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honey] '혼자만 알고 싶은 섬' 소야도

기사입력 2025-10-08 08:06

바닷길이 열리는 소야도 [사진/임헌정 기자]
덕적도(위)와 소야도는 덕적소야교로 연결돼 있다. [사진/임헌정 기자]
인천∼덕적도를 운행하는 여객선. 차를 싣고 가는 배는 1시간 50분이 걸린다. [사진/임헌정 기자]
소야도 텃골에서 바라본 장군섬 [사진/임헌정 기자]
소야도의 갯벌과 점점이 떠 있는 섬들 [사진/임헌정 기자]
소야도의 폐교회와 마을 [사진/임헌정 기자]
소야도 마을 담벼락에 그려진 벽화 [사진/임헌정 기자]
1998년 폐교된 소야분교를 리모델링해 만든 문화공간 [사진/임헌정 기자]
위에서 내려다본 소야도. 가장 높은 산이 국사봉(156m)이다. [사진/임헌정 기자]
때뿌루 해수욕장 입구 [사진/임헌정 기자]
때뿌루 해변 [사진/임헌정 기자]
바닷길 열리는 갯벌과 파도가 조각한 바위섬들

(인천=연합뉴스) 권혁창 기자 = 파도가 면도날처럼 빛났다. 포말의 부서짐, 바닷새의 울음만이 부유하는 9월의 작은 섬. 섬의 끝에 선 그 순간엔 누구나 혼자다.

소야도는 덕적도에 바싹 붙은 섬이다. 두 섬의 거리는 500m. 3.03㎢의 작은 몸뚱이가 부끄러운 듯 큰 섬 뒤에 웅크리고 있다.

한걸음에 내쳐 걸으면 내 땅이 될 듯 만만해 보이지만 풍광은 소박하지 않다.

검은 맨살을 드러낸 갯벌, 파도가 조각한 기괴한 바위섬들, 어디론가 요술처럼 이어진 숲길까지, 닿는 곳마다 발목을 잡는 소야도의 자연은 신기하고 경이롭다.

걷다 보면 알게 된다. 섬의 시간은 뭍과는 다르게 흘러간다는 것을.

◇ 인천에서 배를 타다

인천에서 덕적도까지는 쾌속선으로 1시간 10분, 차를 싣고 가면 1시간 50분이 걸린다. 요금이 꽤 비쌌지만, 차를 실었다.

덕적도∼소야도는 2018년에 다리로 이어졌다. 연도교가 없었을 땐? 당연히 배로 건너다녔다. 주민들은 그때 어떻게 살았을까?

소야도와의 첫 대면은 배에서 바라본 빨간 등대와 매바위다. 섬처럼 물 위에 둥실 떠 있지만, 물이 빠지면 땅과 한 몸이 되는 곳이다.

소야도엔 9경이 있다. 그중 1경인 장군바위가 멀리 보이는 텃골에 차를 세웠다.

바위는 장군섬 끝에 파수꾼처럼 우뚝 서 있다. 긴 칼을 양손으로 집고 투구를 쓴 모습이 늠름해 보이기도, 외로워 보이기도 한다.

물 빠진 텃골의 잿빛 갯벌과 때마침 몰려온 양떼구름 사이에는 작은 섬들이 점점이 떠 있다. 모래 위에서 말없이 물이 차기만을 기다리는 두 척의 작은 고기잡이배까지, 섬과 바다는 한순간 거친 질감의 유화가 된다.

멀지 않은 곳에 섬에서 가장 큰 마을인 큰말이 있고, 마을 바로 앞 바다에 3개의 섬이 손에 잡힐 듯 서 있다. 이름도 예쁜, 갓섬·간뎃섬·물푸레섬이다. 텃골에서 볼 때 수평선에 점점이 떠 있던 그 섬들이다.

섬과 섬 사이는 '모세의 기적'처럼 하루에 두 번 1.3㎞의 바닷길이 열린다.

자세히 보니 오후 들어 물이 빠지기 시작하면서 바다는 검푸른 바닥을 서서히 드러내고 있다. 이 기적을 매일 보는 섬 주민에겐 이미 기적이 아니겠지만, 외지인들에겐 여전히 신비로울 뿐이다.

◇ 언덕 위 폐교회

마을을 둘러보다 교회를 발견했다. 섬에 하나뿐인 소야교회다. 창립 연도가 1914년이니 110살이 넘었다.

주민에게 물어보니 원래 가까운 언덕 위에 있던 교회가 옮겨 왔고 옛 건물은 폐건물로 남아있다고 했다. '폐교회'가 주는 이미지에 끌려 가보기로 했다.

마을 골목길 끝을 지나 언덕 위 좁은 숲길을, 저 멀리 보이는 십자가만 보고 올라갔다. 교회는 아직 있었다.

폭격이라도 당한 듯 지붕은 없고 한쪽 벽도 무너져 내렸다. 방치된 회색 벽은 초췌하게 얼룩졌다.

그런데 그 폐허 위에 건물을 빙 둘러 야생화가 활짝 피어 있었다. 마치 누가 심어놓은 것처럼. 패랭이, 얼레지, 코스모스, 달맞이꽃… 종류도 다양하다.

나중에 알게 됐지만, 오래도록 이 교회는 종교적인 역할 뿐 아니라 소야도 주민들이 대소사를 치렀던 장소였다고 한다.

섬 주민들은 결혼식을 여기서 했다. 교량이 없던 시절, 다른 섬에 사는 친척들이 배에서 내리면 경운기로 교회까지 데리고 왔다.

철거하지 않은 이유를 섬사람들에게 묻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 "쓰레기만 버리고 돌아간다"

지난해 기준으로 283명이 거주하는 소야도에는 학교가 없다. 1936년 개교한 덕적국민학교 소야분교가 있었지만, 1998년 폐교되고 학교 건물은 리모델링을 통해 문화공간으로 재탄생했다.

지금은 스쿨버스가 학생들을 데리러 다리를 건너 오지만, 다리가 놓이기 전 중·고교생들은 배를 타고 등교했다. 비바람이 치면 그대로 맞고 홀딱 젖은 채로 수업을 받아야 했다고 한다.

소야도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김종균 씨는 "그때만 해도 학생 수가 한 학년에 10여명쯤 됐던 것 같다"며 소야분교 다니던 시절을 회상했다.

고기잡이와 굴 양식에 농사도 짓고 공공근로도 하지만, 갈수록 줄어드는 인구에 남은 주민은 노인들뿐이라, 주민들의 생활은 갈수록 녹록지 않다.

수도권에서 가깝고 풍광이 뛰어난 섬이니 관광객이 도움이 될 듯하지만, 김민국 이장은 손사래를 친다. 인천시민들에게 뱃삯을 대폭 할인해주니 대부분 도시락을 싸 와서 당일치기로 둘러보고 쓰레기만 버리고 돌아간다고 했다.

◇ 혼자 있는 것은 다 섬이다

소야도에는 신석기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다. 삼국시대에는 백제에 속했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할 때 당나라 소정방의 대군이 섬에 들어와 머물렀기 때문에 소정방의 '소' 자를 따서 소야도가 됐다는 일화가 전한다.

소야도에서 가장 높은 국사봉(156m)은 소정방이 산 정상에서 자기 나라를 향해 제사를 지냈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그렇게 보면 삼국통일의 중요한 거점이 된,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섬이기도 하다.

큰말에서 언덕길을 올라 반대편 남쪽으로 내려오니 근사한 해변이 나온다.

소나무 숲 너머로 하얀 모래밭, 그 뒤로 줄 서듯 밀려오는 파도에 윤슬이 눈부시다. 때뿌루 해수욕장이다. 보리수나무 열매를 지칭하는 중국어에서 기원했다는, 재미있는 이름이다. 캠핑족에게는 천국과도 같은 곳이다.

옅은 파도가 반짝이는 9월의 햇살을 텅 빈 백사장 위로 실어 나르고 있다.

우두커니 앉아 섬을 생각한다. 소설가 한승원은 바다에 떠 있는 것만 섬이 아니라 '혼자 있는 것은 다 섬'이라고 했다. 섬에서 다른 섬을 생각할 수 있는 건 혼자 있을 때만 가능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faith@yna.co.kr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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