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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이 젊었을 때부터 귀가 안 들릴 때까지의 시기예요. 다들 젊었을 때는 일상이 아름답다가 요즘에는 일이 잘 안 풀리실 수도 있고 그렇잖아요. 그걸 다 겪은 사람의 고백이랄까, 베토벤에 대해 궁금하신 분들이 오시면 괜찮은 시간이 될 것 같습니다." (박수현)
2015년 요제프 하이든 국제 실내악 콩쿠르에서 우승하고 2016년 제네바 국제 콩쿠르에서 입상하는 등 국내 대표 현악사중주단으로 자리 잡은 아벨 콰르텟이 베토벤 현악사중주 전곡 연주에 나선다. 2023년 하이든의 곡으로 구성한 음반 발매, 지난해 멘델스존 현악사중주 전곡 연주에 이은 새로운 도전이다.
베토벤 현악 사중주는 대푸가를 포함해 총 17곡으로 구성됐다. 베토벤이 20대부터 말년인 50대까지 인생에 걸쳐 작곡한 곡들로 크게 초기, 중기, 후기로 나뉜다. 현악사중주단이라면 으레 거쳐야 관문과 같은 레퍼토리로 꼽힌다.
윤은솔은 "10주년이 지난 시점에서 음반도 발매됐고 한 번쯤 도전해보면 좋을 것 같았다"며 "저희가 음악적으로 더 성장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고 악성(樂聖)의 인생이 투영된 곡을 연주하기로 한 계기를 밝혔다.
연주자들은 이번 공연이 베토벤의 음악적 변화를 한 눈에 볼 수 있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내년 2월까지 다섯 차례에 걸쳐 진행되는 전곡 연주 프로그램은 시간순이 아닌, 초기, 중기, 후기에서 각 곡을 뽑아 구성했다. 첫 번째 공연은 다음 달 5일 예술의전당 IBK기업은행챔버홀에서 열리며, 1번과 6번(초기), 11번(중기), 12번(후기)으로 꾸려진다.
윤은솔은 "회차마다 초기, 중기, 후기의 곡들을 섞어 배치했다"며 "(베토벤의) 음악이 어떻게 발전해왔는지, 이 사람이 어떤 어려움을 겪게 되면서 진실함이 드러나는지 봐주셨으면 좋겠다"고 설명했다.
베토벤의 현악사중주는 하이든과 모차르트의 영향을 받아 초기에는 고전 양식이 나타나다가 점점 베토벤만의 색깔이 짙어지는 흐름을 띤다. 특히 귀가 안 들리게 된 시기 작곡한 후기의 곡들은 현악사중주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소리가 들리지 않아 그의 내면이 깊게 반영된 곡들은 낭만주의를 여는 디딤돌이 되기도 했다.
조형준은 "리허설에서도 소리를 듣지 못하고 악보와 활의 분위기를 보면서 얘기했던 그 시기부터는 베토벤의 음악이 우주가 되는 것 같다"며 "역경과 고난을 넘어선 음악이 후기에서 더 확실히 드러난다. (현악사중주의) 길을 닦은 하이든의 곡이나 멘델스존의 인기 있는 음악과는 다른, 인생에 걸친 곡"이라고 강조했다.
박수현은 최근 몸이 좋지 않아 소리가 잘 안 들리는 경험을 한 이후 베토벤의 내면을 더 잘 이해하게 됐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소리를 듣지 못한 베토벤이 '포르테시시모'('매우 세게'로 연주)와 같이 극단적으로 표현한 부분을 관객에게 전달해보겠다고 했다.
박수현은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아) 시끄러운 식당을 가도 제가 먹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이 때문에 제 안에서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됐다"며 "귀가 들리지 않는 베토벤이 악보에 적은 그대로 이해하면서 연주해보려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아울러 "작곡가가 성숙해지면서 나타나는 곡의 특징은 멜로디가 자극적이지 않다는 점"이라며 "연주할수록 (12번은) 완벽한 구조물이라고 깨달았다. 공부해 구조를 이해하시면 더 재밌을 것"이라고 감상 포인트도 일러줬다.
아벨 콰르텟은 2013년 독일에서 결성돼 올해로 13년 차를 맞았다. 윤은솔과 조형준이 창단 이후 지금까지 함께했고 2016년 박수현, 2023년 비올리스트 박하문(26)이 합류했다. 솔리스트, 오케스트라에 비해 주목도가 덜한 국내 현악사중주계를 이들은 10년 넘게 지켜왔다.
연주자들은 현악사중주의 가장 큰 매력으로 네 명이 일사불란하게 하나가 돼 호흡을 맞추는 과정을 꼽았다. 오케스트라와 달리 지휘자 없이 서로의 눈빛을 보고 하나의 곡을 완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히브리어로 숨이라는 의미의 아벨(Abel)은 하나의 호흡으로 연주하겠다는 의지가 담긴 팀 이름이다.
조형준은 "지휘자 없이 지휘자가 있는 것처럼 일사불란한 팀을 만드는 게 묘미"라며 "실내악과 클래식을 모르는 분들도 저희가 사인(sign)과 숨을 주고받는 과정을 눈여겨보시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수현은 "클래식 분야에서 천재 소리를 들을 정도의 사람들이 최고의 능력을 발휘한 작품은 대부분 사중주"라며 "음악의 깊은 맛을 경험하고 싶다면 사중주를 들어달라"고 했다.
그는 일본의 거장 지휘자 고(故) 오자와 세이지(小澤征爾)가 현악사중주 공부를 강조했다는 일화도 소개했다.
아벨 콰르텟은 음악 인생에 있어 현재가 청년기에 불과하다며 여러 도전을 해나가겠다는 의지를 비쳤다. 베토벤 현악사중주 전곡 연주도 이번 한 번에 그치지는 않을 것이라며 기회가 된다면 음반으로도 남기고 싶다고 했다.
조형준은 "(그간) 각자의 인생들이 달라졌다. 인생에 대한 공감과 이해를 음악에 녹여내야 더 성숙한 음악이 되지 않을까 싶다"며 "저희가 젊었을 때 연주한 베토벤 현악사중주를 음반으로 남기고 나중에 연주하는 베토벤 현악사중주와 비교해 들으면 좋을 것 같다"고 얘기했다.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고 음악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는 참고가 되는 연주를 하고 싶다고도 했다.
"관객과 학생들이 어떤 작곡가를 공부한다고 했을 때 기준점이나 참고가 될 수 있게 해석하는 팀이었으면 좋겠어요. 힘든 사람들에게는 힐링, 공부하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영양분이 됐으면 합니다." (박수현)
encounter24@yna.co.kr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