쏟아지는 콘텐츠 속에서 대중의 눈높이는 이전에 비해 확연히 높아졌다. 이제는 스타 마케팅은 물론 작품의 완성도와 참신함 등이 평가 대상이 됐다. 시청자들에게 작가 역량 또한 중요한 평가기준이 됐다는 얘기다. 그러면서 배우보다 작가에 대한 믿음으로 드라마를 보는 팬덤까지 생겨났다. 최근 특히 눈에 띄는 현상은 기존에 이름을 알렸던 스타 작가들보다도 새로운 아이디어로 무장한 신흥 세력들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는 점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문영남, 김수현, 임성한, 이경희 등의 작가 이름이 걸린 작품은 무조건 본다는 말이 있었다. 썼다 하면 높은 시청률은 물론 전국민적인 인기를 끌었기 때문. 그러나 어느 순간 그들은 서서히 대중들에게서 존재감을 잃고 있다. '소문난 칠공주' '조강지처클럽' '수상한 삼형제'등 시청률 보증수표라 불렸던 문영남 작가의 신작은 MBC와 KBS 양사에 편성이 불발돼 결국 SBS로 터를 옮겼다. '미안하다 사랑한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남자' 등을 집필하며'감성 멜로의 대가'라 불렸던 이경희 작가의 신작 '함부로 애틋하게' 진부하다는 평과 함께 한자릿수 시청률로 쓸쓸하게 퇴장했다. 명실상부 대한민국 드라마계 '대모'라 불리던 김수현의 '그래 그런거야' 역시 주말극임에도 시청률 10% 미만에 머무르며 조기 종영을 맞이했다. 이는 단순히 완성도나 취향의 문제가 아니다. 그간의 패턴을 답습하는 이들 작가의 '자기복제'적 드라마 문법이 시청자들에게 식상해졌다는 의미다.
반면 패기 넘치는 소재들을 들고 나선 작가들에 대중은 환호했다. '시그널'의 김은희, '또 오해영' 의 박해영, 'W'의 송재정, '청춘시대' 박연선 등이 그 주인공이다. '싸인' '유령'의 김은희는 '시그널'을 통해 무전기로 과거의 인물과 교신하며 미제 사건들을 해결해낸다는 참신한 소재로 장르극의 신기원을 이끌었으며 '나인' '인현왕후의 남자' 송재정은 웹툰과 현실을 오간다는 판타지적 소재로 듣도보도못한 'W'라는 화제작을 만들어냈다. 박해영 작가의 '또 오해영'은 톱스타 하나 내세우지 않았지만 현실 공감 스토리와 미래에서 과거를 회상한다는 판타지적 요소를 적절히 버무려 큰 인기를 끈 바 있다.
이 작가들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공통점은 전에는 상상하기 힘들었던 소재들을 발굴해 냈고, 그 낯설고 이질적인 판타지적 요소를 현실에 완벽 밀착시켜 공감 가면서도 예측할 수 없는 재미를 만들어 낸다는 데 있다. 또 단순히 새로운 소재나 장르적 특징에만 국한하지 않고 존재의 의미를 묻거나 어두운 사회상을 통렬하게 비판하는 시선을 담아내 무게중심을 잡았다는 점도 주효했다. 완성도와 화제성, 시청률까지 잡아내는데 성공했다는 것이다.
한 관계자는 "단순 작법이나 스토리를 잘 쓰는 걸 넘어 화면에서 어떻게 보여질까 하는 연출적인 능력을 풀어낼 수 있는 작가들이 떠오르고 있는 것 같다. 단순 글쟁이에서 벗어나 현시점 대중들이 어떤 걸 원하고 어떤 요소에 뒤통수를 맞을지 정확하게 아는듯하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관계자 역시 "트렌드를 더 빨리 읽어내고 흡수하는 작가들이 등장했다. 기존 드라마는 가족관계, 주인공의 윗대 관계라던지 예측할 수 있는 공식들이 있었지만 그런 공식에서 탈피하려는 작가들에 대중은 신선함을 느끼는 것 같다"고 설명하며 의견을 뒷받침했다.
배우들의 작품 선택을 돕는 관계자 역시 이 부분에 동의한다. 그는 "세대교체는 문화계 전반에서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드라마 작가계는 유독 1세대 작가들이 오래 잡고 있어서 교체 바람이 부는듯하다. 배우들 역시 '이 작가님이라서' 작품을 선택하는 경우도 많이 줄었다. 유명 작가님들의 작품을 받아와도 막상 펼치면 역할이 전작들과 애매하게 비슷하거나 내용이 같거나 해버리는 경우가 많다. 꼭 스타 작가가 아니더라도 일단 내용이 괜찮고 대본이 너무 재밌으면 선택하게 된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세대교체라고 보기엔 미지수라는 시각 또한 있다. 한 관계자는 "아직 작가 세대교체라고 보기엔 어렵다. 방송사와 편성 논의나 제작비 투자를 받을 때 또 배우들이 작품 출연을 결정할 때도 작가 인지도는 무척 중요하다. 특히 이번에 '태양의 후예'가 김은숙 작가의 이름을 믿고 중국에서 투자금을 유치한 것과 같은 선례가 있어 더더욱 작가 네임밸류는 중요한 요소로 꼽힌다"고 전했다.
또 다른 관계자 역시 "신진 작가들의 아이디어가 좋다고는 하지만 아직 세대교체까지 말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다. 이미 편성된 작품들도 대부분 이제까지 유명했던, 1~2세대 작가들의 것이 대부분이고 3세대 작가들이 최근 들어 좋은 성적을 내고 있지만, 추이를 지켜봐야 한다. 한두 작품이 터졌다고 해서 다음 작품이 반드시 퀄리티가 좋다는 신뢰가 쌓인 단계는 아니기 때문이다"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