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키호테' 김보성, 의리없는 사회를 향해 '나? 으리'를 외치다

기사입력 2014-06-13 05:33



지난 4월 16일 오전 8시, 전국민은 침몰해가는 여객선 세월호를 발을 동동 구르며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설마, 설마, 설마' 하던 차에 희망은 물거품 속에 사라졌고, 국민들의 마음도 상처의 늪에 잠겼다. 사건 후, 선원들의 부도덕함, 무능력한 정부, 거기에 부패한 기업의 천박한 진실까지 드러나면서 사회에 대한 불신은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다.

바로 이 시점, 모 식혜 광고가 유튜브를 통해 공개됐다. 선글라스를 낀 남자가 씩씩하게 등장한다. 다소 과장스런 제스쳐로 '의리'를 외친다. 의리를 잃은 사회에 던지는 돈키호테같은 외침. '의리'다. 누가 듣건 듣지않건 20년을 한결같이 '의리'를 외쳤던 사람, 김보성이었다.

"의리가 코믹스럽게 부각되면서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지게 된 부분은 고마워요. 단, 너무 희화화될까 우려스럽긴 하죠. 보다 진정성있는 의리가 많이 부각됐으면 합니다." 인간이 마땅한 행동을 함으로써 천리(天理)를 실천한다는 뜻의 '의리'. 이 단어가 우습게 들린다는 것 자체가 어쩌면 이상한 사회일지 모른다. 김보성은 그 점을 걱정했다. 그리곤 의리에 대한 자신의 확고한 철학을 들려줬다. "의리에는 3단계가 있습니다. 1단계 의리는 어린시절부터 친구들과 교제를 통해 쌓아 온 우정, 2단계는 우정이 발전해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도 질서를 잘 지켜야 한다는 공공의식, 그리고 더 발전하는 3단계는 측은지심의 마음이 따르는 이타심을 가진 단계라고 생각합니다."


"김홍신 작가 '인간시장' 읽고 '의리'를 모토로…"

문득 궁금해졌다. 의리에 대한 그의 확고한 철학. 언제부터 생긴걸까.

"어린시절부터 의리있는 삶을 원했어요. 태권도를 배워 혹시 친구나 친구 동생이 괴롭힘을 당한다고 생각하면 달려가서 혼내주기도 했죠.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은 김홍신 작가의 '인간시장'을 읽고 나서였죠. 장총찬이란 캐릭터에 매력을 느끼고, 내 인생의 모델로 삼게됐죠." 액션 배우가 된 계기가 있었다. "스무살 때였어요. 공원에서 남녀가 데이트를 하는데, 완전 양아치들, 세 명이 각목을 숨기고 그들에게 다가가더라고요. 보니까 약을 한 것 같던데…. 그 당시 장총찬이 모델이었을 때라 나도 모르게 그분들에게 도망가라고 하고, 양아치 3명과 격투를 했어요. 1대 3으로 결투했는데도 경찰서에서는 증인이 없다는 이유로 쌍방 폭행으로 처리하더라고요. 그때 깨달았죠. 현실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말이죠. 그래서 액션배우가 돼 사람들에게 의리를 전파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그는 액션배우가 됐고 제임스 딘을 닮은 꽃미남 외모와 스턴트 대역도 마다하는 열정으로 배우로 명성을 날렸다. 영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그래 가끔 하늘을 보자', '있잖아요. 비밀이에요2''열 아홉의 절망 끝에 부르는 하나의 사랑 노래' 등으로 청춘스타 반열에 오르더니, '하얀전쟁', '모래시계', '투캅스2', '투캅스3', '깡패수업3', '파트너', '보스상륙작전' 등을 통해 '의리 아이콘'으로 자리매김을 했다.


"죽을 고비 많았다. 보너스 인생이라 생각"


본명이 허석이었던 김보성. 왼쪽 눈 실명 사건 등 여러 죽을 고비들을 넘기며, 개명을 해야했다. 스크린에서 의리를 강조한 역할을 많이 해서였을까. 크고 작은 시비에 휘말리기 십상이었다.

"죽을 고비가 많았던 인생이에요. '왜 살아야 하는가'라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죠. 그만큼 내 인생을 보너스 인생이라고 생각해요. 대한민국을 위해 한 목숨을 바치려 합니다."

그는 진지하게 말을 이어갔다. "의리라는 게 거창한 게 아니에요. 누구나 작게라도 실천할 수 있어요. 타인을 위하는 마음을 먼저 갖는 것부터가 의리의 시작이죠. 궁극적으로 남을 배려하다보면 용서도 쉽고, 포용력있는 사회가 될 수 있어요. 그렇게되면 타인에게 감동을 주고, 심금을 울릴 수 있는 거죠. 영적으로 성숙한 사회가 내가 바라는 사회에요. 그리고 상대방을 배려할 줄 아는 사람들이 억울하지 않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마음에서였을까. 그는 대출까지 해가며 세월호 희생자들을 위한 성금을 마련해 화제를 모았다. "정말 부끄러워요. 더 많은 액수를 기부하고 싶었는데, 아쉬웠죠. 그 사건을 생각하면 정말…." 잠시 이어지는 침묵.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자 목이 턱 메인다. 그만큼 원통해 하고 있음이 느껴진다.

이토록 정의감에 사로잡힌 사람이 정치인으로 나서면 어떨까. 조심스럽게 정치계에 입문할 의향을 물었다. "아뇨. 저는 어느 편에 서서 정치를 하기보다는 계몽을 하는 사람이에요. 그저 '의리' 계몽 운동가로 봐주셨으면 합니다."

인터뷰가 끝나고 그는 기자에게 "기자로서 의리로 사명감을 가지고 앞으로 일해주길 바란다"는 당부를 남기며 또 한 번 의리를 외친다. 처음부터 끝까지 딱 하나의 주제였던 '의리' 인터뷰. 단언컨대, 그는 지고지순한 순정파 의리남이었다. 참, 인터뷰를 위해 전화했을 때 김보성 전화의 컬러링은 007 시리즈 OST였다.


김겨울기자 winter@sportschosun.com

Copyright (c) 스포츠조선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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