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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종합] 백명선 대표 "상상 이상의 '미나리' 열풍→윤여정 오스카 수상 확신"

조지영 기자

기사입력 2021-03-28 12:57


영화 '미나리' 수입사 판시네마 백명선 대표
필운동=최문영 기자 deer@sportschosun.com /2021.03.24/
[스포츠조선 조지영 기자] "뛰어난 셰프가 좋은 재료로 만든 소박하지만 훌륭한 요리를 그저 가져다 한국 관객에게 소개했을 뿐인데, 생각보다 더 많은 사랑을 받게 돼 저 역시 기뻐요." 올해 최고의 화제작 '미나리'(정이삭 감독)를 수입·배급한 백명선 판씨네마 대표는 미국의 작은 독립영화가 주는 변화의 바람을 가장 먼저 알아본 뛰어난 감각의 소유자다. 그동안 타고난 심미안으로 해외의 보석 같은 명작을 국내 관객에게 소개해 큰 흥행 성적을 거둔 그의 선택은 이번에도 역시나 틀리지 않았다.

백명선 대표는 2002년 개봉한 김기덕 감독의 '해안선' 투자와 함께 2003년 투자 및 제작사 판씨네마를 설립해 영화 사업을 본격화했다. 그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03, 김기덕 감독) 투자를 비롯해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03) 1호 투자자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고 이후 '주홍글씨'(04, 변혁 감독) '사생결단'(06, 최호 감독) '우아한 세계'(07, 한재림 감독)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08, 임순례 감독) 등 굵직한 한국 영화를 관장하는 '큰 손'으로 활약했다.

"원래 영화를 정말 좋아했다. 영화광이었다"라는 백명선 대표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과 '올드보이' 등 한국 영화 여러 작품에 투자를 시도했다. 특히 '올드보이'의 경우는 그 당시 모두가 반대했던 작품이었는데 과감하게 내가 첫 번째 투자로 나서 의미가 깊다. 여러 한국 영화를 거치다 보니 점점 영화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자리도 없고 또 2000년대를 지나서부터 한국 영화가 자기 복제 느낌이 많이 들더라. 투자하고 싶은 영화들이 생기지 않아 고민이 많았던 시기 해외 영화제와 마켓을 다니면서 해외 영화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슬금슬금 눈을 돌리다가 지금의 판씨네마가 됐다"고 머쓱하게 웃었다.


영화 '미나리' 수입사 판시네마 백명선 대표
필운동=최문영 기자 deer@sportschosun.com /2021.03.24/
권태를 느꼈던 한국 영화에서 벗어나 해외 영화 시장으로 눈을 돌린 첫 작품이 바로 2005년 개봉한 '추방된 사람들'(토니 갓리프 감독)이었다. 이후 백명선 대표는 아트, 예술 외화로 수입·배급을 이어가다 2008년 '트와일라잇'(캐서린 하드윅 감독)을 기점으로 '흥행 미다스'의 첫발을 디뎠다. '트와일라잇' 시리즈를 모두 성공시켰고 '노예 12년'(14, 스티브 맥퀸 감독) '비긴 어게인'(14, 존 카니 감독) '라라랜드'(16, 데이미언 셔젤 감독) 등 호평과 함께 중박 이상의 흥행 성적을 거뒀다. 특히 '비긴 어게인' '라라랜드' 두 작품은 저예산·비주류였던 음악 영화 장르임에도 300만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며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고 올해 '미나리'로 화제의 중심에 섰다.

백명선 대표는 "한 곳에서 오래 버티고 포기하지 않았더니 아주 가끔 좋은 결과도 생겼다. '비긴 어게인' '라라랜드'도 어느 정도 관객의 호응은 얻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우리가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사랑을 받았다. 덕분에 몇 년간 '비긴 어게인' 배급한 회사, '라라랜드' 수입사 등으로 불리며 근근이 먹고 살 수 있었다. 올해엔 운이 좋아 '미나리'를 국내 관객에게 소개할 수 있게 됐는데 모처럼 판씨네마 수식어가 바뀌어 재미있다. 지난해까지는 '라라랜드' 회사로 불렸는데 올해엔 '미나리' 배급사로 업그레이드됐다"고 재치를 드러냈다.

영화를 고르는 안목, 뛰어난 심미안을 가진 백명선 대표는 "영화를 수입해 배급하는 일은 옷을 고르거나 가구를 고르는 것과 비슷하다. 내게 쓸만하면서 남들과 조금 다른 독특한 매력이 있는지 따지는 편이다. 몇몇 사람들은 판씨네마가 아트 영화 배급 전문이라고 생각하기도 하는데 사실 나는 아트 영화보다 상업 영화를 정말 좋아한다. 일단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스토리가 있어야 하고 그 안에서 감독이 추구하는 자체적인 문법과 영화가 나아가는 계획, 방향과 맞아떨어져야 한다. 해외 필름 마켓에 가면 의외로 말이 안 되는 영화가 정말 많다. 그런 영화를 선택해서 국내 관객에게 소개한다는 건 정말 위험한 일이다. 요즘은 관객의 취향을 맞추기가 정말 어려운 시대인데 그럼에도 관객의 입장에서 많이 생각하려고 하고 그 안에서 대중적이면서 독창적인 영화를 발굴하려고 한다. 한마디로 가성비 갑, 영화를 찾아 국내에 소개하는데 '미나리'가 그 지점에서는 올해 최고의 선택이었다"고 밝혔다.


'미나리'는 1980년대 아메리칸드림을 쫓아 미국 아칸소주(州)의 농장으로 건너간 한인 가정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한국계 미국인 정이삭 감독이 부모님을 떠올리며 만든 자전적 이야기며 A24가 투자를 맡고 브래드 피트가 설립한 영화 제작사 플랜 B 엔터테인먼트가 제작한 미국 영화다.

백명선 대표는 지난해 2월 A24의 추천으로 '미나리'를 접하게 됐다. 국내에서는 알려지지 않은 한국계 미국 신예 감독, 저예산 독립영화, 한인 이민 1세대 이야기, 여기에 115분이라는 다소 긴 러닝타임을 가진 '미나리' 첫인상은 상당히 조심스러웠다고. 무엇보다 국내 관객이 이민자에 대한 이야기에 얼마나 호응을 해줄지 걱정이 컸다. 블록버스터도 살아남기 힘든 코로나19 시국의 극장가에 '미나리'는 여러모로 의문과 우려, 고민하게 만드는 제안이었다. 그런데 막상 '미나리'를 보고 난 뒤 이러한 우려와 걱정은 모두 사라졌다는 백명선 대표다.


"A24가 '미나리' 스크리너를 보내줘서 판씨네마 직원들과 다 같이 봤는데 다들 잔잔한 영화를 먹먹하게 봤다고 하더라. 심지어 시사 DCP(극장 상영 디지털 포맷) 작업을 하는 엔지니어조차 영화를 보면서 눈물을 흘렸다고 하더라. 그동안 어떤 영화에도 눈물을 흘리지 않던 남자 엔지니어인데도 말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미나리'를 보고 원초적인 느낌의 분위기가 좋았다. 광활한 아칸소 대지에 트레일러 하우스를 세팅한 모습이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여기에 이야기와 너무 잘 어울리는 음악까지 더해지니 스토리가 더욱 서사적으로 느껴졌다"고 설명했다.

이어 "저예산, 독립 영화라고 하는데 영화를 보고 나니 그런 생각이 안 들었다. 원래 독립 영화 자체가 저예산으로 촬영하는 경우가 많아서 전형적이고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는 경우가 많은데 '미나리'는 전혀 전형적이지 않았다. '이 영화를 반드시 사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의 실제 규모보다 더 큰 풍채를 가진 작품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영화의 힘, '미나리'를 통해 다시 느낀 셈이다"고 덧붙였다.

반전의 '미나리'를 관람 후 백명선 대표는 "오히려 '이렇게 한국적인 드라마를 가진 영화인데 어떻게 미국 관객에게 선보일 생각을 했지?'라며 미국 배급을 걱정할 정도였다. 그런데 또 '미나리'의 한국적인 정서가 비단 한국에서만 있는 게 아니라 알고 보면 전 세계적으로 통하는 가족애라는 느끼게 됐다. 남자 속옷을 홈웨어로 입고 쿠키를 구워주지 않는 할머니는 없지만 말이다. 각박한 80년대 삶 속 향수를 느끼게 해주는 포인트들이 곳곳에 있었다"고 답했다.

또한 "국내 관객도 아직 '미나리'가 한국 영화라고 느끼는 분도 있는데 어쩌면 당연한 반응이다. 정이삭 감독, 스티븐 연의 뿌리가 한국이지 않나? 한국 사람의 마음과 눈으로 작품에 임했고 또 '국민 배우' 윤여정과 한예리가 참여했기 때문에 더 한국 영화라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 정이삭 감독이 부모님의 삶을 꿰뚫고 진정성 있는 시선으로 영화를 만들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미나리'에서 아빠 제이콥(스티븐 연)이 아들 데이빗(앨런 김)에게 '우리 한국 사람들은 머리를 써'라는 대사가 있지 않나? 정이삭 감독은 한국 사람의 기발한 머리와 따뜻한 마음으로 영화를 만든 사람이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영화 '미나리' 수입사 판시네마 백명선 대표
필운동=최문영 기자 deer@sportschosun.com /2021.03.24/
지난 3일 국내에 개봉한 '미나리'는 19일 만에 70만 관객을 돌파하며 장기 흥행 중이다. 수입·배급 흥행 기준 30만 돌파 목표를 이미 달성한 지 오래고 이제 기적의 100만 터치다운을 앞두고 있다. 전 세계 98관왕, 199개 노미네이트라는 역대급 기록을 세운 '미나리'는 오는 4월 25일(현지 시각) 열리는 제93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크리스티나 오), 감독상(정이삭), 남우주연상(스티븐 연), 여우조연상(윤여정), 각본상(정이삭), 음악상(에밀 모세리)까지 무려 6개 부문 후보에 지명돼 화제성은 계속될 전망이다. 특히 국내에서는 한국 배우 최초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후보에 이름을 올린 윤여정의 수상에 기대가 큰 상황.

백명선 대표는 "아카데미는 정말 미국 제작사는 물론 감독, 배우들 모두 어떤 결과를 받을지 알 수가 없다. 후보를 선정하는 심사 과정부터 상당히 복잡하고 후보 오르는 것도 정말 어려운 일이라고 하더라. 지난해부터 '미나리'에 대한 외신의 호평이 이어지면서 기대가 컸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아카데미에 앞서 열린 제78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미나리'가 미국 영화임에도 외국어 영화로 분류돼 외면받았다. 그래서 아카데미 후보를 예측하기 더욱 어려웠는데 무려 6개 부문 후보에 지명됐다. 정말 대단한 기록이다"고 말했다.

'미나리' 외에도 내달 '더 파더'(플로리안 젤러 감독)의 국내 배급을 준비 중인 백명선 대표는 아카데미를 앞두고 행복하면서도 난감한 상황이 펼쳐지기도 했다. '더 파더' 역시 올해 아카데미에서 작품상, 남우주연상, 여우주연상, 각색상, 미술상, 편집상 후보에 올라 '미나리'와 박빙의 경쟁을 펼치게 된 것. 특히 국내에서 많은 기대가 쏠린 여우조연상에 윤여정과 올리비아 콜맨이 함께 이름을 올려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

그는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라는 속담처럼 생각 같아서는 내가 배급하는 두 작품이 모두 좋은 결과를 얻길 바란다. 하지만 팔은 안으로 굽는 법. 올리비아 콜맨은 2년 전 아카데미에서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19,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으로 여우주연상을 받지 않았나? 올해엔 윤여정 선생에게 양보했으면 좋겠다. 아카데미 여우조연상만큼은 윤여정 선생이 받았으면 좋겠고 받을 거라 확신한다. 가장 응원하고 싶은 올해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후보다"고 지지했다.

조지영 기자 soulhn1220@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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