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베테랑' 개봉을 앞두고 있는 류승완 감독이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스포츠조선과 인터뷰에 응했다. 류승완 감독이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영화 '베테랑'은 안하무인 유아독존 재벌 3세를 쫓는 베테랑 광역수사대의 활약을 그린 범죄오락 액션물. 황정민, 유아인, 유해진, 오달수, 장윤주 등이 출연했다. 오는 8월 5일 개봉한다. 정재근 기자 cjg@sportschosun.com/2015.07.30/
[스포츠조선 김표향 기자] 영화 '베테랑'은 거침없이 질주한다. 목적지는 "여전히 유효한 가치를 지닌 권선징악"이다. 류승완 감독은 "정상적인 사회에 대한 바람"을 재벌 3세의 범죄 행각을 쫓는 광역수사대 형사들의 활약상 속에 오롯이 담아냈다. 액션 오락물의 외피를 썼지만, 그 안에선 경제권력의 문제를 바라보는 감독의 시선이 날카롭게 빛난다.
권력의 뻔뻔한 민낯을 강타한 통쾌한 어퍼컷. 이기는 것보다 지는 것에 익숙한 대다수 평범한 이들에게 작지만 소중한 승리의 경험을 안긴다. 류 감독은 "내가 응원하는 주인공이 승리하는 것을 보고 싶었다"고 한다.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어?"라는 대사 속에는 자존감과 품위를 잃지 말자는 류 감독의 외침이 오버랩 돼 있다.
류 감독은 한국영화계의 베테랑이 된 지금도 감독의 역할과 존재를 고민한다. "어려운 문제를 쉽게 설명해야 좋은 선생님이듯 감독도 그래야 한다"고 믿는다. '부당거래'와 '베를린'을 지나면서 얻은 깨달음이다. '베테랑'에는 류 감독의 이러한 태도 변화가 투영돼 있다.
"예전의 저는 제 취향대로 말투 하나까지 개입하는 연출자였어요. 그랬더니 극의 컨셉트는 잡히는데 캐릭터의 개성이 다양하지 않고 의외성이 없더군요. '베를린' 때 이경영 선배가 제 고민을 듣더니 이런 얘기를 하셨어요. '연출은 방향만 제시하면 된다'고, '나머지는 알아서 잘할 수 있는 사람들 아니냐'고요. 돌이켜보니 언제나 믿을 만한 배우들과 일해 왔는데도 제가 그들을 온전히 믿지 못했던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후로 작업 방식에 변화가 생겼어요."
감독의 믿음은 완벽한 팀플레이를 일궈냈다. "감독이 잠깐 은행 업무 보고 와도 촬영장은 아무 문제 없이 돌아가더라"고 농담할 정도. 영화의 지향점에 대한 명확한 공유가 그 바탕이 됐다. "황정민은 배우 오디션부터 의상팀 회의까지 참석했어요. 그런데 정작 액션스쿨에서는 축구 하고 있더군요.(웃음) 액션 연습 끝나면 황정민이 후배들 데리고 가서 밥 사주고 시나리오 공부도 같이 했어요. 그러니 안 맞을 수가 없죠."
현장 흐름에 몸을 맡긴 류 감독은 "메이킹(making)이 아닌 초이스(choice)"에 집중했다. 황정민, 유아인, 유해진, 오달수의 조합. 버릴 장면이 하나도 없어서 '초이스' 작업이 더 어려웠을 것 같다. 배우들의 넘쳐흐르는 개성과 연기 앙상블은 '경이로움' 그 자체. 시너지의 완벽한 예 아닐까. 류 감독은 "지금 생각해도 소름 돋는 순간이 많았다"며 열띤 이야기를 이어갔다. "임금도 못 받고 해고된 배기사(정웅인)가 조태오(유아인) 사무실을 찾아갔을 때 조태오가 배기사의 아들에게 장난감을 주는 장면이 있어요. 그때 유해진이 '고맙습니다 해야지'라고 말해요. 대본에는 없는 대사예요. 유해진이란 배우가 이렇게 영화를 살리는구나 싶더군요. 기자 역의 신승환도 자기 대사를 직접 써왔고, 심지어 보조출연자까지 구멍이 하나도 없었죠. 그 점에 대해선 자부할 수 있습니다."
류 감독이 그려낸 영화 속 세상은 여전히 혼탁하지만 전개 방식과 결론이 상당히 낙관적이다. 그런 의미에서 권력과 자본의 추악함을 들춰낸 '부당거래'와 '베테랑'은 한 몸이지만 서로 다른 '동전의 양면' 같은 관계다. "유혹에 굴복했을 때 벌어지는 현상이 '부당거래'라면, 그 유혹에 저항했을 때 보여지는 그림이 '베테랑'이에요. '베테랑'의 인물들은 옳다고 믿는 것을 자신의 위치에서 해냅니다. 테러리스트가 일부러 배를 침몰시킨 것도 아니고 적국의 바이러스를 퍼뜨린 것도 아닌데 왜 그런 일들이 벌어졌나 돌이켜보면, 각자 자신의 위치에서 해야 할 일을 안 했기 때문이에요. 사람을 중심에 올곧이 세워놓고 자신의 일을 충실히 해냈을 때 더 멋있는 세상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담아내고 싶었어요."
류 감독은 '베테랑'에 대해 "부조리하고 답답한 현실에 무기력해지지 않으려는 노력"이라고 설명했다. 그래서 앞세대를 향하던 분노를 접고 영화를 통해 뒷세대와 진지한 대화를 나누고 싶다고 한다. "우리 아이들에게 이런 세상을 그대로 물려줄 순 없잖아요. 세상은 혼탁해도 좀 더 폼나게, 멋있게 살 수 있는 방법이 있을 거라고 말해주는 삼촌이 한명쯤 있어도 괜찮지 않을까요?"
"수갑 차고 쪽팔린 짓 하지 말자"던 광역수사대 형사 서도철(황정민)이 바로 그 '삼촌'인 셈. 더불어 류 감독이 열광한 성룡 영화에서 약자를 위해 싸우던 액션 영웅의 변주이기도 하다. "정의가 승리하는 것이 요즘 시대엔 도리어 판타지가 아니냐고 하지만, 실제로 서도철 같은 사람이 존재해요. 재벌의 폭행사건을 파헤친 형사가 있었고, 권력이 감추려는 진실을 끝까지 밝혀내는 기자들이 있고, 양심에 따라 조직의 비리를 고발하는 내부고발자도 있죠. 그들을 응원하는 것이 우리 스스로를 응원하는 거라고 봐요."
인터뷰 테이블에서 마주한 1시간 남짓, 류 감독은 "멋있게 살자"는 얘기를 수차례 반복했다. 감독의 다짐이 고스란히 흡수된 '베테랑'은 멋있게 재미있는 영화로 탄생했다. 그리고 지난 6일간 극장을 찾은 300만 관객들은 류 감독의 '멋'에 흠뻑 취했다. 앞으로 더 많은 관객들이 시간가는 줄 모르는 2시간짜리 영화를 보며 카타르시스를 느낄 것 같다. suzak@sportschosun.com
영화 '베테랑' 개봉을 앞두고 있는 류승완 감독이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스포츠조선과 인터뷰에 응했다. 류승완 감독이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영화 '베테랑'은 안하무인 유아독존 재벌 3세를 쫓는 베테랑 광역수사대의 활약을 그린 범죄오락 액션물. 황정민, 유아인, 유해진, 오달수, 장윤주 등이 출연했다. 오는 8월 5일 개봉한다. 정재근 기자 cjg@sportschosun.com/2015.07.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