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6회 청룡영화상 시상식이 19일 여의도 KBS홀에서 열렸다. 수상자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박재만 기자 pjm@sportschosun.com/2025.11.19/
[스포츠조선 조지영 기자] "네티즌 표가 청룡의 운명을 바꿨다!"
누가 받아도 이견 없었던 국가대표급 빅매치 덕분일까. 만장일치 없는 각축이었던 올해 청룡영화상의 캐스팅보트는 네티즌이 쥐고 있었다.
지난 19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KBS홀에서 제46회 청룡영화상이 개최됐다. 올해 청룡영화상은 지난 2024년 10월 11일부터 2025년 10월 7일까지 국내 극장 개봉 및 OTT 공개된 한국 영화를 대상으로 총 19편의 한국 영화, 10명의 감독, 29명의 배우가 16개 부문(최다관객상·청정원 인기스타상 제외) 후보에 올라 치열한 경합을 펼쳤다. 그 결과 올해 스크린을 뜨겁게 달군 작품과 감독 및 스태프, 그리고 열연을 펼친 배우에게 청룡의 영예가 주어졌다.
청룡영화상은 공정하고 투명한 심사로 매회 공신력을 인정받고 있는 국내 최고 권위의 영화 시상식이다. 청룡영화상은 전문성과 대중성을 두루 평가하며 모든 작품, 배우에게 공평한 심사를 내리기 위해 8명의 심사위원과 네티즌 투표 결과를 종합한 총 9표 중 과반수 득표를 받은 후보를 수상작(자)으로 선정한다. 연출, 제작, 연기, 평론 등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후보에 오른 모든 작품을 꼼꼼하게 평가 및 분석해 면밀한 심사를 거쳐 올해 최고의 작품과 배우를 선정했다.
올해 심사는 시상식 당일인 지난 19일 오후 2시부터 시작해 약 4시간 심사위원의 격론 끝에 영광의 수상자가 탄생했다. 8명의 심사위원은 심사 결과 유출을 사전에 막기 위해 휴대전화를 반납하고 열띤 토론으로 작품과 연기를 평가하며 제46회 청룡영화상 영광의 수상작(자) 라인업을 완성했다.
제46회 청룡영화상 시상식이 19일 여의도 KBS홀에서 열렸다. 신인남우상을 수상한 안보현이 기뻐하고 있다. 허상욱 기자 wook@sportschosun.com/2025.11.19/
제46회 청룡영화상 시상식이 19일 여의도 KBS홀에서 열렸다. 신인여우상을 수상한 김도연이 수상 소감을 말하고 있다. 허상욱 기자 wook@sportschosun.com/2025.11.19/
제46회 청룡영화상 시상식이 19일 여의도 KBS홀에서 열렸다. 신인감독상을 수상한 김혜영이 기뻐하고 있다. 허상욱 기자 wook@sportschosun.com/2025.11.19/
선입견 뛰어넘었다, 신인상
전 세계 K-콘텐츠를 이끌고 있는 '대세' 청춘스타들이 청룡영화상 신인상 부문에 대거 이름을 올리며 경합을 펼쳤다. 그 결과 '악마가 이사왔다' 안보현, '아메바 소녀들과 학교괴담: 개교기념일' 김도연,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김혜영 감독에게 인생에서 단 하나뿐인 신인상의 영예가 돌아갔다.
먼저 청룡영화상 신인남우상을 수상한 '악마가 이사왔다'의 안보현은 '3670' 조유현과 경쟁 구도를 보였다. 심사위원들은 "'악마가 이사왔다' 특유의 병맛 코미디를 잘 살린 배우였다. 기존에 안보현은 근육질 액션 배우라는 선입견이 있었는데 그걸 이 작품을 깰 수 있었다. 안보현은 이미 드라마에서 자리를 잡은 배우이지만 사실 스크린에서는 상대적으로 주목을 못 받아 안타까웠다. 연기적인 측면이나 흥행 면에서 영화 장르도 충분히 포텐셜이 많은 배우다"고 지지했다. 수상의 문턱에서 1표 차이로 희비가 갈린 '3670'의 조유현에 대해서는 "보자마자 궁금증을 유발하는 후보였다. 다만 열연을 펼쳤지만 '은밀하게 위대하게'의 김수현을 떠올리게 만드는 지점이 있었다"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어 올해 신인여우상은 '아메바 소녀들과 학교괴담: 개교기념일' 김도연과 '청설' 노윤서의 2파전으로 이어졌다. 심사위원들은 "김도연은 아이돌로 출발한 배우다. 아이돌 데뷔 당시 많은 주목을 받았지만 배우로 전향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 케이스다. 무엇보다 기존 여성 신인 배우에서 볼 수 없는 김도연만의 매력이 확실하게 있다. 장벽이 많았던 영화였는데 자신만의 매력으로 중심을 이끌었다. 만약 다음 작품에서 함께 하고 싶은 배우를 묻는다면 단연 김도연을 선택하고 싶다"고 밝혔다. 김도연 못지않게 지지받았던 노윤서는 "원작이 있는 영화라는 핸디캡이 아무래도 작용될 수밖에 없다. 노윤서는 안정적인 연기로 영화를 이끌었지만 원작을 뛰어넘지 못한 작품의 완성도 때문에 아쉬움이 남는다"고 덧붙였다.
신인감독상은 따뜻하고 착한 힐링 무비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에 압도적인 반응이 쏟아졌다. "탄탄한 각본이 힘을 받쳐줬고 생각보다 웃음 포인트도 많았다. 장르 범벅 한국 영화판에 모처럼 따뜻하고 끊김 없는 스토리로 마지막까지 여운을 남겼다"고 응원을 보냈다.
제46회 청룡영화상 시상식이 19일 여의도 KBS홀에서 열렸다.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이성민이 기뻐하고 있다. 있다. 허상욱 기자 wook@sportschosun.com/2025.11.19/
19일 제46회 청룡영화상 시상식이 여의도 KBS홀에서 열렸다. 여우조연상 수상한 배우 박지현. 여의도=송정헌 기자songs@sportschosun.com/2025.11.19/
관객을 무장하게 만드는, 조연상
베테랑 명배우들의 연기 차력쇼 그 자체였던 조연상은 그야말로 '어쩔수가' 없었다. 4전 5기 끝에 청룡의 트로피를 손에 쥐게 된 '어쩔수가없다' 이성민과 신인상의 아쉬움을 달랜 '히든페이스'의 박지현이 2차 경합 끝에 올해 청룡이 선택한 최고의 '신 스틸러'로 등극했다.
스스로 동네에서 연기 좀 한 '선수'였다는 이성민에 심사위원들은 "하나의 캐릭터를 촘촘하게 계획해 날을 바짝 세워 연기한 느낌이었다. 이성민은 '어쩔수가없다'에 대한 의문을 완전하게 무장해제 시켜준 키플레이어였다. 청룡과 운이 없어 번번이 아쉬움을 남겼는데 올해엔 기운을 주고 싶다. 중년의 배우로서 쉽게 도전할 수 없었던 역할을 완벽히 소화할 수 있었던 것은 이성민의 연기를 향한 무서운 집념이 있었기 때문이다"고 전했다. 이성민과 2차전 각축을 벌였던 '좀비딸'의 윤경호 또한 "실제로 '좀비딸'의 코미디는 윤경호가 대부분 이끌었다. 감초 역할 롤을 제대로 보여준 사례다"고 말했다.
'대선배' 염혜란과 경쟁을 펼쳤던 '히든페이스'의 박지현은 '용기'에 많은 점수를 받을 수 있었다. "파격적인 장르 속에서 박지현의 연기는 상당히 설득력이 있었다. 무엇보다 박지현은 영화 속에서 캐릭터에 삼켜지지 않고 자신의 색깔을 분명하게 낸 순간들이 있었다"고 곱씹었다. 염혜란에 대해서도 "요염한 팜므파탈 캐릭터를 도전한 염혜란의 변신이 새로웠다. 다만 염혜란은 박찬욱이라는 초호화 경 속에서 정말 좋은 배우들과 열연을 펼쳤다면 박지현은 쉽지 않은 현장에서 홀로 부딪쳐야 했던 순간들이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그런 대목에서 조금 더 박지현을 지지하고 싶다"고 밝혔다.
제46회 청룡영화상 시상식이 19일 여의도 KBS홀에서 열렸다.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현빈이 기뻐하고 있다. 허상욱 기자 wook@sportschosun.com/2025.11.19/
제46회 청룡영화상 시상식이 19일 여의도 KBS홀에서 열렸다.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손예진이 기뻐하고 있다. 허상욱 기자 wook@sportschosun.com/2025.11.19/
'잘생쁨' 외모에 가려졌던, 주연상
올해 청룡영화상의 핫이슈이자 새로운 기록을 추가한 주연상 부문은 '청룡 부부' 현빈과 손예진에게 돌아갔다. 현빈은 '하얼빈'으로 인생 첫 청룡 남우주연상을, 손예진은 '어쩔수가없다'로 17년 만에 두 번째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인생 3막을 맞이하게 됐다.
마치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자'에서 극한 연기를 펼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떠올리게 만든 순간이었다. 한국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하얼빈'의 현빈에 대해서 "첫 장면부터 '하얼빈' 전체를 관통하는 힘을 보였다. 사실 조각 같은 외모 때문에 그동안 연기력이 가려지는 안타까움도 있었다. 사실 안중근이라는 역할 자체가 엄청난 장벽이고 리스크다. 이미 많은 작품에서 다뤄졌고 인물이 가진 무게만으로 엄청난 압박감이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현빈이 안중근을 선택한 이유는 자신만의 안중근을 보여줄 수 있다는 확신 때문이었고 그러한 확신이 기존 안중근 영화 보다 여실히 잘 드러난 것 같다"고 평가했다. 현빈과 팽팽한 접전을 펼친 박정민을 향한 심사위원들의 애정도 상당했다. 심사위원들은 "정말 총명한 배우다. 우리나라 30대 배우 중 가장 폼이 오른 배우다. 한국 영화의 얼굴이 될 배우이고 진짜 좋은 상을 받아야 할 때가 된 것 같다"고 평가됐다. 실제로 현빈과 박정민은 팽팽한 심사평을 토대로 심사위원의 반반 표심을 얻었으나 캐스팅보트였던 네티즌표가 현빈의 손을 들어주면서 남우주연상을 가져가게 됐다.
7년 만에 극장으로 돌아온 '퀸' 손예진도 우열을 가릴 수 없는 배우들과 각축 끝에 여우주연상의 영예를 품게 됐다. 심사위원들은 "'어쩔수가없다'는 사실 손예진의 하드캐리가 덕분에 이병헌의 폭주가 계속될 수 있었다. 복귀하는 작품에서 여성 역할을 선택한다는 것 자체가 파격이었다. 모든 사건을 다 예측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다 품고 가야 하는 아내이자 엄마의 마음을 세밀한 감정선으로 관객에게 충분히 전달했다. 여유가 생기고 노련해진 손예진의 3막이 시작된 것 같아 응원하고 싶다"고 지지했다. 손예진과 각축을 벌인 '하이파이브'의 이재인, '파과'의 이혜영도 만만치 않았다. 이재인에 대해 심사위원들은 "연약하고, 앳된 얼굴을 가졌지만 '하이파이브'에서 소시민 히어로로서 그 누구보다 강렬한 에너지를 전하며 '하이파이브'의 캐릭터를 완성했다. 확실히 영화계 세대교체를 할 수 있는 주역으로 청룡영화상으로 힘을 보태고 싶다"고, 이혜영에 대해서는 "엣지 있는 연기의 표본이다. 그는 1986년 '겨울 나그네' 때부터 한국 영화 르네상스 중심에 있었던 배우다. '파과'에서 세월의 무게가 묻어난 대목도 좋고 후배 배우들에게 좋은 귀감이 되는 롤모델이다"라는 평가가 이어졌다. 결국 손예진과 이혜영은 3차 심사까지 경합이 이어졌으나 캐스팅보트 네티즌표로 손예진에게 황금빛 트로피가 전해졌다.
제46회 청룡영화상 시상식이 19일 여의도 KBS홀에서 열렸다.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한 영화 '어쩔수가없다' 팀이 기뻐하고 있다. 허상욱 기자 wook@sportschosun.com/2025.11.19/
제46회 청룡영화상 시상식이 19일 여의도 KBS홀에서 열렸다.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한 영화 '어쩔수가없다' 팀이 기뻐하고 있다. 허상욱 기자 wook@sportschosun.com/2025.11.19/
미장센의 정수, 감독 및 최우수작품상
청룡영화상에서 네 번의 감독상을 수상하며 역대 최고, 최초 쿼드러플 기록을 수상한 박찬욱 감독의 수상도 제목처럼 어쩔 수가 없었다. '어쩔수가없다'는 '다 이루었다'고 느낄 만큼 삶이 만족스러웠던 회사원이 덜컥 해고된 후 아내와 두 자식을 지키기 위해, 어렵게 장만한 집을 지켜내기 위해, 재취업을 향한 자신만의 전쟁을 준비하며 벌어지는 이야기 그린 작품이다. 도널드 E. 웨스트레이크 작가의 1997년 발표작 소설 '액스'를 원작으로 한 영화로 박찬욱 감독이 무려 20여년간 영화화를 준비해 화제를 모았다.
박찬욱 감독은 제21회 청룡영화상에서 '공동경비구역 JSA', 제26회 청룡영화상에서 '친절한 금자씨', 제43회 청룡영화상에서 '헤어질 결심', 그리고 올해 '어쩔수가없다'까지 네 번째 최우수작품상을 가져갔고 동시에 '공동경비구역 JSA'은 물론 2003년 열린 제24회 청룡영화상에서 '올드보이'와 '헤어질 결심' '어쩔수가없다'로 네 번째 감독상을 차지한 유일무의한 연출자로 등극했다.
심사위원들은 "'어쩔수가없다'는 국내에서 호불호가 있는 작품이었다. 특히 박찬욱 감독 전작과 비교했을 때 박찬욱만의 야성이 사라진 것 같아 아쉬움을 가진 관객이 많은 것 같다. 그럼에도 박찬욱 감독의 영화가 귀하다는 느낌을 받은 작품이었다. 우리가 말하는 영화라는 건 미장센의 예술이다. 오밀조밀한 연출한 직감에 따라 현장에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힘이 확실하게 있다. '어쩔수가없다'는 미장센이라는 틀 안에서 가장 정석적으로 촘촘하게 잘 보여준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흥행은 국내에서 아쉬운 성적을 받았지만 그럼에도 한국 영화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해외에서 많은 관심을 받으면서 인정받지 않았나? 어려운 한국 영화 시기에 그것만으로 충분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말 그대로 박찬욱, 어쩔 수가 없다"고 답했다.
제46회 청룡영화상 시상식이 19일 여의도 KBS홀에서 열린다. 시상식을 앞두고 심사위원들이 심사를 진행하고 있다. 박재만 기자 pjm@sportschosun.com/2025.11.19/