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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리뷰] '페기 구겐하임' 20세기 미술史가 된 여인

이재훈 기자

기사입력 2017-02-08 15:12



파블로 피카소, 막스 에른스트, 잭슨 폴락, 마르셀 뒤샹, 살바도르 달리, 바실리 칸딘스키...

교과서를 수놓는 현대 미술 거장들과 씨줄 날줄처럼 엮인 이름이 있다. '페기 구겐하임'(1898~1979). 미술에 얕은 관심이 있다면 구겐하임가의 전설적인 콜렉터 정도로 기억하는 여인이다.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막대한 부를 물려받은 페기는 자유분방한 유년기와 한번의 결혼 실패를 겪은 뒤 내재된 예술가의 자아를 실현한다. 돈을 통해 실력파를 발굴하고 작품을 사들였고, 그의 방대한 콜렉션은 구겐하임 박물관의 중요한 일부가 돼 전세계의 사랑을 받고 있다.

9일 개봉하는 다큐멘터리 영화 '페기 구겐하임 : 아트 애딕트'(리사 이모르디노 브릴랜드 감독)은 페기의 생전 미공개 인터뷰와 주변 인물들의 증언을 통해 그 삶의 속살을 파헤치면서, 단순히 부호였던 페기가 어떻게 20세기 미술에 기여했는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영화는 페기의 삶을 통해 보는 20세기 미술의 향연이자 눈으로 보는 전시회다. 낡은 흑백 영상에 담긴 거장들과 그들의 작업 모습, 문외한도 한번쯤 봤을 법한 명화들은 페기가 그랬듯 마니아 뿐 아니라 일반 애호가들의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켜줄 만하다. 마치 전시회같은 영상에 페기의 사생활이 끼어들면서 다큐는 서사성을 띤다.

"어떤 상대도 내가 원하면 하룻밤을 자고야 말았다." 지적 호기심과 함께 페기가 예술가를 움직인 동인은 성적 욕구였다. 그는 이미 50년대 발간한 자서전에서 '두 번째 남편인 에른스트 외에 많은 미술가와 동침을 했다'고 고백한 바 있는데, 영화 속 인터뷰에서 자서전 리스트에 올리지 않은 이름들을 추가로 말한다. 종합하면 20세기 초 활약했던 근대 미술가들을 망라한다. 말년에 페기는 솔직한 고백 때문에 호사가들의 손가락질을 받았지만 숱한 스캔들과 염문이 미술가들의 영감을 자극했음 분명하다.

중세 이탈리아 메디치 가문은 2세기에 걸쳐 르네상스 예술을 일으켰다. 페기는 오롯이 개인으로서 열정과 부를 쏟아부으며 예술가들의 뮤즈가 됐고 20세기 메디치가 됐다. "그가 없었다면 20세기 현대 미술이 오늘날과 같이 풍성할 수 있었을까" '페기 구겐하임 : 아트 애딕트'은 왜 미술사가들이 페기의 존재감을 비중있게 다루고 있는지 알려준다.

상영시간은 105분, 9일부터 서울 CGV명동역 씨네라이브러리, CGV대학로, CGV신촌아트레온에서 상영한다. sisyphe@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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