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MBC '선을 넘는 녀석들 리턴즈(이하 '선녀들')' 14회에서는 러시아 우수리스크를 돌아보며 안중근 의사와 최재형 선생의 흔적을 찾는 '선녀들(설민석 전현무 유병재 김종민 최희서)의 모습이 방송됐다.
설민석은 안중근 의사의 몸에 북두칠성 모양의 점이 있어 아명이 '안응칠'이었다고 소개했다. 첫 사적지는 '페치카' 최재형의 기념관이었다. 최재형은 러시아 부부에게 입양돼 엄청난 재력가가 됐다. 하지만 현지에 대중목욕탕을 건립하는 등 그 부를 남들과 함께 누려 별명이 '페치카(난로)'가 된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는 조국을 잊지 못해 가시밭길로 갔다. 최재형의 딸 최올가씨에 따르면 당시 연해주에 머물던 안중근의 숙박부터 사격 연습을 도왔고, 그의 순국 이후에는 가족들도 돌봤다.
설민석은 안중근의 '동양평화론'과 이토 히로부미의 '극동평화론'을 소개하며 아시아(한중일)가 하나가 되어 서구에 맞서야한다는 맥락 자체는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설민석은 "이토 히로부미는 한국과 중국을 침략한 이유가 대동아공영권을 건설하기 위해서고, 그 중심에 일본이 있어야한다고 주장했다. 안중근은 아시아 3국이 균등한 상황에서 하나가 되어야지, 일본이 한국을 넘보거나 침략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비판했다"는 차이점도 전했다.
이어 "일본은 80년대에 아시아의 리더가 될 수 있었다. 전범국가 독일은 사과를 통해 선진국으로 갈 수 있었다. 총리가 바뀔 슌마다 거듭 사과를 한다"면서 "일본도 독일처럼 했어야했다. 총리가 와서 무릎 꿇고 (위안부)할머니들께 진정 어린 사과를 해야했다. 중국에도 난징대학살 같은 것에 대해 사과해야한다. 동아시아 3국이 평화롭게 지낼 기회를 일본이 놓쳤다"고 지적했다.
설민석은 최재형이 1920년 '4월 참변' 과정에서 총살당했다는 슬픈 최후도 전했다. 러시아 혁명 직후 볼셰비키(적군)가 일본군과 싸우기 시작하자, 일본군이 적군을 지지하던 독립운동가들을 학살한 사건이다.
설민석은 "가족들은 최재형에게 도망가라 했지만, 가족이 고문이라도 당할까봐 그는 떠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결국 최재형은 모진 고문 끝에 총살당했다. 설민석은 "일본군이 선생의 유해를 못 찾게 하려고, 그 땅을 평평하게 해놨다"며 유해조차 찾을 수 없는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최재형 선생의 순국 장소로 추정되는 곳은 그냥 황량항 흙바닥이었다. 설민석은 "가슴 속에 최재형 선생을 묻어두는 것이 소중한 것 같다"라고 강조했고, 최희서는 눈물을 흘렸다.
설민석은 "독립운동이 꼭 거창하지 않아도 된다. 나라를 위한 행동이 모두 독립운동"이라며, "이 방송을 보면서 댓글로 또 대화로 이런 분들을 있었다는 걸 알리는 것도 독립운동이다. 지금 우리가 독립운동가로서의 삶을 살고 있는가.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한편 녹화일인 10월 10일은 설민석의 호적상 생일이었다. '선녀들'은 설민석의 생일과 최희서의 결혼을 축하했다. 최희서는 "동반자와 함께 다시 시베리아 열차를 탔으면 좋겠다"는 소원을 빈 후 "나 지금 시베리아 횡단하고 있어. 여기서 많이 배우고 더 성공해서 서울에서 만나자. 꼭 다음에 같이 오자"며 애정 가득한 영상 편지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