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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개방이 언론계 질적 저하 초래…국정에 매번 걸림돌
노무현 정부의 기자실 개방으로 청와대 출입 매체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언론인인지 업자인지 헷갈리는 사람들이 기자 출입증을 갖고 청와대로 밀려들었다. 지역 건설업체가 언론사를 인수한 뒤 청와대 기자를 통해 대놓고 인허가 로비와 인사 민원을 하는 폐단이 일어났다.
민원이 안 먹히면 지역 차별이라며 여론을 호도해 국정 운영에 부담을 줬다. "조·중·동이 틀어쥐고 왜곡하는 알권리를 국민에게 돌려주겠다"며 시작한 언론개혁이 되레 전체 언론에 대한 국민의 혐오를 부추기고 대통령의 지지율을 갉아먹는 자충수가 된 셈이다.
언론 개방이 낳은 또 다른 문제는 대통령의 메시지 왜곡이었다. 노 전 대통령은 취임과 함께 기자회견 진행 방식을 무작위 지명, 이른바 로또식으로 바꿨지만, 국정과 거리가 먼 민원성 질문이 이어져 회견 몰입도를 떨어트리고 말실수가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등 역효과를 냈다.
청와대는 얼마 안가 기자회견을 사전 조율이 가미된 방식으로 슬그머니 되돌렸다. 노 전 대통령은 조지 W 부시 대통령과의 백악관 정상회담을 앞두고는 동행한 한국 기자들에게 질문 내용을 전달하기도 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3일 취임 한 달만에 첫 기자회견을 했다. 이 대통령의 차분하고 호소력 있는 메시지 전달력이 돋보였는데, 정작 기자들의 질문은 대부분 핵심을 비켜가 아쉬움을 준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대화 속도 논란,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의 전승절 방중 초청 문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의 남북정상회담 의사, 윤석열·김건희 의혹 특검, 입시와 교육개혁 등 국민이 가장 듣고 싶어 하는 현안에 대한 질문은 빠트리거나 대충 거론하고 넘어갔다.
로또식은 매체 파워 상관없이 질문권을 공평하게 주겠다는 취지이지만, 현실적으로 질문 내용이 기자 개인의 관심사와 회사 이해관계에 치우쳐 국민 다수와 괴리돼 있다는 근본적 한계를 지니고 있다. 형식은 로또식을 유지하되 사전 조율을 곁들여 국민의 알권리를 보장하자는 의견이 줄기차게 나오는 이유다.
문재인 정부가 로또식을 다시 도입한 뒤 대통령실 출입 기자가 여론의 '욕받이'가 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문 전 대통령에게 '근거 없는 자신감' 운운한 기자가, 윤석열 전 대통령에겐 채상병 순직을 언급하면서 그날 행적은 일절 묻지 않은 기자가 국민의 부아를 돋운 바 있다.
이제라도 언론은 대통령 회견을 어떻게 진행하는 것이 국익과 국민 눈높이에 맞는 것인지 깊이 고민하고 대안을 내놔야 한다. '정권과 짜고치는 고스톱'이란 뒷말보다 '기자 수준이 왜 저래' 하며 탄식하는 국민의 시선을 더 두려워한다면 못할 게 없다.
jahn@yna.co.kr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