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허수돌 디지털 매거진 '하이컷' 글로벌 디렉터의 기고문입니다.
모스크바 자라디예 콘서트홀이 환한 빛으로 물든 저녁, 세계 각국에서 모인 디자이너와 창작자, 학자, 에디터들이 삼삼오오 모여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런웨이의 화려함과는 조금 다른, 하지만 결코 덜 매혹적이지는 않은 순간이었다. 바로 BRICS+ 패션 서밋. 8월 28일부터 30일까지 열린 이번 정상회의는 패션을 단순히 소비재가 아닌 문화, 경제, 그리고 미래의 언어로 재해석하는 자리였다.
|
|
아프리카에서 온 디자이너들은 직조의 리듬과 손끝의 정교함을 이야기했고, 브라질은 다양성과 색채, 그리고 '행복'이라는 무형의 가치를 런웨이에 불어넣었다. 코트디부아르의 아리스티드 루아는 "우리는 독창적인 직물과 보석 제작 기술을 문화적 자산으로 갖고 있다"며 이를 작품에 담았다. 그의 컬렉션은 단순한 옷이 아니라 한 사회의 기억과 미래를 함께 엮어 낸 직물이었다.
|
|
중동의 우아함
아랍에미리트와 요르단, 카타르, 이라크, 레바논에서 온 대표단은 이번 서밋에 뚜렷한 색을 입혔다. 요르단 패션위크의 시린 리파이는 "이제는 영감을 실행으로 바꿔야 할 때"라고 말했다. 그녀의 발언은 현장의 젊은 디자이너들에게 진한 울림을 남겼다. 바그다드 패션위크의 세난 카멜은 "이라크 같은 신흥 시장에게 패션은 창조 경제의 열쇠"라고 강조하며, 패션이 단순한 장식이 아닌 경제와 사회를 바꾸는 힘임을 상기시켰다.
|
|
정상회의의 또 다른 축은 투자자 세션이었다. 화려한 런웨이와 달리 패널 토론에서는 현실적인 고민들이 오갔다. 모스크바 벤처 펀드의 알렉세이 코스트로프는 "창조 산업 기업의 생산량과 매출이 두 배로 늘었다"며 구체적인 성장 사례를 공유했다. 그 순간 패션은 단순히 옷이 아니라, 스타트업과 신기술이 만나는 혁신의 플랫폼임이 분명해졌다.
|
|
칭화대학교와 헤이그 응용과학대학교에서 온 강연자들은 패션 교육의 미래를 이야기했다. 브라질 출신 연구원 루시아나 두아르테는 "남미와 유럽의 시각을 연결하는 것이 나의 역할"이라며 학생들에게 새로운 영감을 심어 주었다. 강연장은 마치 또 하나의 작은 워크숍 같았다.
|
|
이번 서밋은 65개국 대표단이 참여하며 진정한 글로벌 무대가 되었다. 런웨이에는 러시아뿐 아니라 남아프리카공화국, 브라질, 중국의 디자이너들도 작품을 선보였다. 무대 위 모델들의 발걸음 하나하나가 세계 패션의 다양성을 증명했다.
BRICS+ 패션 서밋은 단순한 정상회의가 아니다. 전통과 현대, 경제와 문화, 창의성과 투자, 그리고 남반구와 북반구의 목소리가 한자리에 모여 만들어 낸 거대한 대화의 장이었다. 패션의 미래는 파리와 밀라노에만 있지 않다. 모스크바 자랴디예 콘서트홀에서 울려 퍼진 이 목소리들은, 앞으로 세계 패션이 얼마나 다채롭고 협력적인 무대로 확장될 수 있는지를 보여 주었다. 패션은 이제 진정한 글로벌 언어다.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