프를 들고, 배워야 했거든요. 그래서 편집실에서 천천히 돌려가면서 보고, 뜻을 적어놓고 공부하고 하다보면 밤을 새우고 들어가니까요. 시어머니 입장에서는 화가 나실만 하죠. 정말 어머니 깨실까봐 마루 바닥을 신발도 벗지않고 기어서 들어갔다니까요. 그렇게 1년이 지나고 시어머니가 '이혼해라'라고 하셨죠.

박- 소박을 맞은 거네요.

유- 소박이란 생각은 못했는데, 그러네요. 남편이 레지던트 때라 3일에 한 번씩 들어왔어요. 그래서 저랑 어머니가 둘이서 밥을 먹었는데요.어느 날은 어머니가 '난 처음부터 니가 마음에 안들었다. 애도 들어서지 않고, 너는 일 욕심이 많은 것 같다. 나가라'고 하셨어요. 그 앞에서는 눈물이 안나오더라고요. 사실 더 심한 말씀도 했지만 체감이 안나서요. 결국에는 이혼도 안하고, 일도 포기하지 않으니까 시어머니가 쫓아냈죠. '오늘 너희들이 나가면 앞으로 같이 살 일 없을 것이다. 혹시라도 아이가 생긴다해도 애 맡길 생각하지마라. 내가 진짜 힘들 때 아니면 너희랑 살자고 할 생각 없다'고 하셨죠. 그렇게 저희는 청담동에서 일산으로 이사를 갔어요.


정리=김겨울기자 winter@sportschosun.com

(3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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