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인터뷰①]'나의나라' 장혁 "야심가 아닌 인간 이방원 보여주고 싶었다"

김영록 기자

기사입력 2019-11-28 08:00


'나의나라' 장혁. 사진=ihq

[스포츠조선 김영록 기자]데뷔 23년차를 맞이한 배우 장혁이 또한번 자신만의 특별한 무게감을 뽐냈다. 장혁은 지난 23일 종영한 JTBC '나의나라'에서 인간 이방원의 고뇌를 담아냈다.

인터뷰에 임하는 장혁의 여유로운 미소에서 8개월여 촬영해온 작품을 끝마친 피로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모처럼 기른 장발에 대해 "차기작에도 그대로 쓰일 예정이라 자를 수가 없다"며 환하게 웃어보였다.

이방원은 아버지 이성계를 도와 조선을 세운 개국공신이자 세종의 아버지, 야심가이자 철혈의 군주로서 역사적으로 익히 잘 알려진 인물이다. 위화도 회군과 두 차례 왕자의 난을 중심으로 한 여말선초 교체기 또한 이미 한국 드라마와 영화사에서 수차례 변주됐다. 그중에는 '용의 눈물'을 비롯해 '대왕세종', '뿌리깊은나무', '정도전', '육룡이나르샤' 등 이미 대중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작품도 많다.

따라서 장혁에게 '나의나라'는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그로선 2015년 영화 '순수의시대'에 이어 생애 두번째 이방원 역이기도 했다. 드라마 '빛나거나 미치거나'에서 맡았던 고려 광종과도 흔히 비슷한 인물로 비교된다.

"야망 가득한 피의 군주가 아닌 감성적인 인간 이방원을 보여주고자 했어요. 사실 '순수의시대' 때 아쉬움이 많아서 언젠가 이방원 역을 다시 한번 해야지, 하는 생각은 늘 갖고 있었죠. '순수의시대'는 미인계에 초점이 맞춰지고, 이방원은 1차 왕자의 난이란 사건의 배경 느낌이었거든요. '나의나라' 이방원은 우선 무게감 있는 악역(안타고니스트)이고, 이야기 흐름의 중심에 있으니까 좀더 움직임이 자유롭고 시원한 부분이 있었죠."

'나의 나라'는 기본적으로 극중 이방원의 반란을 돕는 가상인물 서휘(양세종)와 남선호(우도환), 한희재(김설현)의 이야기다. 하지만 이방원(장혁)과 개국공신 남전(안내상), 이성계(김영철)의 입체적인 대립 구도는 정통 사극 못지 않은 존재감을 뽐냈다. 과거 이방원을 다룬 작품들 중 장혁의 눈에 띈 것은 자신이 출연했던 '뿌리깊은 나무'였다.

"아버지와의 대척점에 선 이방원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뿌리깊은나무'에서 백윤식 선배님이 이도(송중기)한테 '너도 한번 살아보거라' 말하는 장면이 있어요. 그 묘한 눈빛을 굉장히 인상적으로 봤었죠."

이성계 역을 맡은 배우 김영철도 '대왕세종'과 '장영실'을 통해 두 차례나 태종을 맡은 경험이 있다. 하지만 김영철은 장혁의 연기에 불필요한 영향을 끼칠까봐 작품에 대한 이야기도 거의 나누지 않았다고. 장혁은 두 사람의 연기 합에 대해 "'아이리스2' 때도 부자 관계로 함께 했었다"면서 "별 얘기 나누지 않아도 단숨에 실제 같은 감정에 몰입할 수 있다. 선배님이 몰아치는 감정의 폭을 받아서 그대로 쏟아내면 된다"고 설명했다. 연예계를 대표하는 연기파 배우들다운 얘기다.


'나의나라' 장혁. 사진=ihq

"가상의 인물들이 나오는 작품이긴 하지만, 역사적 캐릭터를 넘어선 표현은 설득력이 부족할 수 있어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왕자의 난이 어떻게 진행됐고, 정도전이나 이방간, 박포가 어떤 역할과 행동을 했는지 자세히 알고 있잖아요. 허구적인 이야기라고 너무 동떨어지게 가면 공감대 형성이 어렵죠. 새로운 이야기를 쌓아올리기보단, 기록에 맞춰 가되 그 이면에 담긴 감정을 새롭게 해석하고자 했죠. 이방원이 정말 이성적으로 '난 왕이 될 거야!'하고 생각했을까요? 어쩌면 그러지 않을 수 있었는데 상황에 맞춰, 휘몰아치는 감정에 휩쓸려 왕이 되어간 것은 아닐까. 기록으로 남아있을 뿐 우리가 직접 보고 느낀 게 아니기 때문에, 이방원의 속내를 담아내는데 집중했죠."

결과적으로 '나의 나라' 이방원은 장혁의 새로운 인생 캐릭터로 남았다. 서휘와 남선호를 끝까지 자신의 곁에 두려 하지만 끝내 두 사람 모두를 잃고, 아버지 이성계에게 거침없이 맞서는 이방원의 모습은 시청자들을 열광시켰다. 장혁은 "감정의 널뛰기가 심한 작품이다 보니 좋게 봐주시는 것 같아 감사하다"며 웃었다.

장혁은 "현장에 동년배라곤 저보다 세살 어린 태령(김재영) 밖에 없었다. 둘이 이야기를 참 많이 했다"며 뜻밖의 외로움도 고백했다. 문복 역의 인교진에 대해서는 "칼을 물고 코미디하는 친구"라고 호평했다. 그는 "우도환과 양세종, 설현 같은 젊은 배우들로부터 많이 배웠다"고 거듭 강조했다.

"제 평생에 가장 아쉬운 작품 중 하나가 '대망'이에요. 그런데 이 친구들은 '대망' 시절 저보다 한두살 위인데, 보여주는 준비성이나 깊이가 대단해요. 그 나이에 이렇게 밀도 있는 연기를 할줄 안다는게 놀라웠어요."

장혁이 꼽은 '나의 나라'의 명장면은 드라마 말미 이성계와의 문답이다. 장혁은 "김영철 선배님이 쏟아내는 감정에 절로 빠져들면서 휩쓸렸다"는 속내들 드러냈다.


'나의나라' 장혁. 사진=ihq
"왕으로서 답하랴, 아비로서 답할까? 첫째 여섯째 일곱째 여덟째는 이미 죽었고 다섯째인 네가 왕이 되겠구나, 하시는 장면이 있어요. 선배님이 그 대사를 치는데 감정을 여러번, 딱딱 끊어가요. 사실 자식이란게 안 아픈 손가락이 있나요. 왕가이다보니 이렇게 된 거죠. 이방원이 남선호와 닮았다는 대사는 원래 대본엔 없었는데, 제 생각에 이방원은 성숙하지 못했던 남선호 같다는 느낌을 받아서 현장에서 추가했죠."

장혁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드는 연기는 세자가 된 뒤 면류관을 집어던지는 모습이다. 이성계나 남전과는 달리, 이방원에게 옥좌는 '나의 나라'를 만들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는 점을 보여준다.

"상대편 적장의 목을 베서 휙 던지는 느낌을 보여주고자 했어요. 내 자리인데, 거기까지 가는 과정이 너무 길었고, 막상 닿고 보니 뭘 해야할지 알수 없는 거예요. 다. 버려진 자들을 만들지 않기 위해 칼을 들었는데, 현실은 서검(유오성)부터 서휘, 남선호까지 다 버렸잖아요. 영화 '졸업' 마지막에 결혼식장에서 도망쳐서 버스 안에 앉아서 어쩔 줄 모르는 두 사람처럼, 공허함이 차오르는, 어쩌면 애처롭기까지 한 이방원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이방원은 극중 이방원의 이미지를 더욱 날카롭게 담금질한 얼굴의 흉터에 대해서도 고백했다. 어디까지나 각본이 아닌 우연이었다는 것.

"운동하다가 잘못 부딪혀서 난 상처에요. 결코 일부러 의도된 건 아닌데, 막상 생기고 나니 캐릭터와 잘 어울리더라구요. '라이온킹'의 스카 느낌 나지 않나요?"

김영록 기자 lunarfly@sportschosun.com


▶사주로 알아보는 내 운명의 상대

▶눈으로 보는 동영상 뉴스 핫템

:) 당신이 좋아할만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