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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말저런글] '협력정치=협치'는 신기루입니다

기사입력 2025-08-19 08:06

[촬영 고형규]


정당들 사이에 흔하게 쓰이는 말이 협치(協治)입니다. 협력정치의 준말로 봅니다. 새천년 들어 쓰임이 늘었다고 합니다. 누가 최초로 썼는지 알 길은 없지만요. 안다면 그이에게 묻고 싶습니다. 왜 이런 말로 환상을 사람들에게 심어주느냐고요? 본래, 협치는 거버넌스(governance)의 번역어입니다. 여러 주체가 협력하여 문제를 해결하고 정책을 결정하며 집행, 평가하는 운영 방식이나 체계를 뜻합니다. 민간과 정부가 함께 정책을 결정하고 실행하는 민관협치(民官協治)를 강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정부 주도의 일방적 통치와 대비되는 개념으로 활용됩니다.

하여, 질문은 몇 가지로 요약됩니다. 거버넌스 번역어와 무관하게 고작 네 음절 쓰는 게 힘들어 맥락도 없이 협치는 협력정치의 준말이야 하고서 이를 쓰기 시작했단 말인가? 백번을 양보하여 편의적인 약어를 인정한대도 그 낱말이 별도로 있어야 할 만큼 의미 있는 개념을 품고 있는가? 결정적으로 그것이 이룰 만한 가치를 가졌으며 이뤄야만 절대 미덕인 성질의 것이긴 한가? 도발하듯 묻는 것은 그이에게 하는 질문이 아니어서입니다. 그이를 찾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자답하기 위한 자문들입니다.



말은 길과 같습니다. 가면 길 되고 쓰면 말 됩니다. 협력정치의 준말이 협치라는 것, 일단 알겠습니다. 단, 거기까지입니다. 거버넌스 번역어 협치는 어찌합니까. 가장 큰 건 따로 써야 할 만큼 개념어로서 의미가 있는지입니다. 적절한지도 의문입니다. 협치와 달리 대화와 타협의 정치라는 근본 있는 개념이 이미 있습니다. 그게 안 되면 다수결로 문제를 푸는 게 현대의 자유주의적, 대의제적 민주주의의 운영원리입니다. 협력은 '힘을 합하여 돕는다'는 뜻입니다. 모든 정파가 이견 없거나 적은 사안에 대해서만 예외로 할 수 있는 게 협치일 겁니다. 왜 협치 않느냐고 되뇌는 것은 민주주의와 안 어울립니다. 길가에 차이는 빈 깡통처럼 막 쓰는 단어 협치는, 신기루(蜃氣樓)입니다. 대기 속에서 빛의 굴절 현상에 의하여 공중이나 땅 위에 무엇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현상 / 공중에 떠 있는 누각이라는 뜻으로, 아무런 근거나 토대가 없는 사물이나 생각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 홀연히 나타나 짧은 시간 동안 유지되다가 사라지는 아름답고 환상적인 일이나 현상 따위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이 셋이 신기루의 사전적 정의이니까요. (서울=연합뉴스, 고형규 기자, uni@yna.co.kr)

※ 이 글은 다음의 자료를 참고하여 작성했습니다.

1. YTN 뉴스말모이 협치 (2022.04.13. 오전 10:30) - https://www.ytn.co.kr/replay/view.php?idx=49&key=202204131030548322

2.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민관협치(民官協治) -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78601

3. 표준국어대사전

4. 고려대한국어대사전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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