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조지영 기자] 가히 충무로 최고의 보석임을 다시 한번 입증한 배우 천우희. 담백해서 더욱 빛났던 시각장애 연기가 또 한번 관객을 감동의 순간으로 빠트린다.
지난해 개봉한 미스터리 스릴러 영화 '곡성'(나홍진 감독)으로 국내는 물론 전 세계 관객을 사로잡은 천우희. 그가 올해엔 감성 판타지 영화 '어느날'(이윤기 감독, 인벤트스톤 제작)로 180도 캐릭터 변신에 성공, 봄 극장가를 찾은 것.
천우희는 혼수상태에 빠진 여자의 영혼을 보게 된 남자와 뜻밖의 사고로 영혼이 되어 세상을 처음 보게 된 여자가 서로 만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어느날'에서 교통사고로 식물인간이 된 시각장애인 단미소와 이런 단미소의 영혼을 동시에 연기했다.
병상에 누워 있는 미소, 그리고 이강수(김남길)를 마주치는 영혼 미소를 마치 1인 2역처럼 소화하며 캐릭터에 재미를 안겼다. 보는 이들의 안타까움을 절로 자아내는 식물인간 연기는 물론 처음으로 세상을 본 유쾌하고 발랄한 영혼을 연기한 천우희는 같은 듯 다른, 결이 다른 캐릭터 변주로 단조로운 스토리에 힘을 불어넣었다.
그간 천우희는 데뷔작인 '마더'(09, 봉준호 감독)에서 진태(진구)의 재수생 여자친구 미나로 파격적인 베드신에 도전해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냈고 이후에도 '써니'(11, 강형철 감독)에서 '본드녀' 상미로, '곡성'(16, 나홍진 감독)에서 '미스터리'한 무명으로 충무로 '센 캐릭터'를 도맡아왔다. 장르 불문, 캐릭터 불문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그는 덕분에 또래의 배우들과 확연히 다른 다양한, 그리고 폭넓은 필모그래피를 쌓을 수 있었던 것. 그런 천우희가 '어느날'에서는 긍정적이며 유쾌하고 털털한, 심지어 귀엽고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변화를 선사한 것. 그렇다고 뻔한, 흔한 판타지 여주인공은 아니었다. 천우희만의 매력이 담뿍 묻어난 새로운 색깔을 만들어냈다.
"이번 역할은 정말 '캐 발랄'한 연기를 하려고 노력했어요(웃음). 제가 처음 '어느날'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단미소는 눈물샘이 자극되는, 신파적인 느낌은 아니었고 대부분 인간적인 모습의 인물이라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밝은 모습도 있고 내면의 아픔도 있는 캐릭터인데, 그래서 단미소를 연기할 때 꼭 밝은 모습만 부각해서 연기를 해야 한다는 생각은 안 들었죠. 1부터 10까지 밝은 면만 보여주고 싶지 않았어요. 관객이 단미소의 밝음도 좋았지만 아픔도 이해할 수 있게 만들고 싶어요. 전 아픔도 있지만 씩씩하고 꿋꿋이 하려는 단미소가 더 좋았던 것. 같아요. 또 판타지 여자주인공의 이미지를 깨고 싶었어요. 특히 제가 단미소를 연기한다면 좀 더 저다운 모습이길 원했죠."
'어느날'에서 단미소는 참으로 천우희다운 인물이었다. 굳이 연기를 보는 것 같지 않은 편안함, 주변에 있을 법한 친근한 느낌이 단미소에게 묻어났다. 바로 천우희만의 힘이다. 특히 감탄을 자아내는 대목은 시각장애 연기. 분명 억지 신파를 내세울 수 있는 설정임에도 불구하고 자극적이거나 부담스럽지 않다. 담백하고 오히려 개운한 울림이 전해진다. 이러한 이유는 바로 천우희의 내공 덕분. 천우희는 시각장애인 역할을 과하지도, 그렇다고 부족하지도 않게 적정선을 유지하며 균형을 맞추는 데 성공했다. 상대의 심금을 쥐고 흔드는 천우희의 감성과 사실적인 표현이 '어느날'에 잔잔하게 녹여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천우희의 담백한 연기가 '어느날'을 한층 더 빛나게 만들어줬음을 입증한 셈이다.
"사실 배우로서 시각장애인이라는 설정만으로 걱정이 컸죠. 일단 연기 지도를 해준 시각장애인 선생님과 많은 대화를 나눴는데 있었는데, 개인적으로 느꼈던 부분은 그동안 내가 얼마나 많은 선입견과 고정관념에 갇혀 있는 사람이었는지 알게 됐어요. 편견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너무 많이 갇혀있는 사람이더라고요. 처음엔 흔히 생각하는 시각장애인에 대한 걸음걸이라든지 움직임, 시선 등을 떠올려 연구했고 장애로 겪는 불편한 생활에 초점을 맞추려고 했거든요. 그런데 아니었어요. 다시 반성하게 됐죠. 관객이 보기에 '흉내만 냈어'라는 평은 받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더 열심히 최선을 다해 노력하려 했죠. 물론 생각만큼 시각장애인 역을 한다는 게 쉽지 않았지만 최대한 단미소의 감정에서 다가가 연기하려 애썼어요(웃음). 공을 많이 들였는데 제가 봐도 인생 연기를 한 것 같은 느낌을 들더라고요. 하하."
스스로 자평할 정도로 '인생 연기'를 펼친 천우희. 영화를 보고 나면 과연 빈말은 아니라는 생각이 뇌리를 강하게 스친다. 모호한 메시지, 아쉬운 연출력이 흠인 '어느날'은 그럼에도 천우희 연기만큼은 그 어떤 작품보다 빛난 것. '명품 배우' 천우희의 '명품 연기'에 톡톡히 빚을 진 이윤기 감독이다.
한편, '어느날'은 천우희를 비롯해 김남길, 임화영이 가세했고 '남과 여'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 '멋진 하루'의 이윤기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오늘(5일) 개봉한다.
soulhn1220@sportschosun.com 사진=영화 '어느날' 스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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