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자기 몫의 고통과 시련을 안고 살아간다. 가진 자나 못 가진 자나, 배운 사람이나 그렇지 못한 사람이나, 저마다 삶의 무게로 힘겨워한다. 그러나 쉼 없이 돌아가는 일상의 쳇바퀴는 우리가 상처를 치유하고 숨고르기를 할 시간을 주지 않는다. 후회로 가득한 어제와 고단한 오늘을 지나 막막한 내일로 직진할 뿐이다.
찰리 채플린은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고 했다. 그러고는 "그러므로 나는 멀리 보려고 노력한다"고 덧붙였다. 인생을 관조하는 태도와 낙천적인 시선을 강조하는 말이다. 번민과 고통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이란 이렇게 자신의 시선을 다잡는 것일지도 모른다. 돛을 단단히 세운 배는 풍랑에 휩쓸리지 않는 것처럼 세상을 향한 시선을 정립한 사람은 어려움 속에서도 자신의 길을 찾게 마련이다.
최근 출간된 '모습 없는 존재'는 삶의 진실을 성찰한 저자의 깊이 있는 시선이 돋보이는 책이다. 스리랑카 빠알리(Pali) 불교대학에서 불교사회철학을 공부하고 현재는 거시적 한국음악 노하우를 작사 작곡하고 있는 저자 하진규는 복잡다단한 세상 사람들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방대한 시편들로 풀어냈다. 원칙을 중요시하되 원칙에 함몰되지 않고 삶의 균형을 잡는 법을 유려한 언어로 노래한다.
책은 총 8장으로 구성됐다. 1장은 정치학, 2장은 예술학, 3장은 인류학, 4장은 경제학, 5장은 국문학, 6장은 지리학, 7장은 국제학, 8장은 역사학이다. 다소 무거워 보이는 주제지만 각 장마다 주제에 걸맞은 필자의 관심사가 방대하면서도 흥미롭게 펼쳐진다. 각각의 시편들은 우리를 스쳐 지나간 크고 작은 삶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저자는 "부유하지 않아도, 명예롭지 않아도, 자신의 삶을 사랑하는 사람은 영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과 다름없고 똑똑하다"고 말한다. 또 "지적인 것이 아무리 좋다 한들, 가까운 사람을 이해하고,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며, 공감하고 나누는 것만큼 훌륭한 것은 없다"고 전한다. 저자의 목소리리는 크지 않지만 오랫동안 여운을 남기는 울림이 있다.
이 책은 우리가 기댈 수 있는 유일한 보루는 세상을 바라보는 각자의 진실된 시선, 그리고 그것을 공감하는 자세에 있다는 걸 깨닫게 한다. 복잡한 세상을 살아가는 정갈한 지혜를 배울 수 있는 책이다. (하진규 지음 / 모아북스/ 1만 2000원) 김표향 기자 suza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