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조선 김표향 기자] 인터뷰에 앞서 배우 오달수(48)가 담배를 살짝 꺼내 물었다. 생애 첫 주연 영화를 무사히 끝낸 뒤에 즐기는 한 모금의 여유다. "주연이란 부담감을 내려놓고 일반 관객의 눈으로 영화를 봤더니 '이 정도면 됐다' 싶더군요. 물론 어색한 연기나 치명적인 실수가 제 눈에는 보이지만, 차근차근 복기를 하고 나니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어요." 공식행사 때마다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던 오달수가 비로소 기분 좋게 웃었다.
영화 속 장성필은 아동극 '플란다스의 개'에서 파트라슈 역할로 20년간 무대에 섰다. 누군가의 눈엔 사소해 보이겠지만, 그는 '정통 연기 20년'이라고 자부한다. 힘겨워하는 가족에 대한 미안함에 장성필은 충무로 대표감독 깐느박(이경영)의 신작 '악마의 피' 오디션에 도전하고, 같은 극단 출신 국민배우 설강식(윤제문)에게 도움을 청한다.
충무로 입성 이전, 오달수도 장성필과 크게 다르진 않았다. 대학시절 소극장으로 인쇄물 배달 아르바이트를 갔다가 우연히 연기에 입문해 1990년 극단 연희단패거리를 통해 데뷔했고, 이후 10여년간 연극에만 몰두했다. "가족들이 제게 말은 안 했지만, 아마 당시 제 모습이 안타깝고 한심하게 보였을 겁니다.(웃음)"
|
생활고에 짓눌렸던 연극배우 시절에도 이유 없이 주는 돈은 절대 받지 않았고, 친구들의 작은 도움엔 극단 회원권으로라도 꼭 보답했다. 자존감을 무너뜨리지 않기 위한 분투다. 그렇게 연극판을 지켰던 오달수가 영화계에 발을 디딘 건 순전히 '우연'이었다. "3일 동안 낮 시간에 찍으면 된다"는 지인의 설명에 연극 공연에도 지장이 없으니 가볍게 출연한 게 시작이다. 바로 '해적, 디스코왕 되다'(2002)의 '뻘줌남' 캐릭터다. "고작 3일간 촬영했는데 연극 개런티보다 훨씬 많은 돈을 받았어요. 연극 동료들을 죽 전문점에 데려가 특식으로 한턱 냈죠."
이후 '뻘줌남'을 눈여겨본 관계자의 추천으로 옴니버스영화 '여섯 개의 시선'에 출연하게 됐는데, 거기서 박찬욱 감독을 만났다. 그 영화도 "낮 12시 이전에 촬영을 끝내주겠다"고 해서 출연했다. 그리고 얼마간의 시간이 흘러 전화 한 통을 받았다. 박찬욱 감독이었다. "3개월간 스케줄이 어떠시냐"는 질문이 건너왔다. "하아…. 스케줄이라니. 스케줄이란 말을 처음 들어봤어요. 당시 공연이 없던 터라, 시간 비워두겠다고 답했죠. 그 영화가 '올드보이'예요."
그 이후는 모두가 아는 그대로다. 영화 '변호인', '암살', '베테랑', '도둑들' 등 7편의 출연작을 천만 반열에 올린 '천만요정', 전무후무 '1억 배우', 지난해 청룡영화상 남우조연상의 주인공. 영광의 수식어가 그를 위해 만들어졌다. "그저 우연의 일치일 뿐"이라며 겸손해하는 그의 말에는 진심이 실려 있다. 평소 그의 연기관에서도 그 진심의 무게를 가늠할 수 있다. "저는 연기를 잘하려고 하지 않아요. 욕심이 없는 게 장점이자 단점이죠. 배우들의 완벽한 연기는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희열을 느끼게 하지만, 때론 허술함에서 관객들이 위안을 얻기도 합니다. 제 연기를 좋아하는 분들도 아마 저의 허술함을 좋아해주시는 거겠죠."
오달수는 지금도 극단 신기루만화경을 이끌며 연극 무대를 지키고 있다. 후배들에게 연기 조언 대신 스스로 느낄 때까지 기다려준다는 그에게 인생 철학을 물었다. 꿈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또 다른 오달수들'을 위한 격려다. "무슨 일이든 10년은 해봐야 해요. 그러면 어느 순간, 전광석화처럼 깨달음을 얻을 겁니다. 그때까지 버텨야죠. 그게 중요합니다."
suzak@sportschosun.com·사진제공=리틀빅픽쳐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