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게임 아카이브 '이야기(story)가 쌓여 역사(history)로'

최종수정 2015-05-19 11:25




지금 생각하면 조금 우습지만 약 20년 전 온라인게임이 하나 둘씩 등장하던 시기에는 이런 말이 있었습니다.

'온라인게임 캐릭터는 인터넷에만 존재하는 데이터 조각일 뿐, 결국 그런 캐릭터에 애착을 가져서 뭐하냐. 게임이 종료되면 당연히 캐릭터도 없어질테고. 대신 콘솔게임은 게임 CD만 있으면 언제든 그대로 남아있는데'

국내 게임시장에서 수많은 온라인게임들이 등장했다 사라지며 이러한 이야기는 대부분 맞는 이야기가 됐습니다. '우리 게임을 사랑해주는 유저가 1명만 남아있더라도 게임을 계속 서비스 하겠다'는 많은 회사들이 있었지만 이를 정말로 지키는 회사는 아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바람의 나라는 20년 리니지는 15년을 훌쩍 넘기며 서비스 중이지만, 과거 어린 시절 자신이 즐겼던 캐릭터가 남아 있는 게임은 거의 존재하지 않습니다. '서든'하고 '메이플'이 남아있다고요? 이제 사실 그런 온라인게임은 몇 개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러고 보니 제 포트리스2의 캐릭터는 남아있을지 모르겠네요.

예전에 인기 온라인게임에서는 좋은 닉네임을 갖기 위해서 수업이 끝나자마자 PC방으로 직행했던 일도 있었죠. 당시 유명 연예인의 이름을 선점하기도 했구요. 시간이 지나 친구들과 그 게임을 더 이상 하지 않거나 게임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며 바탕화면에서 게임이 삭제됐고 어느새 계정을 잊어버리는 단계가 되어버립니다. 게임의 캐릭터들은 휴면 계정으로 묶여 별도의 보관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휴먼 계정이면 양호한 수준일지 모릅니다. 캐릭터는커녕 10년 전에 즐겼던 온라인게임들이 현재 몇 개나 남아있을까요. 지금은 그 수를 세는 것이 빠를지도 모르겠습니다.

최근 무한도전의 토토가도 그러했고, 케이블채널의 응답하라 시리즈의 코드는 결국 '추억'입니다. 온라인게임의 최대 매력은 자신의 아바타였던 '캐릭터' 그리고 함께 했던 '친구들'로 압축해볼 수 있겠습니다. 당시 게임의 추억과 자신의 캐릭터, 온라인의 친구들이 가끔 생각나는 때가 있지만 온라인게임에서 이를 찾고 되살리는 것은 여간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온라인게임 기업들은 수익성, 인기 등을 이유로 시간이 지나면 많은 유저들의 기록이나 개성을 담은 캐릭터들을 삭제할 수밖에 없는 소위 '어른들의 이유'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죠.

그런데 지난해 넥슨의 NDC(넥슨개발자컨퍼런스)에서 흥미로운 내용 하나가 발표되었습니다. 넥슨컴퓨터박물관에서 바람의나라 초기 버전의 디지털 아카이브(기록 보관)를 진행한 것입니다. 유저들의 캐릭터를 하나하나 되살린 것은 아니지만 약 20년 전의 게임이 당시의 모습으로 되살아났습니다. 지금은 엑스엘게임즈의 송재경 대표까지 참여해 의미 있는 성과를 남겼습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넥슨은 올해 서비스를 준비 중인 메이플스토리2의 아카이브 작업도 진행했습니다. 아직 서비스가 되지도 않은 게임에서 무슨 아카이브냐고 물을 수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비공개테스트에 참여한 유저들의 데이터는 당연히 삭제되기 마련인데, 넥슨은 참가자들에게 자신의 캐릭터 이미지를 남겨주고, 지난 파이널테스트에는 자신의 캐릭터가 들어가 있는 동영상까지 제작해 전달했습니다. 약 8만여 명의 테스터들이 있었음에도 말이죠.

과거 어느 온라인게임 기업에서 하지 않았던 서비스입니다. 당연히 비공개테스트의 결과물이기에 그냥 삭제되어도 문제가 없지만 애정을 가지고 테스트에 참여해준 유저들을 위해 작은 선물을 전달한 것이죠. 약 두 달 후 오픈베타를 준비하는 회사에서 쉽게 할 수 없는 결정이었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넥슨이 상당히 의미 있는 이벤트를 또 하나 남겼습니다. 그렇다보니 테스트에 참여한 유저들의 만족도가 올라가는 이유가 되고 있습니다.

이제 20년이 된 국내 온라인게임 시장에서 디지털 아카이브는 초기 단계에 불과합니다. 넥슨, 엔씨소프트와 같은 온라인게임 기업들이 시대를 선도하는 최신 기술의 발전도 중요하지만 꼭 잊지 말고 함께 해나갔으면 하는 부분입니다. 누군가의 시간들이 하나하나 모여 만들어진 기록들이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NDC에서 전길남 교수 역시 '디지털 아카이브의 중요성과 필요성'에 대해 강조한 바 있습니다.

지금의 하나하나의 이야기(story)들이 쌓이고 쌓여 시간이 지나면 그것이 역사(history)가 되어 갑니다. 과거 다른 문화 콘텐츠 산업이 힘겨운 시기를 보내며 굴곡의 역사를 가지고 있듯, 국내 온라인게임 산업도 비록 지금은 많은 이들이 인정하지 않는 데이터에 불과할지라도 앞으로 10년 그리고 20년이 지난 이후에 그 내용들은 보다 가치 있는 기록이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지금이라도 온라인게임, 유저들의 기록 등 디지털 아카이브에 조금 더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최호경 게임인사이트 기자 press@gameinsight.co.kr

Copyright (c) 스포츠조선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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