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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소설가 장자샹 "2.28시위 대만 정체성과 깊이 연관"

기사입력 2025-06-19 16:01

대만의 작가 장자샹이 19일 서울 강남구의 한 호텔 회의실에서 '밤의 신이 내려온다' 출간 기념 인터뷰를 하고 있다. [민음사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대만의 작가 장자샹이 19일 서울 강남구의 한 호텔 회의실에서 '밤의 신이 내려온다' 출간 기념 인터뷰를 하고 있다. [민음사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밤의 신이 내려온다'를 펴낸 대만의 작가 장자샹이 19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민음사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금전상 받은 신예 작가 겸 밴드 보컬…서울국제도서전 찾아

첫 소설 '밤의 신이 내려온다' 출간…"대만어로 소설·음악 창작"

(서울=연합뉴스) 황재하 기자 = '대만 사람들은 어릴 때 가정에서 모어를 배우지만, 교육기관에선 오직 표준어만 가르치죠. 그래서 공부하면 할수록 모어를 잊게 돼요. 그래서 저는 소설에서 '우리도 정체성이 있다'는 걸 말하고 싶었습니다."

대만에는 중국 남부 지방의 방언인 민남어와 네덜란드어, 대만 원주민어 등이 혼합된 복합적인 언어 '대만어'가 존재하지만, 표준어인 중국어에 밀려 공식 석상에선 거의 쓰이지 않는다.

둥화대에서 문예창작을 전공한 장자샹(32) 역시 또래 대다수 대만인과 마찬가지로 대만어를 잘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보컬인 인디밴드 '좡커런'을 결성해 2022년 발표한 앨범 '야관순장'(夜官巡場) 가사와 이듬해 펴낸 동명 소설을 모두 대만어로 썼다.

이 소설은 최근 한국에도 '밤의 신이 내려온다'(원제 야관순장. 민음사)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간됐다. 서울국제도서전 참석 차 처음으로 한국을 찾은 장자샹은 19일 서울 강남구 한 호텔에서 기자들과 만나 소설과 음악에 관해 이야기했다.

그는 "대만에는 대만어를 쓰는 사람도 있고, 베트남어를 쓰는 이주민도 있으나 공교육을 받는 과정에서 차츰 모어를 상실한다"며 "고향과 멀어지면 '우리가 어디서 왔는가'라는 근본과도 멀어지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대만어로 쓴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고향의 모습과 소리를 찾고 싶었다"며 "문학 창작이나 음악을 만들 때도 전체 시간의 70% 정도를 고향의 원래 모습이 어땠는지 자료를 찾는 데 쓰고 있다"고 말했다.

장자샹의 데뷔작인 장편소설 '밤의 신이 내려온다'는 대만의 시골 자이현 민슝에 사는 어린 소년이 귀신을 보는 또래 소녀 '저우메이후이'와 함께 영적인 사건들을 겪는 이야기다.

밤이 되면 '야신'(夜神)이 억울한 사연을 품고 죽어간 초라한 귀신들을 데리고 세상에 나타난다. 소외된 귀신들 이야기 속에는 대만의 역사적 아픔인 '2.28 시위' 피해자들의 목소리도 포함돼 있다.

2.28 시위는 1947년 2월 28일 '대만독립'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는 대만인들을 중국 본토에서 건너온 장제스 정부가 무력 진압한 사건이다.

장자샹은 "2.28은 단순히 하나의 사건이라기보다 오늘날까지 대만 사회에 영향을 미치는 역사적인 사건으로, 한 시대의 개성과 정체성의 변화까지 일으켰다"고 짚었다.

그는 "너무나 고통스러운 기억이어서 대부분 가정에서 2.28 사건 이야기를 꺼내지 않고, 그래서 제게도 어린 시절까지는 낯설게 느껴졌다"며 "대만의 정체성에 관해 찾아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고, 그 과정에서 2.28 시위가 대만의 정체성과 깊이 연관돼 있다고 느꼈다"고 설명했다.

장자샹은 또 소설에 토속 신앙과 귀신 이야기를 다룬 데 대해선 "대만에는 예전부터 귀신과 관련한 이야기가 많고 그에 관한 이야기를 정리하는 작업도 꾸준히 이뤄졌다"며 "귀신이란 소재는 대만의 중요한 정체성을 이루는 한 요소라고도 볼 수 있다"고 했다.

'밤의 신이 내려온다'는 2023년 대만에서 권위 있는 문학상인 금전상을 받았고, 신예 작가인 장자샹은 대만 문학계에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장자샹은 소설가이면서 밴드 보컬로도 활동하고 있다. 데뷔 소설과 앨범 제목이 동일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그의 소설과 음악은 서로 깊이 연관돼 있다.

장자샹은 "집필을 시작하는 동시에 노래를 만드는데, 음악과 소설이 서로 작용하면서 계속 완성에 가까워진다"며 "밴드 멤버들과 음악의 멜로디에 관해 서로 논의하긴 하지만 제가 생각한 주제나 방향 자체를 바꾸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차기작도 음악과 소설이 함께 나올 예정이다. '밤의 신이 내려온다'와 마찬가지로 귀신이 등장하며, 도시로 떠나갔던 주인공이 자기 고향으로 돌아오면서 벌어지는 일을 다룬다.

작사·작곡과 소설 집필을 병행하는 특이점을 살려 장자샹은 이번 서울국제도서전에서 짧은 공연을 선보였다. 그는 "도서전은 시설이나 장비 등 여러 면에서 공연에 적합하지 않아 걱정이 많았지만, 다행히 공연이 잘 끝나서 한숨을 돌렸다"고 말했다.

한국이 첫 방문인 그는 "한국 도서전은 대만과 다르게 전체적으로 통일감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했다. 그는 "한국 드라마나 가요는 대만에서 인기가 대단하다"며 "한국 문화 콘텐츠는 고유한 스타일을 갖고 있으면서도 세계적으로 유행한다는 점에서 대단하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jaeh@yna.co.kr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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