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6·25 75년] ④ "전우 776명 묻으며 흘린 피눈물…아직도 괴로워"

기사입력 2025-06-22 08:29

[촬영 양지웅]
[촬영 양지웅]
[촬영 양지웅]
[촬영 양지웅]
[촬영 양지웅]

"휴전 때까지 776명의 전우를 가슴에 묻으며 피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때를 생각하면 여전히 괴롭습니다."

해병 7기로 6·25전쟁을 온몸으로 겪어낸 홍종수(94) 옹의 눈시울은 70여년 전 그때를 회상하자 금세 붉어졌다.

붉은색 해병대 모자를 쓴 노병은 18살이 되던 해인 1951년 4월 2일 해병대에 자원입대했다.

8남매 중 막내인 그는 전남 해남군 화원면 성산리에 살고 있었는데, 당시 경찰이었던 형님을 찾으러 집에 들이닥친 인민군들이 가족을 위협하는 모습을 보며 '조국을 구해야 한다'는 마음을 먹었던 까닭이다.

당시 나이가 어려 입대를 위해선 가족의 동의가 필요했었고, 구국의 열망으로 가득 찬 그는 부친의 도장을 훔쳐 동의서를 제출했다.

두달가량 신병 훈련을 받고 투입된 전장은 양구 도솔산(해발 1천148m)이었다.

당시 해병대 1연대는 미 해병 제5연대로부터 임무를 넘겨받고 도솔산을 확보하기 위해 북한군 제5군단 12사단, 32사단과 혈투를 벌였다.

양구와 인제 사이에 있는 험준한 지형의 도솔산은 주변에 가칠봉(1천142m)·대암산(1천314m) 등이 연결된 요충지였다.

북한군 12사단과 32사단이 이곳을 방어해 난공불락의 요새로 여겨졌다.

이곳에서 1951년 6월 4일부터 6월 20일까지 한 치의 땅이라도 더 확보하기 위해 17일간 치열한 고지전이 이어졌다.

신병이었던 홍 옹은 도솔산 전투의 시작부터 끝까지 오롯이 맨몸으로 겪어냈다.

당시 도솔산 일대에는 북한군 4천200여명이 중무장한 채 진지를 구축하고 국군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들은 많은 지뢰를 중턱부터 매설하고 많은 수류탄과 박격포, 자동화기를 사용해 우리 군의 진격에 완강하게 맞섰다.

이에 해병대 제1연대는 6월 11일 조명탄과 화력의 지원이 없는 암흑상태에서 야간 기습공격을 개시해 먼저 대암산을 차지했다.

최종 목표인 도솔산 수복은 6월 18일에 시작했다.

해병대는 항공·포사격 지원을 받고 오전 9시께 공격을 시작해 이튿날 자정께 동쪽 능선을 따라 야간 공격을 실시, 오전 5시 30분 도솔산 정상을 점령했다.

이어 이미 점령한 도솔산 정상에 집결한 해병대는 적들을 추월 공격하면서 전투를 마무리 지었다.

17일간의 전투에서 해병대는 적 2천263명을 사살하고 44명을 포로로 잡았다. 아군 피해는 전사 123명, 부상 582명, 행방불명 11명 등이었다.

홍 옹은 "전투에 이겼지만, 당시 기억은 참혹하다"며 "적 총탄에 바로 옆 전우가 쓰러져 죽어가면서 '나 좀 살려달라'는 눈빛을 보냈지만, 그저 진격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입대 전에는 닭도 잡지 못했는데 쓰러진 전우를 보니 두려움이 사라졌다"며 "혈전 끝에 24개 고지를 탈환하고 '해병대 만세, 대한민국 만세'를 외치던 소리가 아직 귓가에 쟁쟁하다"고 회고했다.

인터뷰 자리에 함께한 해병 7기 김영호(96) 옹은 "도솔산에서 관측 작전을 수행하며 관측소를 옮겨 다닐 때마다 험준한 지형에 미끄러지기 일쑤였고, 적의 포탄 앞에 고비를 마주한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또 "13번 목표 지점을 악전고투 끝에 점령할 때 2소대장이었던 김문성 소위가 머리에 총을 맞고 전사한 것이 너무 가슴 아팠다"며 "목표 지점을 향해 피땀을 뒤집어쓰고 돌진한 선후배, 동기 전우들을 잊을 수 없다"고 덧붙였다.

도솔산은 '무적 해병'의 신화가 시작한 곳이다.

이승만 대통령은 1951년 8월 25일 해병부대를 순시한 자리에서 일개 연대 병력만으로 적 2개 사단을 물리친 것은 경탄할만한 공헌이라며 무적해병(無敵海兵)이라는 친필 휘호를 수여한 까닭이다.

이에 해병대는 양구군과 함께 매년 6월 도솔산 전투 전승 기념식을 이어가고 있다.

주일석 해병대 사령관은 "우리 후배들이 무적 해병이라는 자부심과 긍지를 가질 수 있도록 해주신 해병대 참전용사 선배님들, 그리고 자유민주주의국가에서 살 수 있도록 피와 땀을 흘려주신 6·25 참전용사 선배님들, 진정으로 여러분들이 대한민국의 영웅"이라고 말했다.

yangdoo@yna.co.kr

<연합뉴스>

:) 당신이 좋아할만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