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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24일 모로코 수도 라바트에서 열린 마와진(Mawazine) 페스티벌에 케이팝 걸그룹 최초로 에스파(AESPA)가 무대에 섰다. 이 행사는 매년 모로코에서 개최되는 세계적인 음악 페스티벌로 관객 수로는 세계 최대 축제로 꼽힌다.
헤드라이너(간판 출연자)로 무대에 오른 에스파는 '위플래시'(Whiplash)부터 '슈퍼노바'(Supernova)까지 약 1시간 동안 11곡을 선보였다. 유튜브에 공개된 공식 영상과 관객들이 촬영한 현장 영상(직캠)을 보면 이곳이 라바트인지 서울인지 분간이 되지 않을 정도로 열광적이었다. 팬들의 떼창과 앙코르를 외치는 목소리는 열광적인 공연 무대 분위기를 느끼게 했다. 에스파는 그간 미국 코첼라(Coachella)와 일본 지엠오 소닉(GMO SONIC) 무대에 섰다. 이번 공연은 지난해 케이팝 그룹 최초로 마와진 무대에 올랐던 ATEEZ(에이티즈)에 이어 아프리카 대륙에 진출해 저변을 확대하는 새로운 신호탄이라 할 수 있다.
사실 널리 알려지진 않았지만 이보다 앞서 아프리카 무대에 오른 한국 가수들이 있다. 모로코와 함께 북아프리카에 위치한 알제리와 리비아 사이의 작은 나라인 튀니지가 십여 년 전 그 포문을 열었다.
2013년 당시 데뷔 2년 차였던 팝 밴드 루나플라이(Lunafly)가 주튀니지대사관 주최 '케이팝 월드 페스티벌' 예선 무대에서 LG전자 후원으로 공연했다. 이듬해에는 남성 솔로 가수 다빗(Dabit)이 무대를 채웠다.
한국 정부와 기업이 나선 덕분에 방탄소년단(BTS) 등장 이전부터 한류에 올라타 있던 튀니지 케이팝 팬들은 일찍이 공연 문화를 체험할 수 있었다. 그 시기 튀니지에 머물렀던 필자는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 하는 10대와 20대 학생들을 대상으로 서너 달간 한국어 수업을 진행했다. 이때는 세종학당이 설립되기 전이었다. 또 2015년 3월과 6월 두 차례에 걸친 극단주의 '이슬람국가'(IS)의 테러로 인해 한국국제협력단(KOICA) 한국어 교육 단원도 순차적으로 철수하던 때였다. 이들은 그저 한국 대중문화에 관심을 가지고 드라마와 케이팝을 넘어 '한국'이라는 공간 그 자체에 자신의 꿈을 얹었던 젊은 여성 팬이었다.
한국어 수업에 참석했던 학생 중 몇몇은 경복궁에서 한복을 입고 케이팝 커버댄스를 추는 자기 모습을 매일 같이 꿈꾼다며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다. 그리고 2019년 3월, 20대 초중반이 된 그들이 마침내 한국을 찾았다. 이들은 경회루를 배경으로 BTS '아이돌'(IDOL)을 커버했다. 필자는 그 모습을 영상으로 담았다. 가족과 함께 아랍어 더빙판 드라마 대장금을 보고 자란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 능동적으로 한국문화를 실천하는 모습을 지켜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정작 문화콘텐츠의 발신자인 우리는 알지 못했지만, 그곳 튀니지도 한류에 스며들고 있었다. 아시아를 넘어 중동과 유럽으로 번져간 한류의 물결 속에 말이다.
하지만 이들처럼 상당한 비용과 시간을 들여 미디어에서나 보던 한국을 직접 와볼 수 있는 경우는 드물다. 그래서 저개발국가의 한류 팬들은 대사관이나 선교 단체가 비정기적으로 여는 한국 관련 행사를 누구보다 간절히 기다린다. 한국인들도 직접 만나고 같은 취향을 가진 팬들과 교류하며 동호회를 결성하거나 정보를 교환할 기회이기 때문이다.
당시 현지 방송 뉴스 보도에는 꿈에 그리던 케이팝 공연에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어린 여성 팬의 모습이 담겼다. 보호자로 동행했지만, 누구보다 공연을 즐겼다고 말하는 중년 아버지의 인터뷰도 함께 전해졌다. 이는 매년 케이콘(KCON) 현장에서 볼 수 있는 모습과 다를 바 없다.
같은 해 9월 마침내 튀니지 수도 튀니스에도 세종학당이 설립됐다. 아프리카의 한류 팬이 자발적으로 쌓아 올린 한국문화에 대한 애정이 케이팝 공연과 한국어 교육 기관이라는 제도적 기반으로 이어진 것이다.
앞서 언급한 모로코와 튀니지처럼 북아프리카는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보다 한류의 역동성이 훨씬 뚜렷하다. 2024년 5월 23일 짐바브웨 수도 하라레에서 열린 케이팝 페스티벌만 봐도 그렇다. 페스티벌에는 케이팝 가수를 초청할 여건이 되지 않았다. 대신 수년간 커버댄스로 케이팝을 익혀 온 현지 댄스팀이 무대를 채웠다. 물론 지리적 접근성과 공연 인프라, 현지 팬덤의 규모, 그리고 구매력에 따른 수익성과 같은 현실적인 요인을 고려하면 문화 교류와 공공외교 차원에서도 케이팝 가수 없이 케이팝 페스티벌을 진행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강남스타일부터 뉴진스의 '슈퍼샤이'(Super Shy)까지 케이팝 팬이 함께 모여 노래와 안무를 따라 하는 시간만으로도 짐바브웨의 관중들은 한마음이었다.
그 모습을 보니 튀니지 사례처럼 한류의 씨앗을 품고 있는 다른 아프리카 국가들에도 케이팝 공연과 한국어 교육 기관으로 싹 틔울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커졌다. 한류 팬들의 열정이 공연을 부르고, 공연이 한국어 교육을 파생시키며, 이는 곧 K-팬덤으로 확산하는 모습이 아프리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아프리카 알고보면, 누구보다 케이팝 가수를 기다린다.
※외부 필진 기고는 연합뉴스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이은별 박사
고려대 언론학 박사(학위논문 '튀니지의 한류 팬덤 연구'), 한국외대 미디어외교센터 전임 연구원, 경인여대 교양교육센터 강사 역임. 에세이 '경계 밖의 아프리카 바라보기, 이제는 마주보기' 외교부 장관상 수상, 저서 '시네 아프리카' 세종도서 선정 및 희관언론상 수상.
eunbyully@gmail.com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